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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olo May 31. 2021

수평선 너머로 향하며(2)-2

-직장생활이라는 여정과 그 무료함에 관하여.

 2018년의 봄, 그 시작을 나는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전혀 다른 장소에서의 낯섦 보다 맡지 못했던 낯선 냄새에서 느꼈던 그 낯섦과 시간의 경계를, 그리고 10월의 봄을 기억한다. 기대치 않았던 아니할 수 없었던 시간이지만, 기대 해왔던 것처럼 나는 녹아들었다. 이런 느낌은 특별할 것 없었던 순간들 조차도 특별하게 기억하게끔 하는지도 모르나 보다. 

 유달리 친절하셨던 수위 아저씨와 오후 4시의 따스함은 면접이라는 무거움을 감싸줬는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지금은 한 달에도 몇 번씩 통화하고 조우하며 막역하게 지내는 A 대리와 B과장의 출장 일정이 적힌 테이블 표를 보고 마치 나의 내일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을 면접을 앞둔 그 찰나에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는 그렇게 오후 4시의 석양과 따스함에 취할 즈음, 마지막으로 면접 장소에 들어갔고 마지막처럼 면접을 마쳤다. 누구보다 간절한 상황이었지만, 어떠한 확률 계산에도 불구하고 0이란 결과로 바뀔 수 있음을 수용하였기에 간절함 마음보다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보냄에 마음의 무게를 뒀는지 모른다. 그렇게 찰나에 앞 서 생각한 Paolo 사원의 해외출장 일정이 곧이어 내 일이자 내일이 됐고, 10월의 추위보다는 따스함에 한껏 매료되지 않았나 란 생각이 그때를 돌아보는 이 순간에 남아 있는가 보다.


 봄이란 본디 짧다. 우리나라는 본디 4계절로 다름을 구별해오지 않았던가. 18년 10월의 봄은 겨울 끝이 아니라, 여름 끝에서 찾아왔기에 더욱 짧을 수밖에 없었다. 봄이 끝난 후의 여름이 아니라,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하지만 21년의 여름 앞두고 돌아보니, 그 겨울 또한 겨울이 아니게 느껴짐이 너무나 서글프게 다가온다. 취준이라는 그때의 긴 기다림 또한 지금 이 순간에 돌아보니 아주 짧은 기다림이었으니 말이다. 아주 아주 짧은 기다림 말이다.


 11월 말 점점 추워질 적, 새벽에 공항에서 찍은 사진. 동이 트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성격이 원체 둥글지 못해, 별 뜻 없이 날아다니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가슴으로 울었고 무너졌다. 울었던 얼굴을 닦아준 건 앞서의 A대리와 B과장이다. ‘사회생활이 그런 것 아니겠어?’가 아니라 “뭐 먹고 싶어? 곱창 좋아해? 맛있는 거 먹고 그냥 마음 쓰지 마”라고 먼저 다가와 주었기 때문이다. 12월 초 숱하게 흘린 어린 동생의 눈물을 닦아준 그 마음들은 곱창을 그리 좋아하지 않던 내가 언제나 ‘곱창 먹을래?’ 라며 다가온 그 마음 때문인지, 지금은 홀로 그 겨울이, 그 순간이 사무치게 그립기 시작하면 곱창을 찾기 시작하는 나를 보며 깊은 그리움과 감사함을 느낀다. 


울 때마다 위안을 가져다준 그 곱창

32 Seolleung-ro 86-gil, Daechi-dong, Gangnam-gu, Seoul


 그렇게 나는 따스한 외투 덕분에 첫겨울을 위태롭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미소와 즐거움을 잃지 않은 채 말이다. 그리고 금세 2019년의 봄은 다시금 찾아왔다. 


그 당시 찍은 사진들을 찾다가 발견한 사진.

 그 겨울에 이 작품을 보며 남겼던 짧은 감상평

"Flowers in the winter

my late 20's in life

the height and peak of 'Youth'. 

it's awkward when I look at this painting in 'this winter'."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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