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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ama Jan 15. 2019

#90.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누구인가?

[누만예몸][극사실 실천법] 나 지금 누구랑 얘기하고 있니?


    이 글을 읽기 바라고, 읽고 있는 '여러분'은 누구인가? 추측컨대 아마도 건강이나 운동에 관심이 많은 분일 것이다. 막연하게 운동의 소중함을 알고 계신 분일지도 모른다. 어쩜 살기 위해 건강이 절실한 분일 수도 있다.


    건강의 정도나 관심의 정도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일 것이다. 때에 맞춰 학교를 가고, 입사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우 비슷한 '삶의 여정'을 갖는다. 웬만하면 우리는 정규분포에 속한다. 거의가 다 평균에 속한다.


    그래서 나와 매우 흡사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적당히 인내하고, 적당히 노력하고, 적당히 게으르고, 적당히 느긋할 것이다. 욕심 많고, 잘못을 잘 잊고, 깨달음이 늦고,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우리는 각자 매우 특별하고 독특해 보이지만 사실 거기서 거기다.




    우리는 남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잘 안다 생각하지만 사실은 잘 모른다. 오래된 연인도, 부부도 실상은 상대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관계의 캐즘'은 웬만한 노력으로는 완전히 극복하기가 어렵다. 계속 '노력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즉, 모르는 상태로 계속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진짜 아는 것은 아니다.


    '잘 안다'라고 생각해서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오만'이다. 간혹 제삼자의 시각이나 판단이 맞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건 정말 가끔이다. 보통은 스스로 보다 잘 알기 어렵다. 그래서 섣부른 충고는 '관계'에 암적 존재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서는 잘 안다. 자기 스스로를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다. 알지만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세상 부끄러운 일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직시하지 못한다. 외면한다. 자신의 동영상을 보는 듯한 '어색함', '부끄러움'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을 나와 같은 부류로 생각할까 한다. 그러면 나는 여러분을 매우 잘 알게 되는 것이다. 나와 매우 비슷할 테니까 말이다.




    일단 나이대가 비슷하면 더욱 알기가 쉽다고 할 수 있다. 40대를 겪고 있는 나로서는 가장 이해도가 높은 나이대라고 할 수 있다. 겪어온 절반을 통해 겪을 절반을 이해할 수 있다. 방금 전에 겪은 30대도 이해도가 비교적 높다 할 수 있겠다. 곧 겪을 50대까지도 비교적 쉽게 상상이 가능하다.


    나이를 제외하면 각자가 처한 수많은 '환경과 상황'은 다를 수 있다. 같은 것은 그 환경과 상황이 '스트레스 상황'이라는 것이다. 직장인에게는 '회사'와 '일'이, 전업주부에게는 모든 종류의 '케어'가, 학생에게는 '학교'와 '학업'이 스트레스 상황이다. 나이와 성별은 달라도 '스트레스 상황' 속에 있는 것은 같다. 같은 환경 속에서의 일반적인 행태와 몸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다.


    가장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개인적 특이 사항'이다. 같은 나이대의, 같은 환경에 속해 있다 하더라도 개인마다 다른 점이 있을 수 있다. 유전적인 차이, 성장 환경, 식습관, 현재 생활환경, 심리적 안정, 보유 질환, 가치관 등이 다르면 몸에 대한 반응도, 대처도 다르다.




    나는 나의 글을 읽는 여러분을 '운동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이 때문 일 수도 있고, 스트레스 상황 때문 일 수도 있고, 원래 체력이 약해서 일수도 있고, 소싯적 환경 때문일 수도 있고, 현재의 식습관 때문 일수도 있다. 이유가 뭐든 여러분은 '예쁜 몸'이 필요한 사람이다.


    '진화의 산물'인 우리 몸이 원하는 '예쁜 몸'은 '외향적인 모습'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콘테스트를 하는 몸이 아니다. 지독한 '인내'와 '절제'가 있어야 유지되는 몸이 아니다. 삶의 기쁨을 '희생'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혀서' 생기는 몸이 아니다.


    진화의 산물인 예쁜 몸은 '질적'으로 '건강한 몸'을 말한다. 생활에 활력을 주는 몸을 말한다. 더 열렬히 사랑하고, 더 활동적으로 일하고, 더 짜릿하게 즐길 수 있는 몸을 말한다. 스트레스 상황을 이겨내고, 불확실한 미래를 견디게 해 주고, 오늘의 만족으로 충전하여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몸을 말한다. 즉, 행복을 주는 몸이 예쁜 몸이다.




    우리는 '살'이 없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마르고 울퉁불퉁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굳이 마르지 않아도, 굳이 울퉁불퉁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은 '선후'가 바뀐 것이다.


    '질적'으로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더니 불필요한 살도 빠지고, 때때로 울퉁불퉁 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 활기찬 삶을 살다 보니 슬림해지기도 하고, 울퉁불퉁한 몸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앞뒤 다 자르고 몸을 말리고, 울퉁불퉁하게 만들어야 '예쁜 몸'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틀린 말이다. 마르고 울퉁불퉁한 몸이 건강한 몸이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최선의 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우 안 좋은 몸일 수도 있다.


    우리의 지향점은 '건강한 몸'이다. 건강한 몸은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켜준다. 팍팍한 삶을 견디게 해 주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수 있게 해 준다. 버텨야 하는 것들을 버티게 해 주고, 누려야 하는 것을 극대화해서 누릴 수 있게 해 준다. 이 건강한 몸이 바로 '예쁜 몸'이다.


    '예쁜 몸'에 대한 각자의 외향은 다 다를 수 있다. 누구는 빼빼 마른 몸으로, 누구는 우람한 몸으로, 누구는 탄력 있는 몸으로, 누구는 울퉁불퉁한 몸으로, 누구는 통통한 몸으로 표현될 수 있다. 정해진 기준은 없다. 개인마다 다르고, 달라야 한다.




    나는 여러분을 '예쁜 몸'이 필요한 사람으로 상정할 것이다. '예쁜 몸'이 필요한 다양한 이유와 원인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것이다.


    때로는 나의 경험으로, 때로는 인간에 대한 이해로, 때로는 많은 연구자료들로부터 왜 우리가 '예쁜 몸'을 가져야 하며, 어떻게 '예쁜 몸'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대화하고자 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특성을 모두 다루는 것은 어렵다. 너무 많은 케이스가 존재한다. 따라서 모두가 참고할 수 있는 대표 케이스를 다루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예쁜 몸'이 필요한 모두를 대표할 만한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임신, 출산, 육아, 사회생활, 가사 등을 모두 경험한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평균적으로 본다면 40대 즈음 여성은 가장 약하고 힘든 몸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하고, 수많은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며, 다양한 호르몬의 변화를 견뎌야 하는 힘든 상황에 놓여 있을 것이다.


    40대가 아니어도,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았어도 여성의 몸은 상대적으로 복잡하고, 민감하다. 현시대의 생활과 맞지 않는 진화의 결과를 수용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여성이 질적으로 좋은 몸을 갖기 위해서는 더 '정확한 정보'와 더 많은 '올바른 실천'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질적으로 월등한 '예쁜 몸'을 만드는 방법론을 '여성'에 맞출 생각이다.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같은 몸을 원하는 남성들은 다른 글을 보기 바란다. 그런 방법에 대해선 잘 알지도 못하거니와 관심도 없다. 실제로 평생 운동을 할 생각이라면 중량과 시간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런 면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운동은 40대 이후의 남자에게도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저체력' 상태에 있는 여성을 기준으로 삼으면 많은 연령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여러분은 나와 비슷한 정신력과 운동에 대한 관심을 가진 여성분 또는 그에 준하는 체력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과거 전혀 다른 기준으로 운동을 강요했던 '여성분들'께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그땐 무지했음을 인정한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됐고, 그렇게 강요하면 안 됐었다. 완전히 다른 몸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약한 의지 때문이라고 했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무지의 소치로 인한 일이었음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질적'으로 예쁜 몸을 갖기 위해서는 기존의 많은 실천법들이 바뀌어야 한다. 잘못된 정보와 몸에 대한 이해도 바꾸어야 한다. '예쁜 몸'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차근차근 접근해 보자. 내가 했듯이 나와 매우 비슷한 여러분들도 모두 할 수 있다.


    부디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들이었고, 글들이길 바란다. 그 결과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길 바란다. 이것이 '건강한 사회'를 위한 나의 작은 일조가 되길 희망해 본다. []



* 공감, 댓글, 질문 등은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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