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여행 2023 도쿄여행 (12)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 드디어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오후에 공항으로 가면 되기에 우린 마지막까지 불태울 각오로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한 후 호텔밖으로 나왔다.
어젯밤에도 도쿄의 여름에 완전히 녹아내려 흐물 해져버린 상태로 돌아왔다. 매일밤 각자 다리와 발바닥에 '휴족' 쿨링시트를 더덕더덕 붙인 채 휴식해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는데.
딸은 몸살감기약을 먹으면서 나 죽어하다가도 캐릭터굿즈샵만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달려갔다. 꾀병인가?
30여 년 전 친정엄마와 해외여행 다닐 때 내가 저랬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특히나 무거운 배낭까지 메고 유럽을 다닐 때는 내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을 정도로 힘들어 아스피린을 달고 살았었다.
그에 비해 김해평야 대농의 딸이었던 친정엄마는 무시무시한 체력으로 날 질리게 했었다. 그랬는데 말년에 병으로 너무 고생을 하셔서 몸관리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 주셨는데.
아무튼 저질체력인 나보다 딸은 더 저질체력이니, 세대를 거듭할수록 두뇌는 발달하나 체력은 저하되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다 인류가 머리통은 커지고, 팔다리는 가늘고 작아지는 주꾸미 체형이 되는 거 아니냐고.
우리가 공통적으로 덕질하는 항목이 있다면 옷, 가방, 액세서리도 아닌, 바로바로 음식이었다.
해외여행 가면 검증된 익숙한 음식만 찾는 부류와 그 나라의 음식,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은 부류가 있다.
우린 무조건 후자, 마지막 날의 첫 일정은 우동을 먹기 위해 오픈런하는 것이었다.
딸은 최근에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셰프들이 운영하는 식당에 도장 깨기 하듯 먹고 다녔는데, 명절날 기차예약만큼 힘들다는 예약을 어떻게 성공하는지 기가 막혔다.
셰프의 이름이 알려지고, 특정 셰프의 식당까지 찾아다니는 풍경이라니 '라떼'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80년대~90년대 초엔 맛집, 외식 개념도 약해 좋은 일 있으면 갈비 먹는 게 자랑할 만큼 최고였던 시절이었다.
젊은 친구들이 식당에서 오픈런하는 걸 이해 못 했는데 도쿄에서 처음으로 하게 될 줄이야.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다고, 다른 식당도 많은데 굳이?라고 생각했었다.
긴자의 '고다이메 하나야마 우동'의 넙적 우동은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어 맛이 너무 궁금했었다.
이때만 해도 웨이팅 접수기계가 없어 '쌩'으로 기다려야만 했다. 양산을 준비해 주긴 했지만 이 더위에, 몇 시간 웨이팅은 예사라고 하니 기가 막히고 놀라웠는데.
긴 기다림 후에 만나게 된 냉우동과 덴뿌라세트. 내 혓바닥보다 넓고 차가운 면을 쯔유나 참깨소스에 찍어 입에 넣으니 혀에 착! 달라붙었다.
깨끗하고 차가운 느낌이 여름에 잘 어울리는 맛. 바삭바삭한 덴뿌라와 잘 어울렸지만 점점 물리는 느낌이 들어 두 그릇을 먹고 싶은 생각까진 들진 않았다. 역시나 한국인에겐 매콤한 맛이 킥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되나 보다.
그 면이 처음 내 입속으로 들어왔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미끄덩거리면서 차갑고, 쫄깃쫄깃한 식감까지.
타지에서의 첫 경험은 그때의 온도, 같이 간 사람과의 추억, 낯선 감정과 버무려져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오픈런도 할 필요가 있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나이 들수록 이런 경험이 줄어드니 소중히 기억해야겠다. 그런 점에서 이번 도쿄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을 뽑으라면 넙적우동과 도착 첫날 먹었던 '몬자야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