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에브리원> 방송 프로듀서 베키
번아웃 증후군
탈진(burn out)은 내게 해당하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두 곳의 공공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세 번째 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를 했다. 어렵게 입사한 만큼 업무도 관계도 잘 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증가되는 업무량과 처음 접해보는 업무의 연속에 야근과 주말 근무는 늘어만 갔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고 3년째 휴직자 대리업무까지 맡으니 체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다시 신입사원으로 시작한다’는 마음을 먹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그렇게 탈진이 왔고 일 자체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인사 업무에서 기본이자 핵심인 채용 업무를 진행하고 싶지 않았다. 이전에는 다른 부서에서 ‘누군가 퇴사한다’고 하면 ‘이 분이 왜 퇴사를 하는지’, ‘퇴사 이후에 계획은 있는지’ 궁금했으며 신속하게 채용 계획을 세워서 충원을 진행했다. 하지만 번아웃이 온 이후에 다른 부서장에게 채용 요청을 받으면 겉으로는 웃으며 “네.”하고 대답했지만 의욕이 없고, 채용 업무를 준비할수록 오히려 ‘부서관리를 어떻게 하기에 퇴사자가 빈번한 것이지?’란 물음만 떠오르고 화만 치솟았다.
채용 업무뿐 아니라, 여러 업무를 하며 야근한 뒤에도 일에 대한 고민이 여전했고, 해소하지 못한 대인 갈등의 잔여 감정에 속을 앓기도 했다. 중요한 회의나 행사 걱정에 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당시에 주위 선배나 지인이 ‘너무 피곤해 보인다’며 ‘일을 잘 거절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고 조언을 해주었지만, 중고 신입직원으로 그렇게 할 수 없는 입장이었고, 성과로 보여 주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러던 중 결국 탈진이 왔고, 이도 저도 할 수 없었다. 더 악화되기 전에 면담을 요청하고 일을 조금 덜어냈으나, 한번 무너진 상태를 회복하는 것은 여간 쉽지 않았다.
베키는 1년 내내 방송국에 매어 있다
<굿모닝 에브리원>은 지역 방송사 PD였던 베키가 해고된 뒤, 어렵게 메이저 방송국에 취직해 동시간대 시청률 꼴찌인 아침 뉴스쇼 ‘데이 브레이크’를 다시 살려내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베키는 지역 방송국에서 가장 빨리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며 프로그램을 꾸려왔지만, 하루 아침에 해고를 당한다. 이직 후에도 역시나 같은 일상으로 1년 365일 방송 프로그램에 매달린다. 그 결과, 기적처럼 시청률을 끌어올리며 프로그램을 살려내고 메이저 방송사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게 된다.
사람마다 직장 생활의 목표는 다양하다. 생계 유지, 자아 실현, 명예나 지위 획득 등 여러 가지 이유지만 공통된 것은 ‘건강해야 일을 할 수 있고, 열심히 노동한 뒤에는 반드시 휴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베키는 결국 성공하지만, 그 성공은 자신을 갈아 넣은 결과이다. 우리는 낮에 일을 했으면 밤에는 꼭 쉬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일할 기운을 얻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야근 문화가 강해서 ‘공짜 야근’, ‘수당 못받는 야근’이 너무 일상적이었다. 그나마 법정 1주 52시간 근로제가 정착되고 나서야 그런 문화가 순화되었다.
일전에 부서장 사이의 대화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연구소 소장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참 묘하게 업무에 대한 아이디어는 퇴근했을 때나 잘 쉬고 일어난 아침에 떠오른다.” 지금처럼 참신한 기획과 진득한 협업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잘 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 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베키는 본인을 헌신하며 프로그램을 살렸지만, 남자친구와 연애를 이어가지 못하고, 동료들과의 일상적인 술자리에 참석하지도 못한다. 물론 잠도 충분히 취하지 못한다. 과연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영화 <인턴>에서도 온라인 쇼핑몰 사장인 줄스는 회사 사업 때문에 남편과 다툼이 생기고 육아에도 소홀해진다. 이런 압박감과 피로감은 분명 사업, 업무, 개인 생활에 악영향을 미친다.
휴식은 일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며, 시간 관리의 결과물이다
휴식을 하기 위해서는 잔업을 남기지 않아야 하고, 최대한 평일 야근이나 휴일 근무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시간 관리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 동안, 담당 업무를 시간 내에 진행하고 퇴근 시각에 가정으로 복귀해야 한다.
경험적으로 얻은 최선의 시간 관리 방법은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매일 업무 일정을 짜고, 퇴근 전에 당일 진행한 업무를 자기 보고 형태로 기록하는 것이다. 출근해서 바로 업무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 해야할 업무 목록을 만들고 시간대를 배치한다. 오전에는 동료나 타 부서의 협조를 받을 사항부터 업무 연락을 취하고 남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계획안이나 보고서를 작성한다.
오후에는 각종 회의에 참가하며 업무를 진행하고 과제를 수행한다. 마지막으로 그날 진행한 업무를 ‘자기 보고’ 형태로 기록하는 것이다. 회사에서 일일 업무보고를 한다면 그 양식을 사용해도 좋지만, 아니라면 엑셀 파일 등에 당일의 실적을 기록해 놓는다. 그리고 짬짬이 시간이 날 때, 그 기록지를 보고 스스로 질문한다. ‘무엇이 잘 됐고, 무엇이 잘못 됐는지’ ‘왜 일정에 차질이 생겼지?’ ‘그 회의는 꼭 참여해야 했을까?’ 이렇게 하면 자신의 업무 기준을 세울 수 있고 자연스럽게 시간 관리까지 효율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
스티븐 코비에 의해 잘 알려진 ‘아이젠하워’의 시간관리 매트릭스를 예로 들면, 흰 종이에 십자가를 그리고 가로선은 시급성 기준, 세로선은 중요성 기준으로 삼는다. 그리고 사분면을 만들어서 ① 중요하면서 시급한 것, ② 중요하지만 시급하지 않은 것, ③ 중요하지 않지만 시급한 것, ④ 중요하지도 시급하지도 않은 항목을 기준으로 사분면을 나눈다. 그리고 ①은 즉시 실행(Do) → ②는 계획을 세워서 실행(Decide) → ③은 위임이나 업무 인계를 통해 처리(Delegate) → ④는 과감하게 삭제(Delete) 해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관건은 바쁘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제대로 실천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순위 판단에 오류가 있거나 판단 자체를 잘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럴 때는 업무의 목적과 목표을 기준으로 재점검하거나, 상사나 동료의 조언을 얻어 유연하게 수정을 해야 한다. 시급한 일이 많으면 ‘그것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눌리거나 강박관념이 생길 수 있다. 시급한 일은 대체로 내 업무가 아닌 타인이 필요로 하는 질문이나 확인 요청, 또는 협조 사항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일 또한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 적절하게 처리하되,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인지 수시로 점검하고 진행 방식에 대해 협의해서 개선해 나가야 한다.
가능하면 ①의 사안은 ②로 전환하여 평소에 준비할 시간 여유와 체력을 충분히 가져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고 ③과 ④의 사안은 과감히 줄이거나 적합한 담당자를 찾아 업무를 조정하고 인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움 TIP ⑦ 휴식을 취하기 위한 일련의 방법
업무만큼이나 중요한 ‘휴식’을 취하기 위한 일련의 방법이다.
첫째, 점심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이다. 누구와 무엇을 먹을지, 식사하면서 무슨 대화를 나눌지 구상을 하는 것이 좋다. 점심시간은 잠시 업무에서 벗어나 동료와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다. 동료와 업무나 인생에 대한 고민·고충을 나눌 수 있는 여유 시간이다. 평일의 중간인 수요일이나 마지막 날인 금요일 등에 약속을 잡아보자. 아니면 가까워지고 싶은 동료가 도시락을 싸온다면 같이 도시락을 싸와서 어울리는 것도 좋다.
둘째, 일과 중간 중간 휴식 시간을 갖는다. 흡연자들이 일하는 사이에 일정 간격으로 담배를 피며 사담을 나누는 것처럼 비흡연자라면 동료 한 두명과 함께 옥상이나 공터를 거닐며 바람을 쐬거나 대화 나눌 시간을 가지면 좋다.
셋째, 퇴근 후에는 업무를 잊는 연습을 한다. 업무에 대한 고민이나 잔상이 남아 있다면 노트나 휴대전화 메모장에 적고 잊어버린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것은 최대한 짧게 고민하고 덮어버린다. 실행이 수반되지 않는 고민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리고 운동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면서 내 생활에 집중한다.
넷째, 업무 관련 교육이나 행사에 다녀온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활기를 얻을 수 있고, 인적 교류를 함으로써 안목을 넓혀 업무 안정감을 찾을 수도 있다. 꼭 쉬는 것만이 휴식은 아니다.
다섯째, 일주일에 하루는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이 휴식이다.”는 말이 있다. 어떤 약속이나 일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고 충분히 늘어지고 딴짓을 많이 해보자.
한 직장에서 1년만 일해도 업무 분장에 관한 눈이 뜨인다. 신입 때는 신입사원이기에 지시한대로 업무를 받아 수행하지만, 이후에는 점점 부서장 면담이나 회의 자리에서 업무 개선에 대해 언급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안목을 갖춰야 한다. 실력이나 역량이 부족해서 야근하는 것일 수 있지만, 한 부서에서 3년 이상으로 근속했다면 그것은 개인 역량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보이지 않는 압력에 의해 감수하는 야근’이나 나중에 더 연차가 쌓였을 때 ‘지금 선배들처럼 대우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의한 야근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상황과 시대는 변한다. 시급한 업무에 집착해 쳇바퀴 구르듯이 겉돌지 말고, 업무 흐름을 좇아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인용] 모니크 밸쿠어, 「번아웃 증후군 어떻게 극복할까」, 하버드비지니스리뷰, 2016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