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ainbow Observatory
나는 무지개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그래서 무지개만 떴다 하면 모두들 나에게 무지개 사진을 보내곤 했다. 왜 무지개가 좋냐고 물으신다면,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과 그 사이에 무수한 빛깔을 볼 수 있어서다. 달리 말하자면 진짜 무지개를 좋아한다. 그림으로 그린 색과 색의 구분이 명확한 무지개나 무지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드는 굿즈들은 흠.. 하는 것이다. 올해는 유독 무지개가 자주 떠서, 무지개가 뜬 각기 다른 하늘을 많이도 봤다. 내가 운이 나쁜 건지, 내 눈으로 무지개는 못 보고, 친구들이 잡은 무지개사진들로 만족했다. '네가 좋아하는 무지개가 떴어. 꼭 봐.'라는 말에 응, 봤어. 하고 거짓말이나 하면서.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수록곡인 '오버 더 레인보우'라는 노래도 좋아하고, 키우던 반려동물의 죽음을 돌려서 말하는,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는 표현도 좋아한다. 나도 죽으면 강 대신 무지개를 건너고 싶다. 사랑만 받다가 이제는 영원을 사는 크고 작은 털뭉치들의 환영을 받는 곳으로 가고 싶다. 그냥, 무지개를 좋아한다. 슈퍼마리오카트의 무지개로드는 좋아하지 않는다. 무지개 밖으로 맨날 떨어져서 매번 8등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스펀지 소재의 무지개펜을 갖고 싶었는데, 지금은 영영 사라진 것 같다. 브라운관에서 내 또래의 어린이들이 무지개펜으로 얇고 두꺼운 무지개를 만드는 걸 보며, 언젠가는 꼭 사야지 했는데, 아쉽다. 당연히 무지개떡도 좋아한다. 어딘가에 떡을 돌릴 일이 있다면, 무지개떡이 들어간 옵션으로 선택하고 마는 것이다. 무지개떡이 떡 색깔별로 맛이 다르지 않은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백설기와 무지개떡 중에 고르라면, 나는 무지개떡을 고른다. 여전히 색깔별로 떼먹기 위해 노력하며.
이렇게 무지개를 좋아한다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면, 혹시 이쪽이라는 걸 무지개를 좋아한다고 돌려서 말하는 거예요?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 나는, 그쪽이었으면 진즉 커밍아웃했을 것 같아요. 하는 거다. 축제 분위기의 퀴어 페스티벌은 좋아한다. 페스티벌이니까 당연히 축제지. 근데, 산천어 축제나 고추 축제는 축제지만 축제 같지 않다. 퀴어 페스티벌은 꽤 재밌다. 어떤 단체에서 우르르 혐오의 말을 내뱉는데, 정작 퀴어들은 기꺼이 춤을 추고 노래하며 행진한다. 돌을 품은 눈사람과 날계란을 보는 것 같아서 볼만하다. 나는 언젠가 어설픈 지지를 한다면서 '결국, 사랑이 이길 수밖에 없어'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는 사랑 그 자체라고 했다.
"이건 싸움이 아니야. 이기고, 지는 사람은 없어. 그냥 나를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거야."
나는 항상 혐오 속에서 싸운다고 생각했어. 비가 그친 뒤에야 무지개가 뜨니까, 폭풍우 속에서 상처받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어. 그래서 계속 응원하고 지지했지. 그렇구나. 싸움이 아니구나. 그러니까 즐거울 수밖에 없겠구나. 멋지다. 그리고 부러워. 나는 아직 나를 몰라. 알지도 못하는 데다가, 나를 받아들이지도 사랑하지도 못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한다는 건 어떤 걸까. 자기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무지개가 사실은 일곱 개의 빛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 나보다 빨리 알아차렸을 거다.
요즘은 무지개가 자주 뜬다. 또 많은 비가 오고, 그래서 무지개가 더 자주 뜰 것을 안다. 이것이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오래도록 소리도 질러보고 화도 내보며 싸움을 걸 것이다. 영영 성사될 수 없는 싸움. 그러다 언젠가는 무지개가 뜨면 전철이 한강을 지나갈 때 승객 모두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것처럼, 오래도록 눈에 담는 순간도 올 것을 안다. 무지개에서 또 어떤 색을 찾았는지 함께 말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