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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olo Oct 11. 2021

수평선 너머로 향하며 (2)-12

-직장생활이라는 여정과 그 무료함에 관하여.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직장생활은 원래 무료하기도 하고 무기력한 시간도 있는 게 당연한 거야"라는 말 한마디를 나는 듣지 못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은 "괜찮다. 힘내라 다 잘될 거다"라고만 말했다. 어쩌면 직장생활을 통해서 나는 관계에 대해 지나온 시간에 대해 더 깊게 실망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시간이 있기 전의 그 시간들을 그리워하며. 이제는 많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 보다, 깊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나 그립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며 좀 더 고독해지기도 하고 외로워지기도 하는 것일까. 이 모든 생각은 직장생활이 시작되고 나서 시작됐다. 이 모든 생각들이. 


(2)-12 


 직장생활이라는 여정과 그 무료함에 관하여란 주제로 시작된 나의 끄적임이 어느새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을 맞이했다. 가을은 내게 따뜻했던 적이 없었다. 지난 나의 시간을 아무리 되감아보아도 가을은 내게 따뜻했던 적이 없다. 그래서 가을은 조금은 쌀쌀한 그렇다고 차갑지만은 않은 그런 느낌으로 내게 기억되고 있다. 직장생활의 무료함에 관하여 의식의 흐름대로 써오며 느낀 나의 직장생활 또한 차갑디 차가운 겨울보다는, 쌀쌀하고 고독함이 배어나는 가을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가을에서 시작된 나의 직장생활 때문인지, 이 글 또한 가을이 돼 서야 왜인지 끝맺음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가득하다. 아니 끝내야만 하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직장생활의 그 시작을 바라던 2018년의 그 가을처럼. 시작과 끝은 다르지 않기에. 직장생활의 무료함에 대한 글도 끝맺는 것이 왜인지 맞는 것만 같다.


 나는 무료함으로 이 글을 시작했다. 봄이 왔음에도 지독히 무료했기에 왜인지 나는 그 무료함을 알고 싶었다. 마주하는 그 순간을 마주하기보단, 지나온 시간에 대한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보며. 왜 나는 무료한 지, 왜 나의 직장생활은 이리도 무난한지에 대해서 후회하고 실망만 하며. 


 그렇게 시작된 기억의 조각들을 퍼즐 삼아 나는 하나씩 하나씩 손에 잡히는 대로 맞추어 보았다. 3년도 넘은 핸드폰은 그래서 여전히 내게 소중하다. 겉은 낡았지만, 속은 그대로다. 그 휴대폰의 사진첩에는 3년도 넘은 기억들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진첩의 사진들도 뒤적이며 퍼즐을 맞추어 보았다. 그래서 나의 글은 온전히 나의 의식대로 흘러왔는지 모른다. '수평선 너머로 향하며 (2)-1'에서 '(2)-12'까지의 전개는 이런 나의 무작위적인 의식의 흐름을 닮아있다. 시간의 변화, 계절의 변화 그리고 의식의 변화는 묘하게 닮아있다. 하나인 듯 아닌 듯.


  의식의 흐름대로 이렇게 '수평선 너머로 향하며 (2)-12'까지 오게 됐다. 직장생활이라는 퍼즐을 맞춰보면서 '무료함'인 줄만 알았던 그 순간도, 지나고 보니 하나의 순간이자 퍼즐임을 이제서야 느낀다. 다가올 시간 앞에서, 지나간 시간 앞에서 나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불평불만을 해봐야 시간은 들은 척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결국은 지나고 봐야 안다. 간사한 것은 범인(凡人)인 나 일 것이다. 그 순간 조차 내편이길 바라기'만' 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에. '이런 시간이 올 것을 알 수 있었다면 그렇게나 불평하진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는 나니까 말이다.

길이 있다면 기차는 달릴 수 있다. 길이 없다면 꽃들은 자리할 수 있다.

대저생태공원, 대저1동 강서구 부산시


 무료함 때문에 시작된 글이, 무료하지 않음에 대한 서사로 변해가는 과정을 써 내려가는 것이 묘하다. 봄이 찾아왔음에도, 지독한 고독과 무료함이 내게는 쉼 없었기에. 나는 끄적임에서 답을 찾고 싶었다, 아니 글로 이 감정을 풀어내고 싶었다. 앞선 글 (2)-11에서 나의 블루와 타인이 보는 블루에 대해서 약간의 설명을 한 바 있다. 계절적으로 봄이 도래했음에도, 나는 이런 여유인지 봄을 느낄 수가 없다. 그렇게 봄이 스쳐가는 듯했다. 

 

 글을 써 내려가며 마치 3년 전의 일이 어제 아니 오늘처럼 느껴져 더더욱 외롭기도 했다. 나의 선택에 대한 후회가 아닌 책임으로 인해. 책임을 져야만 하는 시간에 내가 서 있기에. 의식의 흐름대로 써내려 가는 중에 2021년의 봄은 여름이 돼 있었다. 장소의 변화만이 유일한 탈출구라 생각했던 봄의 끝에서, 장소를 바꾸지 못한 채.


 하지만 내가 바꾸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시간이 바꾸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이어진 나의 글을 보며, 나는 시간이 아닌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맞춰져 가는 퍼즐을 바라보며 시간과 기억이 담긴 사진과 글을 바라보며. 진부하지만 잊어가던 나를 기억하게끔 한다. 내가 무엇을 할 때, 유료함을 느끼고 행복했는지. 이보다 더 어렵고 힘든 시간도 있었으며, 그 시간까지도 내가 버텨내고 이겨내지 않았느냐고 말하며 말이다.


가을 같은 여름, 여름 같은 가을 속에서

대저생태공원, 대저1동 강서구 부산시


이런 감정들을 봄에는 기대치 못했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과 생각도 찾아왔다. 나는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시간은 이렇게 나를 바꿔간다. 계절이 변하는 것인지, 시간이 변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여름, 어느새 가을이 찾아왔다.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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