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들 수 없는 알아들 수 없는 타국의 언어로 차고 넘치는 음률. 밖은 몹시 흐렸다. 내 순서를 기다리며 턱을 괸 채 물끄러미 창 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흐린 날에 대한 재밌는 묘사들이 떠올랐다. 나쓰메 소세키는 흐린 하늘 색깔이 폐병 환자의 낯빛 같다고 했었지. 나도 한 소절 덧 대어 볼까 할 때, 문득 조지 오웰의 일침이 떠올랐다. 글을 쓸 때 제-발 식상한 묘사와 표현 좀 쓰지 말라며 부탁하던 그 말이. 그래서 나는 흐린 날을 묘사하기 위해 창 밖의, 주차장 입구 보수 공사를 보며 머리를, 어쩌면 단어를, 글자를 굴려본다.
음... 흐린 하늘은...
그래, 공사장 인부 아저씨의 바짓단 색깔을 닮았다. 물 먹인 시멘트 회반죽을 닮았다. 여기서 미세먼지 농도가 조금 더 올라간다면 저 공사장 아저씨의 하반신은 보호색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멀리서 누군가 본다면 중년 남성의 상반신만 덩그러니 공중에 떠올라 비질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
아저씨는 시멘트 가루를 쓸면서도 마스크를 턱까지 내린 채였다. 바람 때문에 먼지가 그대로 작은 소용돌이를 그리며 아저씨의 기관지로 훅, 훅, 끼친다. 그럼에도 별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공사장 인부들이 있는 풍경만 똑 잘라다가 네바다 주에 옮겨 놓은 듯하다. 사막 한가운데의 공사 현장처럼 계속 모래 바람이 불어제낀다. 정확히는 미세 먼지와 시멘트 가루가 섞인 회백색 가루 바람. 언뜻 서부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앞 문장의 물음표를 그리는 사이 이탈리아어로 흥얼거리던 오페라도 끝나고 창 밖의 아저씨도 바지 언저리에 슥슥 손을 문지르더니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내가 창밖을 보기 전까지 읽고 있던 구절은, "쓴다는 것은, 자신을 조금 밖으로 흘리는 것이다. 글자가 뚫은 조그만 구멍으로."라는 구절이었다.
어쨌건 공사장 인부 아저씨의 바지 밑단 같은 색깔의 하늘에선 조금씩 비가 내리고, 이런 흐린 날이면 으레 그렇듯 내 기분도 한 없이 우울했고, 이른 오전의 예감대로 오후 인터뷰를 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