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늦깎이 공무원의 나이는 40대 이상이다. 마흔이 넘어보니 30대는 청춘으로 느껴져 앞에 3자 붙은 나이는 제외하기로 했다. 일단 지방직, 국가직 공무원 시험이 끝난 후 기사를 보면 연령별 통계가 꼭 나와 있다. 기사만 봐도 40대 이상의 합격자 수는 증가하고 있다.
사이버고시센터에서 제공하는 통계자료를 통해 최근 3년간 늦깎이 국가직 공무원의 합격자 수를 알아봤다. 그런데 사이버고시센터는 늦깎이 기준이 36세부터였다. 36세 이후 나이 분류는 없었다. 여하튼 총 합격 인원에 따른 비율과 상관없이 36세 이상 합격자 수만 보면 19년부터 21년까지 388->521->544명이었다.
난 최종 합격 문자를 받은 20년 11월 25일, 합격의 기쁨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늦깎이 공무원이라는 생각에 막연히 불안해졌다. 공직사회에 40대 이상의 합격자들이 늘고는 있지만, 여전히 소수다. 그렇다면 소수가 가지는 특별함(?)은 문제없이 잘 흘러가고 있는지, 그들의 생존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검색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공직생활을 하는 늦깎이들의 모습은 인터넷에서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의 늦깎이 공무원의 생존기를 조금 적어보려고 한다. 우선 나는 임용을 앞두고 아래 세 가지가 정말 궁금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지역별 고용센터의 특성 때문에 모두 나와 같지 않을 수도 있다.
1. 늦깎이 공무원을 보는 시선
1) 예상대로 "와우, 늦은 나이에 어떻게 공부하셨어요?"
그렇다. 일단 일부는 이걸 궁금해한다. 대단하다는 반응들이 이어진다. 여기까지다. 늦깎이 공무원의 나이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은 발령받고 일주일 정도이다. 그 이후엔 대부분 ' 저 사람이 늦깎이 공무원'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듯하다.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는다.
2) "아, 무슨 특채로 들어오셨어요? 설마 이번 9급 공무원 시험 본 건 아니죠?"
그래도 아직까지는 늦깎이 합격생들이 소수라 이렇게 묻는 주무관들도 몇몇 있다. 부정적 시선이라기보다는 주변에서 마흔 넘어 공무원 시험을 봤다는 것을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주무관들이 그냥 툭 하고 뱉은 말인 것 같다. 그런데 의외로 이렇게 생각하는 주변 주무관들이 꽤 있다.
3)그리고 일이 많고 바빠서 "늦깎이? 그게 뭔데? 그냥 신규지."
사실 이런 반응이 대다수라 보면 된다. 42살에 공무원이 돼서 '주변 주무관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위의 두 가지 시선은 20% 정도이고 80%는 고용센터 모든 업무가 과부하에 걸려있다 보니 신규 나이가 몇 살이냐 이런 건 전혀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2. 조직은 늦깎이 공무원에겐 도대체 무슨 업무를 맡기는가?
이것도 궁금했다. 나이가 많다고 일반적인 일을 못 시키는 거 아닌가? 아니면 허드렛일만 하는 거 아닌가? 불안했었다. 이건 출근한 지 5일째 되던 날, 팀 발령을 받으면서 사라졌다. 나의 첫 번째 업무는 '청년추가고용장려금,고용유지지원금,특별고용촉진지원금'이었다. 분명한 것은 허드렛일은 아니었다.
고용센터 발령받은 9명 중 36살 이상이 6명이었다.
동기 중 한 명이 출근 첫날, 소장님께 물었다. "모성 업무를 하고 싶은데 혹시 나이가 많으면 못하나요?"
소장님이 말씀하셨다. "나이 때문에 못하는 업무는 없습니다. 고용센터 업무는 나이와 상관없이 시험에 합격한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
사실이었다. 임용장을 받은 첫날, 고용센터 소장실에서 소장님은 우리에게 공무원이 되기 전 어떤 업무를 했는지 물어보셨다. 그 결과, 실업급여를 받아 본 동기 둘은 경험을 인정받아 실업급여로 발령이 났고, 투자증권회사를 다닌 동기는 국민취업지원제도 민간위탁기관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대부분의 일 경험이 없는 동기들은 모두 국민취업지원팀에 발령이 났고, 소장님의 어떤 질문에도 항상 큰 소리로 가장 먼저 답을 했던 동기는 센터 서무로 발령이 났다. 그리고 나는 콜센터 근무 경력으로 기업지원팀에 배정됐다. 연관이 있는 듯 없는 듯 아리송했지만, 여하튼 연관이 있는 팀 발령이었다. 나이는 고려되지 않았다.
3. 늦깎이 공무원은 누구와 점심 밥을 먹는가?
가장 현실적인 걱정은 '먹는 것'이었다. '40 넘은 사람하고 점심을 먹으려고 할까'라는 과도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나이 차이가 나니깐 대화하기 불편해서 피할 것 같았다. 그래도 '동기들이 있으니 동기들과 먹으면 되지 않을까'라고 안도했었다. 하지만 나는 혼자 기업지원팀에 발령받았다.
그리고 기업지원팀은 고용센터 업무가 늘어남에 따라 별관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고용센터에 동기 8명이 있었고 나는 도보 10분 정도 거리의 다른 사무실에 혼자 일해야 했다. 처음엔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래도 며칠 동안 동기들과 수다도 떨고 조금 친해졌는데, 혼자 섬으로 유배된 듯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어디에나 좋은 사람들이 있다.
점심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방황하는 나에게 1년 차 27살 선배 k주무관님이 손을 내밀어 주셨다. "oo샘, 지금 점심 먹을 건데 같이 먹으러 가요." 그렇게 해서 띠동갑은 기본인 선배 주무관님들과 친한 점심 멤버가 되고 커피도 마시도 수다도 떨고 있다.
그런데 가끔 신조어들로 소통에 어려움이 생길 때도 있다. 저번에 선배 주무관님들이 단체 채팅방에 "이번에 점심 배달한 건데 '음쓰'는 00 샘이 담당한대요."
그래서 내가 물었다. "샘들, 그런데 '음쓰'가 뭐임?"
선배님들이 답해 주셨다. "샘, 음심 쓰레기"
이번엔 'ㄱ ㅅ'을 몰라서 물었더니 친절하게 "감사"라고 답하셨다. 그리고 다 같이 웃었다. 내가 그랬다.
"샘들, 귀찮게 해서 미안, 그래도 나 버리지 말아 줘요."
일하다 보면 나이를 잊는다. 나이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업무를 꼼꼼하게 처리하려는 태도와, 동료와 함께 웃을 준비와, 민원인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나이'에 사로잡혀 주위를 보지 못한다면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것을 놓칠 수 있을 것 같다.
작년 이맘때 10월 27일, 나는 검은색 정장에 하얀색 셔츠를 입고 고양 킨텍스에서 면접을 보고 있었다. 당시 김주무관은 첫 번째 면접 주제인 5분 발표에서 전 정세균 총리님의 적극 행정의 대명사 '접시 행정'을 당당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나의 나이는 적극 행정과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합격 후 김 주무관은 '일하다 접시를 깨는 것은 인정할 수 있어도 일하지 않아 접시에 먼지가 끼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는 그 말을 가슴에 새기며 고용센터의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나이는 잊었다.
지금은, 접시가 깨질까 봐 아등바등 살고 있지만, 접시에 먼지가 끼는 일은 없게 쓸고 닦으며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모든 부분에 '나이'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선을 지키며 명랑 발랄하게 공직생활을 하고 싶은 김주무관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