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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olo Sep 19. 2021

수평선 너머로 향하며 (2)-11

-직장생활이라는 여정과 그 무료함에 관하여.

 변하지 않은 것 하나는 점 하나에서 시작된 끄적임이 점점점점(....)으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의 가을은 2021년의 가을이 되었다. 시간이 변했고 계절이 변했으며 그렇게 나도 변했다. 그리고 '수평선 너머로 향하며 (2)-1'을 시작하며 느꼈던 직장생활에 대한 감정조차도 변했다. 직장생활이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만 같기에, 변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일찍이 아마도 무기력함을 느꼈던 내가 말이다. 이는 직장생활의 무료함이었던 건가, 아니면 나의 무료함이었던 것일까.


 2021년의 봄은 그런 중에 찾아왔다. 2020년을 끝으로 멈췄던 나의 끄적임도 그런 중에 찾아왔다. 시간이 변했음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내가 이러한 끄적임을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좋아함을 넘어 끄적임으로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또한, 이런 조악한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있다. 글은 본디 그 사람을 담고 그 사람을 닮는다. 수줍고도 예민한 성격 탓에, 나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다 드러낸다는 것이 나는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아니 두려웠다. 나를 알아채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말이다. 글을 쓴 나 보다도, 나의 글을 읽은 누군가가 나를 더 잘 알아챌까 봐. 그래서인지 여전히 깊게 생각해야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남들을 곤란케 하는지도 모른다. 나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해 달라고 말이다. 나의 글은 나를 닮기에, 아니 나를 담기에.


 직장생활의 무료함이 시작되기 전의 가을을 다시 생각한다. 나는 어쩌면 나를 너무나 잘 알았던 탓에, 나에게 다가올 시간의 향방이 달라질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았던 건지도 모른다. 영화가 중반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결말이 그려지고 스토리의 전개가 너무 뻔하면 남은 시간이 너무나 지루하지 않았던가. 아니 영화관을 나갈까란 생각도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런 시간을 수용해야만 함을 느꼈기에, 그리도 서글퍼했는지도 모른다. 직장생활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했기에, 너무 큰 기대는 그에 맞는 실망도 남기기에.


만성 무력함과 무기력함에 지칠 때 면, 나는 언제나 여행을 떠났다. 

시간을 바꾸기 위해선 장소를 바꾸란 누군가의 말을 기억하며.

바라보며 느끼며 들이마신 그 시간의 내음이 잊히지 않는다. 순간이 담긴 이 사진이 그 시간을 기억한다.

Thomaskirchhof 15/16, 04109 Leipzig, Germany

  


 너무 큰 실망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것은 나의 끄적임이다. 끄적임을 통해서 스스로 위안했다. 왜? 내가 이 결정을 했으며, 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지 말이다. 책임을 물을 상대는 나였고, 나는 결정에 대한 책임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직장생활이 지옥 같지는 않았다. 다만 나의 순진한 기대와 달리, 현실의 무게는 꽤나 무겁고 그런 현실은 아주 빨리 달라지지 않는 사실만을 확인했다. 인생은 영화나 소설이 아니기에.


 나의 끄적임은 지난 나의 다이어리와 사진 속에 묻어 있다. 그래서인지 술에 취할 때도, 취해 슬플 때도 나는 사진을 남겼고, 끄적임을 남겼다. 그런 시간들에서도 기억을 위해 남긴 끄적임은 나를 위함이었음에도, 무료함에 절은 나는 다른 이들에게 무료하게만 보였나 보다. 그래서 그때의 나를 많은 사람들이 블루하게만 기억했나 보다. 


 나의 블루와 남이 나를 보는 블루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한다.

 어둑한 조명 아래 음악을 안주 삼아 곁들이는 레드와인 한병의 조화가 나에겐 블루다.

 카사안도 용소로19번길 57 남구 부산시


 문득 머리를 스치는 대화가 떠오른다. 꽤나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고 '나는' 생각했기에 그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과 지난 기억과 시간에 대한 애틋함에 대해서 깊게 말한 적이 있다. 왜 내가 애련한 지, 왜 지난 시간이 나에겐 이렇게 서글프게 느껴지는지. 직장생활은 왜 이리 재미가 없고 무료한 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통화 너머로,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그 시간을 함께 해주던 친구들은 시간이 지나 보니 나의 이런 시간을 '블루했던 너'로만 기억한 사실. 어떻게 생각하나며 수줍게 전했던 나의 끄적임 또한 나의 블루함의 방증일 뿐이었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도 모를 나의 끄적임이었을 뿐일 테니까.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직장생활은 원래 무료하기도 하고 무기력한 시간도 있는 게 당연한 거야"라는 말 한마디를 나는 듣지 못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은 "괜찮다. 힘내라 다 잘될 거다"라고만 말했다. 어쩌면 직장생활을 통해서 나는 관계에 대해 지나온 시간에 대해 더 깊게 실망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시간이 있기 전의 그 시간들을 그리워하며. 이제는 많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 보다, 깊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나 그립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며 좀 더 고독해지기도 하고 외로워지기도 하는 것일까. 이 모든 생각은 직장생활이 시작되고 나서 시작됐다. 이 모든 생각들이.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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