큰 키에 건장해 보이셨지만 막상 내 앞자리에 앉으셔서 가까이서 보니 얼굴 낯빛이 어두웠고 눈빛이 슬퍼 보이셨다.
민원인 : "원래 내가 둘째 아이로 육아휴직을 들어가려고 했는데, 지금 신청하려고요. "
주무관 : "네, 회사에서 발급해 준 확인서 주시고요. 앞에 보이시는 육아휴직 급여 신청서를 작성하시면 됩니다."
민원인 : "그런데 아이가 육아휴직 들어가기 일주일 전에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 이미 회사에서 육아휴직 확인서도 발급해 준 상황이고요. 그래서 제가 오늘 신청하러 왔습니다."
주무관 : " 네, 그러니까 그 둘째 아이 대상으로 육아휴직을 하신다고요?"
민원인 : "저번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회사에서 발급해 준 확인서와 급여신청서만 제출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이 사망증명서도 가져왔습니다. "
사망한 자녀를 대상으로 육아휴직을 할 수는 없다. '육아'를 위한 '휴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이 '당연함'을 사무적으로 말할 수가 없었다. 스치듯 보였던 사망증명서의 둘째 아이는 매우 어린 나이였다.
주무관 : "그 자녀 대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만"
민원인 : "여기 말고 본부랑 더 윗사람들하고 논의를 해서 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논의한 후 답을 주겠다며 민원인을 돌려보냈지만 마음이 슬펐다. 관련된 지침이나 행정해석들은 이미 있었다. 그 민원인에게 당장 프린트해서 보여줄 수도 있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더 나은 행정적인 처리는 그 자리에서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일까.
일말의 희망을 주며 돌려보낸 건 나쁜 행정적 처리였을까?
2
평소처럼 문의전화를 받았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신청해서 사용 중인데 조기 종료를 하게 됐고, 남편의 육아휴직 급여 신청을 이번에 한꺼번에 하려고 하고 그것을 아내인 본인이 해도 되냐는 것이었다. 모바일로 남편분이 할 수 있다며 고용보험 어플을 다운로드하시고 하면서 급여 신청 방법을 설명해드리자 급하게 내 말을 중간에 뚝 자르면서 말씀하셨다.
민원인 : " 남편이 죽어서 어쩔 수 없이 제가 신청해야 하고요. 사망한 날 전 날로 처리하면 7개월 5일 신청할 수 있더라고요. 마지막은 일할 계산되죠?"
주무관 : "음. 그러면 계속 병원에 계시다가......."
민원인 : "사망하기 한 달 전부터 중환자실에 입원한 거고요. 그 전에는 집에 있었어요. 그게 급여 신청하는 거랑 상관이 있나요?"
주무관 : "아 그게 육아휴직이라는 게 육아를 하는 휴직이니까 좀 상관이 있기는 한데... 전 날까지 모두 육아휴직급여를 신청하신다는 게....."
민원인 :"전 하루도 안 빼고 모든 기간을 신청할 겁니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공문이나, 법령, 지침을 보여주세요."
전화기 너머로 담담하게 말씀을 이어가셨다. 절대 슬픔을 들키기 싫다는 어조로 질문을 쉼 없이 던지셨지만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이미 전화기를 타고 내 마음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당시 시보도 안 끝난 나는 행정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꽤 난감했었다. 선배 주무관님들도 '애매하다'면서 '일단 지급을 하고 부정수급팀에서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여지를 민원인에게 안내하라'라고 했다.
실제 비슷한 사례들의 질의회시나 행정해석을 여러 번 읽어봐도 내가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답이라기보다는 사망한 남편의 육아휴직급여 신청서를 처리해야 하는 아내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인간적 예의를 지키는 공무원의 모습일지 고민이 됐다.
출처 모성보호 편람
3
육아휴직급여제도에는 '한부모 특례'가 있다. 이 특례가 적용되면 육아휴직 급여를 더 받게 된다. 이 말은 즉 공무원이 확인해야 할 서류가 많아진다는 것이고 민원인도 확인받아야 할 개인 사정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각종 주택청약, 대출, 심지어 지자체의 한부모 혜택 등을 위해 일부러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원칙적으로 한부모 근로자 육아휴직급여제도는 배우자의 사별 또는 이혼하거나 배우자로부터 유기된 자, 정신이나 신체의 장애로 장기간 노동력을 상실한 배우자를 가진 자, 교정시설에 입소한 배우자, 미혼자 등에게 적용된다.
언뜻 글자만 봐도 어디서부터 질문을 해야 할지 난감함이 몰려온다. 근로자들이 각자 본인만 아는 사정으로 신청서에 '한부모 특례'를 체크하고 제출한다. 신청서엔 그 외의 정보를 적거나 체크할 수 있는 칸이 없다.
그러면 나는 민원인에게 전화를 해서 '한부모'가 된 경위에 대해 조사를 해야 한다.
"이혼하셨나요? 사별하셨나요?"라고 물어야 하는 데 그 말이 아직도 안 나온다. 그냥 "한부모 특례 지원하셨던데요. 관련 서류를 보내주셔야 합니다만"이라고 하면 대부분 민원인 스스로 한부모가 된 이유를 말씀하신다. 그러면 민원인에게 한부모 관련 내용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안내한다.
그런데 가끔은 민원인도 끝까지 한부모가 된 이유를 말씀하시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나는 작은 목소리로 "혹시 이혼하셨나요?"라고 하면 "네"라고 짧게 답하신다.
이런 경우는 나도 민원인도 몸 둘 바를 모르다가 서둘러 전화를 끊곤 한다. 그래서 아직도 고민이다. 어떻게 말을 하는 것이 상처 받은 분들에게 상처를 안 줄 수 있는지를 말이다.
한 번은 미혼자의 육아휴직급여 처리를 하던 중이었다. 혼인관계 증명서, 가족관계 증명서, 등본 등을 봤을 때 혼인 기록이 없고, 가족이고, 같은 집에 살고 있으니 한 부모 특례를 적용하고 검토보고서를 출력하려고 했을 때, 눈에 띄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엄마의 성과 자녀의 성이 다른 것이다. 상식적(?)으로 미혼모의 자녀의 성은 엄마의 성을 따라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혼모의 자녀의 성은 엄마 성으로 해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이걸 꼭 따져 물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선배 주무관들은 혹시 모르니 혼자 아이를 양육하고 있음에 대한 자필 사실확인서, 즉 추가 서류를 받으라고 했다.
나는 아빠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다. 사람들이 너무 쉽게 '아빠 뭐 하시니?' 같은 질문들을 던지면 눈물이 났다. 그래서일까. 나는 업무를 할 때 만나게 되는 민원인들의 '쉽게 말할 수 없는 사정'들을 사무적으로 끄집어내야 하는 게 가장 어렵고 힘들다.
심지어 질문에서 끝나지 않고 그 '민감한 상황'을 자세히 파헤쳐서 지원금 지급 여부를 최종 판단해야 한다. 앞으로 계속 나는 이런 일들을 할 텐데, 사람이 지켜야 할 선들을 지키며 상처 주지 않고 일을 하길 바랄 뿐이다. 김주무관은 오늘도 고민하고 생각하고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