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조각글 11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라 Sep 04. 2023

불꽃 예찬

Adoration of Fireworks

언제부턴가 불꽃놀이를 보면 그 순간을 찍어다 보여주는 게 우리만의 규칙이 되었다. 시작은 다낭이었다. 한강에 있다고 했고, 오늘은 3년 만의 세계 불꽃놀이의 첫날이라 기대된다고 전했다. 아까는 다낭이라며 왜 지금은 한강이야? 하는 것이다. 나도 다낭에 있는 강이 한강인지 몰랐지. 우리도 한강에서 하는 여의도 불꽃축제가 제일 유명하지 않아? 그때는 매번 빌딩 틈으로 퍼지다 마는 불꽃만 보곤 했어. 다낭의 한강은 커다란 용다리가 있고, 바다와 만나는 곳에서 불꽃놀이를 해. 혹시라도 모를 화재사고 때문에 다들 바다에서 불꽃놀이를 하는 걸까? 한강의 윤슬을 주워다가 뭔갈 만들어 주고 싶은 생각을 하다 보면 곧 노을이 윤슬을 삼키고 빌딩들이 빛을 뿜기 시작했다. 


빌딩의 빛이 한순간에 꺼지고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더 뒤에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구경꾼들은 일제히 휴대폰으로 불꽃을 담기에 바빴다. 나는 혼자 보기 아까워 불꽃놀이를 보며 영상통화를 걸었다. 원래 예쁜 걸 보면 보여주고 싶고 맛있는 걸 먹으면 같이 먹고 싶으니까. 그러다가는 불꽃을 담는 것도, 불꽃을 보여주는 것도, 불꽃을 보는 것도 어려워서 이만 마무리하고, 나도 영상을 담기 시작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꽃이 하늘로 계속 오르는 걸 보다가, 하늘에 번질 때, 사람들은 같은 순간에 ‘와’하고 탄성을 뱉었다. 꽃뿐만 아니라 고양이나 웃는 사람의 얼굴모양 불꽃도 하늘을 채우곤 했다. 그럼 더 이상 불꽃놀이가 아니지 않나. 불놀이? 폭죽놀이? 같은 어이없는 생각을 하면서, 불꽃놀이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불꽃놀이의 마지막 순간만을 기다렸다. 불꽃은 끝도 없이 위로 계속 올라가서 모든 것을 쏟고 밤하늘을 꽉 채웠다.


이내 불꽃놀이는 끝나고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로 흩어졌다. 수많은 인파가 뒤섞여있다가 사라지는 꼴을 하늘에서 보면 제법 불꽃같아 보이려나. 하늘의 빛은 이제 사라져 없고 연기만이 자욱했다. 다음에 또 어딘가에서 새로운 불꽃놀이가 시작될 것이다. 죽음이 곧 새로운 시작임을 알면서도, 죽음 뒤에 몰려오는 허무를 버틸 재간이 없다. 존경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가장 최근에 울었던 이유가 성취였다고 했다. 많은 걸 이뤘으면서 항상 성취 후에 몰려오는 허무함에 울었다고 했다. 고작 종이 한 장을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깝기도 하고 귀하기도 했다고 했다. 기쁨보다 허무함이 더 먼저 느껴져서 울음을 참지 못했다고 그랬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아무 말도 해주지 못하고 그저 그를 안아주었다. 지금은 영영 사라져서 안아줄 수도 같이 울어줄 수도 없지만.


렌즈로 영영 잡아둔 불꽃놀이를 보여줬다. 내가 좋아하는 불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고. 액정 속의 불꽃이 하늘에서 피어날 때 영상 속 사람들과 같은 순간에 나도 다시 ‘와’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두 눈으로 봤으면서도 영상으로 보는 게 또 즐거웠다. 초점이 안 맞는 것도, 흔들린 것도 상관없었다. 호로 변하는 수직을 그려내다가 여기저기 수놓는 영롱함이 좋았다. 우리는 왜 불꽃을 좋아하는 걸까. 우리가 불꽃같아서 그런가? 완성이 곧 소멸인 화려한 죽음. 어찌하여 우린 영원하지 못한 것들을 쫓는 걸까. 사랑, 희망, 꽃, 시, 청춘... 그런 것들.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내내 집착하면서 살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불꽃처럼 살고 싶어.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모두가 기다리는 가장 마지막의 불꽃. 어둠을 삼켜 이곳저곳을 밝히고 보란 듯이 사라질 거야.

이전 10화 무지개 관측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