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팀장님은 '모두 국민취업지원팀(국취)으로 발령날 것이고 우리 팀까지 올 신입은 없다'라고 탕탕 못을 박았다. 그런데 말이지 말입니다.(D.P에 빠져 군인 말투에 빠짐 ㅎ) 20년 합격생들도 모두 국취로 발령받는다고 생각했지만 급한 팀에 뿔뿔이 흩어져 각 팀에서 소금(?) 같은 존재가 되어 있지 말입니다. ㅎ
그래서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분명 우리 팀에 신입이 올 거라'고 점심을 먹을 때도 커피를 마실 때도 주문을 외우듯이 반복하고 있다. 그래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우리가 열심히 '씨'를 심으면 줄기가 나오고 잎도 나고 꽃도 피겠지. 큰 나무가 될 수도 있고. 그럼 정말 좋고...
우리는 행복의 상상을 펼쳐본다. 지금 우리의 일을 누구와 나눠할 수 있다면 주말에 나올 일도 없고 재촉하는 민원인 전화도 안 받고 그 마음이 얼마나 여유로울까. 그러면 안 되는 데 자꾸만 기대하게 된다. 이러면 나중에 상처 받을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다.
20년에 국가직 시험을 본 우리들은 기존과는 다른 국가직 시험 일정을 겪었다.
필기시험은 7월 11일에 봤고, 면접은 10월 26일에 봤고 최종 합격은 11월 25일에 발표됐다. 나는 필기시험 이후 콜센터에서 육아휴직을 복직하고 회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지루함 없이,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긴 했다. 나는 콜센터에서 20년 12월 31일까지 일을 하고 21년 1월 4일부터 공무원 줌 연수를 들어갔다. 참 생각해도 알찬 일정이었다. 누군가는 '좀 쉬고 여행도 가고 그러지, 왜 그렇게 계속 달렸냐'라고 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고 진심으로 공무원 시험에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콜센터에서도 신입 상담사 교육업무도 있었고 내년에 상담사들에게 필요한 책들을 다시 편집하는 업무도 있었다. 중요한 일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었다.
2월, 기업지원팀에 발령 나서 고용창출 업무를 하다가, 그다음엔 고용유지 업무를 하다가, 4월부터는 모성 업무를 한꺼번에 세 개를 하다가, 7월부터는 1개의 모성 업무에 고용안정 업무를 하다가, 8월 후반엔 갑자기 한 팀원이 3개월 휴가를 내는 바람에 다시 다른 종류의 모성 업무를 하다가, 그 나가버린 팀원의 업무들을 마무리하고, 대신 인수인계를 하는 등, 나는 쉼없이 달렸고 달렸다. 처음엔 자의에 의해서 그다음엔 타의에 의해서.
지금 우리의 일이란 오로지 담당자만 시스템에서 수정할 수 있으며 문제를 해결해서 급여를 지급할 수 있다. 내가 쉬어버리면 나에게 급여를 신청한 사람들은 돈을 받을 수가 없다. 그래 안다. 나는 부품이라는 것을. 내가 싫다 하면 다른 부품이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담당자이니깐. 최소한 내가 담당자로 있는 시간에는 국민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입들이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대단한 일(업무)보다 먼저 부딪쳐야 하는 것은 발령받는 팀에 적응하는 일이다. 각 팀마다 업무가 갖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그것에 따라 그 팀의 공기의 온도와 숨소리의 횟수도 결정된다. 나 역시 처음에 우리 팀(기업지원팀)의 온도와 숨소리에 나를 맞추는 것이 꽤 힘들었다. 위에 적었다시피 우리 팀도 한 성격 하는 개성 있는 팀이라서 무조건 성격차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거고 일단 고용노동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고 일을 하러 왔으니 그러면 안 된다. 기업지원팀에서 일을 하게 되면 절대적 강자, 즉 '갑'은 조직이다. 나는 무조건 '을'이다. 나를 깎아내서 조직과 화합을 이루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신입들에게 조언해본다.
뭐지 이 흐름은? 뭔가 막 연설하는 느낌적인 느낌.
다시 한번 말하고 싶은 것은 기업지원팀도 신입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취업지원제도가 우리 부 핵심 정책이긴 한데 기업지원팀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본부의 인사담당자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