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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olo May 30. 2021

수평선 너머로 향하며(2)-1

-직장생활이라는 여정과 그 무료함에 관하여.

 2021년의 여름 앞에서, 지나간 2018년의 여름을 되돌아본다. 되돌아본다는 것의 무게를 몰랐던 나는 갈수록 그 무게를 알아가는 것만 같아 괴롭다. 잘 돌아가지 않는 듯한 내 목의 뻣뻣함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되돌아볼수록 배어나는 지금 내 일상의 뻣뻣함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돌아보고, 다시 돌아온 지금 이 순간이 내게는 너무나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그 돌아봄의 무게를 나는 알아가는 것만 같다.  


 2018년, 나의 여름은 언제나 그랬듯이 여름 방학의 그 여름처럼 짧았지만 지독히도 외로웠고 괴로웠다. 그 지독한 외로움은 고독함과 함께 했기에, 그리고 취준이라는 나의 시계와 맞물려 더 깊게 나를 찾아왔다. 연이은 면접에서 나의 기대도 이어졌었다. 확률을 계산하는데 큰 소질이 없는 듯 하지만, 적어도 33%의 확률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33%의 확률이 숫자 0이 되기까지의 그 시간만은 지독히도 길었다. 짧은 여름 속에서 긴 기다림은 역설적이게도 긴 기다림 그 자체를 잊도록 했다 취준이라는 그 긴 기다림을.


 생각해보면 어떠한 회사를 가고 싶다 라는 목표가 없었던 것 같다 다만 나와 어울리는 회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별로 간절해 보이지 않고 듣고 싶은 말이 아닌 하고 싶을 말을 하는 구직자와 인연을 함께 하고 싶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도 스친다. 그 긴 기다림 속에서 나는 얼마나 간절했던가? 나의 간절함은 이 긴 기다림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간절함이었기에, 가고 싶다가 아닌 끝내고 싶다 이었기에 짧은 여름은 끝났지 않을 것만 같았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0으로 2018년의 여름과 작별했다. 옷이 벌거벗겨진 채로 복도에 서 있는 꼬마의 부끄러움보다 나는 더 부끄러웠다 결과 없는 과정을 다독여줄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기 때문이다. 내 길이 틀렸고 지금이라도 ‘남들처럼’ 살아라는 말을 듣는 내가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결과가 없는 과정의 아름다움을 타인에게 설파한 것도 아닌데 나 자신이 이토록 부정당하도록 한 무방비 상태의 나 자신에게 너무나도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그토록 지독히도 외로워만 했나 보다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기에.


 그 외로움 속에서도 나는 자신이 있었다. 나의 길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가고야 말겠다는 자신. 나는 그렇게 여름을 걸었고,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아닌 봄을 걸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바뀌어지게 된다. 

0이 1이 되고 만난 꽃에서 봄을 보았다.


 어디에나 나의 인연은 다 있는가 보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타이밍이 아닌 생각지도 못한 장소와 시간이 다가온 것을 보면 말이다. 장소를 바꾼다는 것은 시간을 바꾸는 것이기도 하고, 시간을 바꾼다는 것은 장소를 바꾼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나의 계절도 변했고, 시간도 바뀌어졌다. 

2018년 10월 나의 봄은 그렇게 찾아왔다. 


(2)-2.



 이 글을 쓰며 찾은 스스로의 위로의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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