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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아침, 일본다방에서 브런치

- 도쿄여행 2307 (7)

by 선홍


나는 카페라는 공간 자체를 사랑한다.

특정 카페를 좋아하기보다 카페라는 공간의 정서와 냄새, 분위기 자체를.

카페마다의 조명, 잔잔한 음악, 빵 굽는 냄새, 커피 향이 있어서 똑같이 생긴 체인점만 아니라면 어디든 혼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카페에서 글을 쓰고, 책 읽고 다이어리를 쓰면서 자기계발하는 기쁨을 계속 느끼며 나이 들고 싶다.


카페는 내게 소비 공간이 아니라 감각을 단련하고 관찰하는 장소다. 커피는 구실일 뿐.

1일 1 혼카페를 해온 세월이 꽤 오래된 만큼 '카페'라는 공간 자체를 덕질한다고 자부할 수 있겠다.


당연히 일본에서도 매일 카페를 가게 됐다.

카페를 사랑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여행지에서 맛있는 디저트를 먹겠다고 카페 줄서기하는 건 거부감이 들었다. 나에게 카페는 먹으러 가는 목적이 아니라 바쁜 삶 속의 쉼과 여유를 상징하니까.

더운 여행지에서는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시원한 에어컨과 음료만 있으면 됐다. 여름에 여행할 때는 특히나 무리하지 말고 카페에서 쉬는 비용을 아까워하면 안 된다.


이번 일본여행의 목표는 옷쇼핑, 맛집 탐방이 목적이 아니라 각자 좋아하는 공간을 찾아가기로 한 여행이었다.

일본 여행이 처음이라면 유명 지역을 크게 훑어보는 것을 추천하겠지만 몇 번 와 봤다면 혼자만의 테마를 정하길 권하겠다. 어떤 카테고리든 찾아다닐 거리가 풍부하니까.

각자가 원하는 곳과 가까운 장소에 숙소를 잡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더위로 체력이 많이 소모되기 때문에 고민하다가 잡은 동네가 바로 '긴자'였다.

긴자에는 세련된 쇼핑몰, 백화점이 많아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걸어서 갈 수 있었다. 세련된 일본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까지.

하룻밤을 잔 후 딸과 함께 근처에 있는 일본 다방에 가서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덥긴 해도 빌딩 그늘이 여유롭게 늘어진 아침이었다. 가는 길은 종로나 을지로에 있을 법한 빌딩 숲이라 육중하고 진중한 느낌이었는데.


찾아간 빌딩은 위로는 회사들, 지하에는 각종 상가들이 입점되어 있는 진짜 을지로스러운 곳이었다.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타일로 된 바닥이라든가 특유의 서늘한 공기가 시원했다.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샵들이 모인 곳에서 쌍화차 향이 풍길 것 같은 다방을 찾았다. 바로 '하마노야 파라' 긴자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입구에 신문 읽는 어르신이 있을 것 같은 낡고 작은 공간이었다. 일본어 메뉴가 귀엽게 적힌 벽을 구경하고 있으니 바지런한 아저씨분이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편의점 계란 샌드위치도 맛있는 일본에서 계란 샌드위치와 과일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나니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예뻐라... 1인 1 접시를 해야 할 만큼 작고 앙증맞은 샌드위치는 자로 잰 듯 정갈했는데, 입에 넣자마자 녹아서 사라져 버렸다. 뭐지? 뭐가 왔다 간 거지? 혀가 당황하는 느낌.


아침부터 식욕이 막 돌아 딸이 원하는 '커피젤리'란 것도 시켜봤다. 모양이 예쁜 생소한 음식을 스푼으로 떠서 먹는 순간, 윽, 벌칙인가? 하는 맛이었다.

에스프레소를 푸딩으로 만든 것 같은 쓴 맛과 달지 않은 생크림의 만남은 부풀어 오르던 식욕까지 가라앉혀버렸은데. 여행지에선 메뉴선정에 실패해도 그게 재미, 큭큭 웃어넘기게 된다.


제목도 알 수 없는 일본노래가 흥얼거리듯 나오는 공간의 노란 조명과 붉은 타일, 오래된 테이블이 기분 좋은 공간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는 역시나 기분 좋게 끝났던 것 같다.


일본의 다방, 일명 '킷사텐'의 추억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다시 찾아가고 싶은 곳의 명사가 되었다.

여행은 몰랐던 곳을 알게 해 주고, 다시 새로운 꿈으로 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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