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전업주부' 라고 밝히는 명함은 나를 위축시키기도 했다. 남편의 수입에만 의존해서 산다는 것. 이것이 나를 가장 억눌렀다. 30대 중반까지는 1년에 한번 회사 면접을 보았고 출근은 약속한 곳도 있었는데 둘째가 너무 어려서 눈에 밟혀 포기하기도 했다. 어느 회사에서는 면접 첫마디가 '둘째가 너무 어리네요.'이기도 했다. '아, 내 몸 하나 움직여서 수입을 만들 수 있는 건 끝났나 보다. 나 아직 30대인데.'
실패를 경험하면 재도전의 오기가 생기기보다 내 존재가 점점 소멸되어 갔다. 명함 하나가 더 생긴다. '전업주부'와 '경단녀'로.
이참에 살림을 아주 끝내주게 잘해보자 마음먹었지만 평소 부지런하지 않은 나는 이것마저 쉽지 않다. 나만 졸졸 따라다니는 두 아이들을 떼어놓으려니 '저리 좀 가','둘이 좀 놀아' 말밖에 할 수 없었고, 책 읽어주고 몸으로 놀아주며 에너지를 전달해 주기엔 내 체력이 이미 방전된 상태였다.
열심히 산다는 게 뭔지 모르겠고, 결국엔 육아도 살림도 똑 부러지게 해내지 못하는 내가 점점 싫어지고 만다. 옆에서 바라만 보는 남편도 안타까움에 "아파트에 아줌마들 좀 사귀어봐. 애들 데리고 놀러 좀 다녀. 옷이 그거 밖에 없는 거야?" 이런 말도 그땐왜 그렇게 가시처럼 들리던지. 이제 남편을 향한 내 마음도 삐뚤어지고 말았다.
불과 4-5년 전까지의 나다. 피사의 탑처럼 기울어진 몸과 마음을 바로 세우기 시작한 건 책과 강연이었다. 마음 다스리기, 자존감, 감정 연습, 관계 등의 주제가 들어간 강연이면 혼자 찾아가 듣기도 했다. 특히 김창옥의 포푸리 쇼는 빨래를 개며, 설거지하면서 연속 들으며 내 시간을 늘려갔다. 울며 웃으며 나를 다독여주고 내 마음 알아주는 유일한 존재고 마음의 창이었다.
회사라는 조직에 내 한 몸 맡기려고 했던 일은 비록 실패했지만 그곳이 아니더라도 나를 조건 없이 받아주는곳이 더 많은걸 알았다. 그동안 내 눈은 좁은 단춧구멍 같았지만 사실 그 이상의 것을 보려고 하지 않은 것도 내 눈이었다. 아이 둘을 키워내는 일이 내 삶의 본질을 망가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무지함이었다.
마지막 회사면접을 치루고 지금까지 무려 7년이나 지났지만 남편은 가끔 내게 묻는다. “당신은 혹시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어?”예전 같으면 자존심부터 상해서 대답하기도 전에 울그락 불그락 표정부터 굳어졌겠지만 이제 아니다. “내가 회사 들어가서 어린 직원들한테 굽신 거릴 나이는 아니지 않나. 좋아하는 일 할 거야. 책방도 하고 싶고, 책과 관련해서 온라인스터디도 하고, 작가도 되고, 강연도 하고.”일단 큰소리부터 쳐 본다.
7년 전보다 살림솜씨는 분명 나아졌고, 내 상태도 좋아졌다. 어느 조직에 합류해 소득이 생기는 직업은 갖고 있지 않다. 큰소리 친 일 중에는 책모임 운영하는 것 하나만 이룬 상태다. 앞으로의 성장 가능이 몇 퍼센트인지 계산 되지 않아도 지금이 좋다. 단추 구멍 같았던 눈은 확장되었고 남편의 말 한마디에도 기죽지 않는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얼마 전 자기계발모임에 참여자들의 직업이 전부 교사였는데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연봉5억에 빛나는 전업주부 오현옥입니다.”당연히 아닌 줄 알겠지만 리더는 진짜냐고 되물었다.
“저의 노동 가치는 시간당10만원, 노동시간 14시간, 휴일 없고 365일 돌아가기 때문에 <100,000*14시간*365일=511,000,000> 이다.
가족은 지금 고액 연봉자에게 끼니를 얻어먹는 호강을 누리는 것이고, 세심한 살림은 여전히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 치우고 버리는 미학을 갖게 되었다. 나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였으며, 어떤 이들은 나의 성장을 축하해주었고 부러움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월50만원 수입도 벌지 못하면서 당당하고 뻔뻔하게 말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 괴테는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은 끊임없이 방황한다.’고 했다. 방황은 곧 노력하고 있다 는 증거였다. 노력하는 자신에게 작은 위로였던 내 행동들이 앞으로 빛나는 내가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