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by 부소유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한 달이 지난 12월, 가족들이 다시 모였다. 유산 정리를 위해서였다. 고모네 집이었다. 2층 빌라 거실에 아버지, 삼촌, 고모가 둘러앉았다. 은지와 준호는 구석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서류들이 놓여 있었다. 할머니 명의의 통장, 보험 서류, 그리고 놀랍게도 작은 땅문서 한 장.


고모가 먼저 말을 꺼냈다. - 엄마가 경기도에 땅을 가지고 계셨네요. 200평이래요. 아버지와 삼촌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고모가 계속 말했다. - 40년 전에 사신 것 같아요. 그때는 허허벌판이었는데 지금은 개발 예정지래요. 감정가가 3억 정도 된대요.


3억. 그 숫자가 거실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삼촌의 눈이 빛났다. 아버지는 무표정했다. 고모는 서류를 뒤적이며 말했다. - 법적으로는 우리 셋이 균등하게 나눠 가지는 거예요. 1억씩. 침묵이 흘렀다. 각자의 계산이 머릿속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삼촌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형, 나 빚이 아직 많아. 이 돈으로 정리하고 새출발하고 싶어. 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 너는 이미 엄마한테 충분히 받았잖아. 삼촌이 목소리를 높였다. - 그건 빚 갚는 거였고! 이건 유산이야. 내 권리라고! 고모가 끼어들었다. - 저도 필요해요. 이혼하고 혼자 사는데 노후 자금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아버지가 - 영희야, 너도 그동안 엄마한테 많이 받았잖아, 하자 고모가 발끈했다. - 오빠는 장남이라고 더 받은 거 없어요? 집도 엄마가 보태주신 거잖아요!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삼촌이 - 형은 맨날 희생한다고 하지만 결국 제일 많이 가졌잖아! 하고 소리쳤다. 아버지가 - 내가 뭘 가졌어? 평생 너희들 뒤치다꺼리하느라 내 인생 없었어! 하고 받아쳤다. 고모는 - 다들 왜 이래요! 엄마가 보시면 얼마나 속상하시겠어요! 하며 울먹였다.


은지는 이 광경을 지켜보며 씁쓸했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서로 양보하는 척하더니, 돈 앞에서는 본색이 드러났다. 3억이라는 돈이 가족을 이렇게 만들 수 있구나. 준호도 불편한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차를 가져왔다. 아무도 마시지 않았다. 긴장이 팽팽했다. 삼촌이 - 그럼 이렇게 하자. 형이 1억, 나랑 영희가 1억씩. 공평하잖아?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 안 돼. 엄마 병원비, 요양원비 다 내가 냈어. 그것부터 정산하고 나눠야지. 고모가 계산기를 꺼냈다. - 병원비가 얼마였죠? 아버지가 - 3년 동안 약값, 병원비, 요양원비 합쳐서 4천만 원 넘어. 고모가 - 저도 반은 냈어요! 2천만 원은 제가 낸 거예요. 삼촌이 - 나는... 그때 돈이 없어서... 하며 말끝을 흐렸다.


또 다른 계산이 시작되었다. 누가 얼마를 냈고, 누가 얼마를 받았는지. 30년 동안의 가족사가 숫자로 환산되고 있었다. 삼촌의 도박 빚 5천만 원, 고모의 결혼 자금 3천만 원, 아버지의 희생은 계산할 수 없었다.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준호가 갑자기 말했다. - 할머니가 저한테 주신 것도 계산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학원비, 용돈, 입학 축하금... 다 합치면 5천만 원은 넘을 걸요? 고모가 - 준호야, 그건 다른 문제야, 하며 말렸지만 준호는 계속했다. - 은지는 거의 못 받았잖아요. 그것도 계산해야 공평한 거 아닌가요?


은지는 놀랐다. 준호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삼촌이 - 애들은 빠져. 어른들 일이야, 하고 말했지만 준호는 물러서지 않았다. - 왜요? 나도 이제 어른이고, 우리도 가족인데. 할머니의 차별도 유산 분배에 고려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침묵이 흘렀다. 불편한 진실이었다. 할머니의 편애가 이미 유산 분배를 했다는 것. 누군가는 이미 많이 받았고, 누군가는 거의 받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사랑의 차이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 그만하자. 법대로 하자. 3등분. 각자 1억씩.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아. 삼촌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모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은지는 알았다. 아버지가 또 양보한 것이라는 것을. 평생 그래왔듯이.


서류 작업이 시작되었다. 도장을 찍고, 서명을 했다. 땅을 팔기로 했다. 부동산에 내놓으면 3개월 안에 팔릴 거라고 했다. 각자 1억씩. 삼촌은 빚을 갚을 것이고, 고모는 저축할 것이고, 아버지는... 은지는 아버지가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 알 것 같았다. 또 가족을 위해 쓸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머니가 말했다. - 당신 고생했어요. 또 양보했네요. 아버지가 - 뭘 양보해. 원래 내 것도 아니었는데. 어머니가 - 그래도 당신이 제일 고생했잖아요.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운전에만 집중했다.


은지가 물었다. - 아빠, 1억으로 뭐 하실 거예요? 아버지가 백미러로 은지를 봤다. - 집 옮기려고. 반지하 습해서 엄마 관절에 안 좋아. 2층 정도로 옮기면 좋겠다. 은지는 가슴이 뭉클했다. 1억이면 자신을 위해 쓸 수도 있을 텐데, 여전히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아버지.


그날 밤, 삼촌이 전화를 했다. 어머니가 받았다. - 형수님, 형한테 말해주세요. 고맙다고. 이번엔 정말 새 사람 되겠다고. 어머니가 - 네, 전할게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전하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들었을 테니까.


고모도 문자를 보냈다. ‘오빠, 고마워요. 제가 너무 했죠? 앞으로 잘 살게요.’ 아버지는 읽고 답장하지 않았다.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는가. 30년 동안 쌓인 감정을 문자 한 통으로 정리할 수는 없으니까.


오늘 할머니의 유산을 나눴다. 3억을 3등분했다. 공평해 보이지만 공평하지 않다. 아버지의 희생은 계산되지 않았고, 할머니의 차별도 고려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가족이다. 불공평함을 감수하고 함께 가는 것. 그것이 가족의 숙명인가보다.


새벽, 은지는 잠이 오지 않아 거실로 나갔다. 아버지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땅문서를 보고 있었다. - 아빠, 안 주무세요? 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 은지야, 아빠가 미안해. 너한테 해준 게 없어서. 은지가 아버지 옆에 앉았다. - 아빠, 미안하지 마세요. 아빠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아버지가 은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우리 은지, 고생 많았다. 이제 반지하는 벗어나자. 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반지하를 벗어나도 반지하의 기억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는 것을. 그것이 자신을 만든 토대라는 것을.


다음 날,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벌써 매수자가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3억 2천만 원을 제시했다고 했다. 가족들은 동의했다. 2천만 원을 더 받게 되었다. 각자 666만 원씩 더. 은지는 그 숫자가 묘하다고 생각했다.


계약이 성사되었다. 돈은 한 달 후에 입금될 예정이었다. 삼촌은 벌써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고모도 들떠 있었다. 아버지만 담담했다. 마치 남의 일처럼. 은지는 아버지의 그 초연함이 더 아팠다.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포기가 몸에 밴 것이리라.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올해는 할머니 없는 첫 크리스마스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족들이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유산 분쟁이 있었지만, 그것을 통해 서로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것 같았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족이라는 끈은 남아 있었다.

keyword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