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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의 빛

by 부소유

빛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태양이 하늘에 있고, 전등이 천장에 달려 있으니 당연한 생각이다. 하지만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은 안다. 빛은 옆에서도 오고, 때로는 아래에서도 온다는 것을. 작은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오는 빛,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에 반사되어 번뜩이는 빛,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의 빛. 그것들을 모아 하루를 밝히는 법을 반지하 사람들은 안다.


1986년 겨울, 서울 변두리의 한 산부인과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복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다. 주머니에는 3만 원이 전부였다. 병원비는 5만 원이었다. 동료에게 빌린 2만 원을 더해 겨우 맞췄다. 간호사가 나와 - 딸이에요, 건강해요, 하고 알렸을 때 아버지는 안도와 실망이 섞인 한숨을 쉬었다. 아들이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딸이 이 세상에서 겪을 차별이 걱정되었을 뿐이다.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로 아이를 보던 할머니가 중얼거렸다. - 딸이네. 쓸데없이. 그 한마디가 아이의 운명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돌아서서 병원을 나갔다. 손자가 태어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 고모가 아들을 낳았다. 할머니는 그제야 활짝 웃으며 병원에 찾아왔다. 닭백숙을 끓여 와서 고모에게 먹였다. 같은 해에 태어난 두 아이, 하지만 시작부터 달랐다.


그 여자아이가 바로 나, 김은지다.


나는 반지하에서 자랐다. 정확히 말하면 지하 0.7층이었다. 완전한 지하는 아니지만 지상도 아닌 애매한 공간. 창문의 절반은 땅 밑에, 절반은 땅 위에 있었다. 그래서 밖을 내다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종아리만 보였다. 구두, 운동화, 하이힐, 슬리퍼. 나는 발걸음만 보고도 그 사람의 기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급한 발걸음, 느린 발걸음, 망설이는 발걸음, 춤추듯 가벼운 발걸음.


반지하는 습했다. 여름에는 곰팡이가 피었고, 겨울에는 결로가 맺혔다. 벽지는 늘 축축했고, 이불은 눅눅했다. 제습을 해도 소용없었다. 습기는 벽을 타고, 바닥을 타고, 끊임없이 스며들었다. 어머니는 매일 걸레질을 했지만 물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반지하의 숙명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도 빛을 찾았다. 아침 8시에서 8시 30분 사이, 정확히 30분 동안 햇빛이 거실 한구석을 비췄다. 나는 그 시간에 맞춰 그곳에 앉아 책을 읽었다. 따뜻한 빛 속에서 읽은 이야기들은 특별했다. 신데렐라도, 백설공주도, 인어공주도 모두 반지하에서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젠가는 지상으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열두 살이 되던 해, 나는 처음으로 반지하가 부끄럽다는 것을 알았다. 학교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가 -너희 집 왜 이렇게 어두워? 지하야? 하고 물었을 때였다. 나는 -반지하야, 하고 답했지만 친구는 이해하지 못했다. -반지하가 뭐야? 지하 아니면 지상이지. 나는 설명할 수 없었다. 반도 지하도 아닌 이 애매한 공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날 이후 나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지 않았다. 대신 친구 집에 놀러 갔다. 대부분 우리보다 높은 곳에 살았다. 2층, 5층, 10층. 그들의 집은 밝았고, 건조했고, 창밖으로 하늘이 보였다. 나는 부러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일기장에만 썼다. ‘언젠가 나도 하늘이 보이는 집에 살 거야.’


스물두 살,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울지 않았다. 할머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나도 할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사랑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할머니의 차별은 너무 노골적이었고, 상처는 너무 깊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빈자리는 컸다. 미움도 일종의 관계였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서른두 살, 나는 작가가 되었다. 첫 책의 제목은 ‘반지하의 빛’이었다. 내 이야기였고, 우리 가족 이야기였고, 반지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책이 나오던 날, 아버지가 말했다. - 은지야, 우리가 반지하에 살았던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구나. 네가 그것을 자랑스러운 이야기로 만들어줬어.


지금 나는 5층 작업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창밖으로 서울이 내려다보인다. 반지하들도 보인다. 여전히 많다. 누군가는 지금도 그곳에서 빛을 찾고 있을 것이다. 옆에서 오는 빛, 아래에서 오는 빛, 마음에서 오는 빛을 모아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이야기다. 빛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 차별받고, 무시당하고, 가난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 할머니도, 부모님도, 나도, 우리 모두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완벽하지 않지만 진실한 이야기. 상처받았지만 극복하는 이야기. 어둠 속에서도 빛을 만드는 이야기.


나는 오늘도 쓴다. 반지하의 기억을 안고, 반지하의 빛을 품고. 그것이 나를 만들었고, 나는 그것을 세상에 전한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읽고 자신의 반지하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도 빛이 있었다는 것을, 지금도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빛은 어디에나 있다.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다. 반지하에서 자란 나는 안다. 작은 빛도 모으면 크게 빛난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그 작은 빛이 태양보다 더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1998년 여름, 대홍수가 났던 그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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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