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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olo Oct 21. 2021

수평선 너머로 향하며 (2)-13

-직장생활이라는 여정과 그 무료함에 관하여.

 이런 감정들을 봄에는 기대치 못했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과 생각도 찾아왔다. 나는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시간은 이렇게 나를 바꿔간다. 계절이 변하는 것인지, 시간이 변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여름, 어느새 가을이 찾아왔다.


 (2)-13


 무료함, 그 끝을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봄이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되며 배운 것이 있다. 나는 변하지 않더라도 '시간은' 변해간다는 것. 나는 변하지 않았지만, 시간 속의 내가 변할 수도 있다는 것. 그렇기에 무료함, 직장생활의 무료함 때문에 시작된 이 글은 무료함이 아니라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로 변한 것이 아닐까. 그 시간에는 무료함도 유료함도 뒤섞임도 있을 수 있을 테니까.


 제목이 글의 성격과 내용에 부합하지는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그 시점과 시점, 순간과 순간들에 멈춰 감정과 기록을 남겼고 이를 이어보니 '여정'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무료함 속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쓰고 싶은가라는 생각보다는 무엇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있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나의 끄적임의 제목은 묘하기도 하다. '수평선 너머로 향하며', 문득 머리를 스치는 기억과 장면이 선명하다.


언덕에 바람, 717 돌산로 돌산읍 여수시 전라남도   


 바다를 바라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기도 또는 아무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래서 수평선 너머를 그렇게도 바라보았는지 모르겠다. 저 너머는 어떨까? 수평선과 그 경계의 불분명함은 그래서인지 그 너머를 바라보게끔 했나 보다. 불명확하고 불분명한 무언가. 취업 시장에 내던져졌던 그때의 나를 투영한 것인가, 그 시간의 나를 이미 본 것인가. 아마도 이런 무의식은 본능적으로 이 상황을 해석한 것만 같다. '수평선 너머로 향하며',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여정의 이정표처럼.


 본디 목적 없는 여행을 선호했다. 장소만 정한 후, 몸을 내맡긴 여정이 나답다고 느낀 나였기에. 하지만 장소 조차도 선호할 순 있지만, 무조건 선택만은 할 수 없는 다른 여정이었기에. 기존의 여정과 직장생활이라는 여정은 이미 그 궤와 결을 전적으로 달리했다. 하지만 나는 순진하게도 여정은 같을 수 있다고 믿었고, 그렇게 걸어왔다. 그 결과, 나는 이 시간과 순간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직장생활이 당연히 그렇지라는 생각이었다면, 그런 믿음이었다면 당연하게도 이 글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


 여정은 언제나 남기는 것들이 있다. 글의 끝맺음에서 무엇보다 남기고 싶은 말은 직장생활에서 이 무료함이란 여정이 남기는 것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 무료함에 질식하는 듯했지만, 나이고자 하기 위해 무료함의 바닷속에서 발버둥 쳤다. 이 글도 그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 나는 무료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경험한 대신, 온몸으로 나일 수 있기를 바랐다. 이를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 시간은 흘러가야만 한다. 흐르고 흐르다 보면 내가 아니라 시간이 바꾸는 것이 생길 테니. 


 지난 삶을 돌아보는 것, 다가올 삶을 그려보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바라보는 것이 이 글의 흐름과 같은 것이 우연일까. 무료함에 지쳐, 무료하기 이전을 돌아본 나. 무료함이 끝날 수 있을까란 생각으로 유료함을 기대해본 나. 무료함도 유료함도 순간 속에 있음을 바라보는 나. 결국 직장생활이라는 여정은 내가 이어온 여정의 궤와 전적으로 달리 하지 않았다는 것. 이 또한 시간이 바꾼 것이 아닌가.


 지금도 무료함이 잦아들 때가 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전과 달리, 더 이상 무료하지만은 않다. 직장생활을 통해서 다른 모습의 나를 보았고,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한 발짝 떨어져 보니 사라지는 신기루처럼 '지난' 것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편향성도 거둘 수 있었다. 지나온 시간도 한 발짝 떨어져 보니 허무한 신기루 같았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그리고 나를 잡지는 않는. 이를 통해서 진심으로 누군가를 대한다는 게, 그 진심을 오롯이 가지고 순간과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진심인 순간에서, 진심을 다할 벗을 직장생활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다. 무료함을 벗어보니 지금의 순간을 채워주는 것들이 있었음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직장생활이라는 여정을 통해 잃는 줄만 알았지, 직장생활이라는 여정을 통해 채워가는 줄은 몰랐던 나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순간에 진심을 다해보면 어떨까. 시대가 변해도, 사회가 변해도 진심은 변하지 않는다. 직장생활이라는 여정에 진심을 다한다면, 이어져 오고 있는 삶이라는 여정에 진심을 다한다면. 우리는 마주할, 다가올 그리고 마주하는 여정에 대한 기대를 멈추지 않을 수 있을 테다.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 중동 해운대구 부산

가을의 바다치곤 너무나 화사하다.


수평선 너머로 향하며,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며.

나는 여전히 아무 생각이 없어지기도 또는 아무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리곤 또 다시 이렇게 글과 사진을 남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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