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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창균 Sep 12. 2022

시장님 시장이 필요합니다

동네의 미래는 로컬리즘

        

서울특별시

추억의 시장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따라갔던 시장의 풍경을 기억하시나요? 한 손에 장바구니를 드시고 한 손엔 제 손을 잡고 시장 곳곳 누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식자재며 간단한 제품들을 사곤 하셨는데요. 어린 나이에 짧은 다리로 구석구석을 따라다니는 게 여간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그 순간을 꽤나 즐거워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좋아했던 순간이 있는데요. 바로 떡볶이였습니다. 항상 시장의 중앙에는 떡볶이며 순대, 어묵을 파는 곳이 있었습니다. 당시엔 밀떡, 쌀떡의 개념을 몰랐던 나이여서 시장에서 파는 오동통한(쌀떡이었겠죠.) 떡볶이가 그렇게 새롭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리고 입가심으로 어묵 국물을 마시면 그날의 행복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물론 순대까지 사주신 날은 일기에 남기기도 했었죠.

어느 순간부터 전통시장 인근에 대형 마트들이 생겨나면서 시장을 방문하는 날들이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마트에도 분식점이 생기고 유사한 떡볶이를 먹곤 했지만, 시장의 시끌벅적한 배경 음악이 사라졌고, 가판대에 서서 이쑤시개로 떡이며 파를 집어먹는 방식도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제가 좋아하던 시장을 점차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근데, 언제부턴가 여러지역의 시장이 다시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주말이면 데이트 코스로 망원시장을 찾고, 통인시장에서 기름 떡볶이를 먹기도 합니다. 광장시장은 빈티지 쇼핑이며 육회나 빈대떡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100년이 넘게 사랑받고 있기도 합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배경음악과 스탠딩 떡볶이 문화를 추억하고 기억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르쉐

찾아가는 시장

마르쉐 시장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마르쉐는 프랑스어로 장터, 시장이라는 뜻인데, 2012년에 대학로에서 처음 열린 이곳에서는 농부를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농부가 직접 키운 농작물을 생산자와의 대화를 통해 구매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는 농부가 소중하게 키운 농작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더 신뢰를 갖고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계절성 짙은 들풀, 꽃 등도 만나 볼 수 있어서 마치 영화 ‘리틀포레스트’ 의 현실판 버전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마르쉐

마르쉐 채소시장이 열리는 곳은 왕십리, 성수, 서교 등 다양한데요. 매달 첫째주 토요일 등 특정 요일을 지정해 열리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그날만을 기다리며 @marchefriends 을 지켜보곤 합니다. 실제 방문해보면 그곳만의 특유의 무드가 있습니다. 분명 재래시장 같은데 왠지 모르게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이 납니다. 마치 예전 재래시장이 오래된 기사식당 같다면, 마르쉐 시장은 BI 를 깔끔하게 정리해 현대적으로 풀어낸 기사식당 느낌이랄까요.

두피디아

문화가 된 시장

경기도 양평에는 문호리리버마켓이라고 있습니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 경기도 양평에서 개최되는 이곳엔 170여명의 셀러가 참석하며 직접 키우거나 만든 제품만 판매하는 원칙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이곳을 방문하면 싱싱한 달걀부터 육개장, 파전은 물론이고 핸드 드립 커피나 스콘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접시, 그릇 등 다양한 일상 소품까지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하나의 놀이공간이자 문화시설로써 양평에 자리 매김 했습니다.


트레블양평

‘시장’ 이라는 곳은 ‘마트’ 와는 다른 색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트는 무지개처럼 정해진 7가지 명확한 색상을 판매한다면, 시장은 수채화 팔레트에 흩트려 뿌려 놓은 물감 같다고 할까요? 물과 물감이 만나 같은 빨강색도 핑크색이 되기도 하고 파란색과 만나 보라빛을 띄기도 하는 것이죠. 시장을 찾는 사람과 시장을 만드는 사람이 시장이라는 공간에서 만나 새로운 색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닐까요?


로컬리즘에 관하여

저는 이런 문화의 확산을 ‘로컬리즘’ 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사회가 되면서 모든 것들이 편리해지고 발전했지만 사람은 여전히 아날로그적이고 두손과 두발이 편한 것 이외에 마음과 정신이 동하는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 동네, 나의 삶 바운더리에 친근하고 익숙하며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로컬의 문화가 점차 더 확산되는 것 같습니다. 한가지 예로 최근 다양하게 생겨나는 와인 및 그로서리 매장이 있습니다. 경리단길의 보마켓으로 시작된 그로서리 바람은 최근 GFFG에서 오픈한 애니오케이션으로 힙한 느낌까지 가세했습니다. 


보마켓


보마켓의 경우 남산맨션에 거주하시는 두 부부가 동네에서 본인들이 즐길 수 있는 마켓 컨셉의 공간을 오픈했고 2호점인 경리단길점이 소위 말하는 ‘대박’ 이 난 케이스입니다. 경리단길점의 경우 이태원 주공 아파트 단지 초입에 위치해 일반 상업시설의 분위기가 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공간을 감싸는 울창한 나무들은 이곳을 찾는 단 하나의 명확한 이유를 만들어 주기도 하죠. 사실 이런 장소는 발 품을 정말 팔아야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인터넷으로 혹은 부동산중개업자에게 단순 문의, 서치를 통해서는 찾기가 불가능하죠. 그만큼 대표님의 동네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담겨있는 곳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기에 디자이너 출신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컬러, 폰트 그리고 세심하게 셀렉한 와인 및 제품 마지막으로 브런치처럼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음식까지. 모든 요소들 하나하나가 빠지지 않고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죠. 거기서 기회를 본 여러 회사들이 내츄럴 와인이라는 컨셉을 필두로 그로서리 형태의 매장을 많이 만들어 내고 있는 상황이죠. 사실 지금의 유사 매장들은 보여주는 느낌이 강합니다. 패키지가 예쁜 와인을 잘 셀렉해서 디피하고 거기에 어울릴 만한 해외산 과자 및 라이프스타일 소품을 디피하면 그럴싸해 보이죠.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로컬리즘’ 입니다. 

보마켓의 경우도 지역 주민과 어울리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시작이 되었고 오히려 SNS에 너무 유명해지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라고도 말씀하실 정도였죠. 그만큼 주민들이 쉽게 방문하고 찾을 수 있는 곳이 되길 원했고 동네 사람들이 좋아하고 애정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동네 거주민들의 마음을 살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한 그로서리가 되지 않을까요?


링크드인

편의점의 미래 

미국의 폭스트롯마켓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2014년에 오픈한 이곳은 총 8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새로운 컨셉의 편의점입니다. 공간은 마치 카페와 유사하지만 이곳은 로컬 편의점 컨셉입니다. 전체 제품 중 10~15% 를 인근 상권내 유명 맛집과의 협업으로 구성합니다. 예를 들어 워싱턴DC 매장에서는 ‘아이스크림 쥬빌레’ 라는 유명 업체와 협업한 칵테일 맛 아이스크림을 판매합니다. 또한 시카고 매장에서는 ‘뱅뱅 파이 앤 비스킷’ 이라는 유명 파이 맛집과 협업을 해 파이를 판매했습니다. 이 매장의 위치적인 어려움을 폭스트롯에서 해결해 준 케이스인 것이죠. 또한 낮에는 카페로 저녁에는 와인바로 운영이 되면서 그에 걸맞는 다양한 음식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점은 각 음식들이 해당 상권의 쉐프들과의 협업에 의해 탄생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나아가 모든 제품을 배달해주기도 합니다. 


폭스트롯

편의점 컨셉으로 수백만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로컬리즘이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사실 국내에도 고잉메리라는 편의점 컨셉의 오프라인 매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행보는 그렇게 좋아보지 않는게 사실인데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로컬입니다. 인테리어가 그럴싸하고 좋아보아는 곳은 이제 얼마든지 많습니다. 소비자들도 보는 눈이 높아져 왠만한 인테리어로는 만족을 못 하기도 하죠. 하지만 폭스트롯마켓은 지역에 집중했습니다. 초기 상권에 출점하기 전부터 인근의 맛집이나 쉐프를 물색하는데 힘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결국 편의점 하나의 공간만이 살아남는 게 아닌, 주변의 브랜드들과 상생을 목표로 하는 것이죠. 이게 로컬리즘의 핵심입니다.


최근 늘어나는 그로서리 매장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네 슈퍼를 편의점과 그로서리 중간 개념으로 리뉴얼 할 수 없을까? 아직도 많은 주택가에는 오래된 슈퍼, 마트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인상 좋으신 사장님이 투명 봉투에 이것저것 담아서 주시곤 하는데요. 생각보다 과일이나 야채 등은 마켓컬리, 쿠팡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퀄리티가 낮을 때가 많습니다. 요새는 배달이 워낙 편해지고 신선도가 유지되다 보니 왠만해서는 동네 슈퍼도 살아남기 힘들어 보일때가 많습니다. 우선, 판매하는 제품의 퀄리티의 질과 특징을 개발해야 됩니다. 앞서 말한 로컬리즘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슈퍼 인근 시장을 살펴보는 것이죠. 예를 들어 망원동이면 망원시장을 겨냥하는 것입니다. 망원 시장에서 유명한 닭강정이나 분식류 브랜드와 콜라보를 하는 것이죠. 망원시장은 목적을 갖고 방문해야 되기 때문에 만약 홍대, 연남동 일대 슈퍼에서 망원시장의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나아가 함께 개발한 새로운 메뉴를 접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망원시장

동네 곳곳의 작은 디저트 가게 와도 콜라보를 할 수 있겠죠. 연남동 망원동 일대에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디저트 가게가 많습니다. 물론 항상 완판 되는 곳들이 대부분이죠. 그렇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이 접하기 힘들고 판매자는 당일의 재고 소진에 집중하니 사업 확장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개발한 디저트를 접근성이 용이한 슈퍼, 편의점에서 판매하면 어떨까요. 노티드에서 만든 우유 등을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겠죠. 그리고 제품의 경우 동네 철물점이나 특색 있는 곳들을 물색해 판매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도나도 판매하는 그런 제품 라인업이 아니라 이곳 에서만 살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죠. 생각보다 괜찮은 로컬 브랜드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디자인이 떨어지고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운영하다 보니 관심이 덜 생겼던 것이죠.

개인적 사심으로 편의점 그 다음 공간이 하루빨리 생겼으면 합니다. 물론 현재 편의점은 너무나도 편리합니다. 없는 게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 냄새가 없다고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가끔이라도 슈퍼를 가는 이유는 정겹게 삼촌이라 불러 주시는 어머님이 계시고, 조금은 덜 싱싱해도 그곳만의 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거의 ‘정’ 을 주고 파는 문화는 현재 세대와는 안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의 ‘정’을 주고 파는 게 아니라 지역의 상생을 위한 ‘정’을 기획한다면 얘기는 다를 것입니다. 편리함은 유지하되 지역의 로컬리즘을 지속시킬 수 있는 공간. 그런 편의점, 슈퍼 혹은 만남의 장소가 하루빨리 나타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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