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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pr 14. 2019

봄날은 간다 @재회한사람들

창밖으로 드리우는 따뜻한 햇살, 잔잔한 바람에 흔들거리는 대나무 숲 소리, 어렴풋이 들리는 너의 흥얼거리는 목소리. 그렇게 흩날리는 벚꽃 속에 너와 내가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한 번의 사랑, 그리고 이별. 은수에게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봄날이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차고 넘쳤을 것이고, 서로를 향한 눈빛은 반짝였을 것이다.


무색하리만큼 시간은 흘렀을 것이고, 사랑에 무덤덤해질 때 즈음 다시 '너의 그 모습'이어도 괜찮다며 다가와 준 상우를 만났다.


술 취한 밤, 은수가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취기 가득한 채로 그렇게 서울에서 강릉까지. 슝. 새벽이 오기 전, 그 무렵 조금은 비릿한 강릉 밤바다 냄새와 공기는 상우와 은수를 감싸 안는다. 온전히 둘 밖에 없는 세상에서.


마음 하나로. 강릉에서 서울까지.


아니, 조금 더 멀리


라면이 끓는 시간 4분 30초. 나트륨 팍팍 넣은 라면을 후루룩 먹는 시간 5분 이내. 채 10분도 안 걸리는 '보글보글'의 시간. 그렇게 김이 모락모락 났던 상우와 은수의 '보글보글'시간은 지금, 어디쯤 왔을까.


라면에 김치를 곁들여 먹던 어느 날, 김치를 담글 수 있다는 은수에게 상우는 말한다. "아버지가 사귀는 사람 있으면 데리고 오래." 그러자 은수는 말을 바꾼다. "상우씨. 나 김치 못 담가"라며. 그가 가진 사랑의 온도는 언제나 100도씨. 김치 정도는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걸까. "내가 담가줄게. 내가"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맞받아친다.

'보글보글'의 유효기간이 다다랐을 때

어쩌면 은수는 언제나 펄펄 끓는 상우의 온도가 부담스러웠던 게 아닐까. 어쩌면 그들은 흔들거리는 대나무 숲 바람처럼 서로를 스쳐 지나갔던 게 아닐까. 노르스름한 보리밭 한가운데서, 휘청이지 않으려 중심을 잡으려 해도. 자꾸만 출렁이는 마음들처럼.


그렇게 우리는, 아니 너와 나는.


은수의 "헤어지자"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허탈해하는 상우. 그에게 이미 이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다음날 출근이고 뭐고 강릉에서 서울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던 상우인데. 어찌 상우가 이성적일 수 있을까.


이제 그만 나를 잊으라는 은수의 말에도, 상우는 몇 번이고 술에 취해 은수를 찾아간다. 배고픔에 자지러지듯 우는 아이처럼. 자꾸만 은수 생각이 나서. 노래를 듣다가, 영화를 보다가, 자기 전에, 라면을 먹다가, 길을 걷다 문득 추억과 마주할 때, 그러다 시도 때도 없이, 또 그러다 가만히 있어도 은수가 생각났을 것이다.


우리에서 너와 내가 되는 과정을 받아들이는 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보글보글 끓던 상우의 온도는 간식이 약한 불이 되었고, 은수는 벚꽃이 만개한 어느 날, 다시 그를 찾아온다. 어떻게 만들어 놓은 잔잔함인데.


다시 만난다면, 미소 지을 수 있을까.
초록 물결이 일렁이는 화장한 봄날, 뜨거운 여름밤 같던 너를, 그리고 단풍 같이 서로에게 물들었던 우리를, 겨울 첫 눈송이처럼 톡-하면 부스러질 것 같던 순수했던 마음들을 다시 마주하는 느낌이지 않을까.

따스한 봄날의 햇살처럼 꽤나 설레었을 일. 다시, 사랑에 실패할까 두려워 뒷걸음질 쳤던 은수는 미련이 남아서. 비바람이 몰아쳐 후두둑 떨어져 버린 벚꽃 잎들을 다시 만개한 나무 한그루로 만들려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썼던 상우도. 뒤돌아 볼 수밖에.

그렇게 우리는, 아니 너와 나는 사랑을 했고, 다시금 돌아올 봄을 기다린다.


어떻게 돌아보지 않을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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