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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26. 2018

빌뉴스 구시가지에서 커피 한잔

2017년 11월 14일

빌뉴스의 노보텔 호텔 옆으로는 말끔하게 단장한 카페골목이 있다.

빌뉴스에 나가면 시골에 살다가 읍내에 마실 나온 느낌이 든다. 볼 일이 끝나도 으레 기차나 버스 시간을 더 뒤로 미루고 산책을 하거나 카페를 찾는다. 몇 번 다니다 보니 자주 들르는 카페가 생겼다. 카우나스에도 골목마다 체인이 있는 베로 카페(Vero Café)나 카페인(Caffein)은 가능하면 제쳐둔다. 단독 매장이거나 두어 개 정도의 소규모 체인, 작고 개성 있는 카페를 찾아 돌아다녔다. 수첩이나 아이패드를 펴놓고, 맑은 날은 화사한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을 내다보면서 햇빛을 즐기고, 비가 오면 한적하게 젖어드는 거리를 내다보며 운치를 찾는다.

빌뉴스 구시가지 세 군데에서 발견한 베이커리 카페 크러스텀(Crustum)

자주 가는 곳 중에 베이커리 카페 '크러스텀(Crustum)'이 있다. 빌뉴스 구시가지 중심 골목인 성채 거리(Pilies st.)의 대성당 광장 진입로에 있는 게 본점인 것 같다. 게디미나스 대로(Gediminas st.) 변 노보텔 호텔 옆의 예쁜 카페 골목에도 하나 있고, 구시청사 광장 옆으로 뻗은 번화가인 독일 거리(Vokieciu st.)에도 하나 있어서 발견한 지점만 세 군데다. 리투아니아에서 흔치 않게 비교적 한국 빵에 가까운 폭신한 빵을 판다. 깔끔한 매장과 눈치 안 보고 오래 앉아있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자주 가게 되었다. 카우나스에는 아직 매장이 없는데, 빌뉴스에서는 꽤 성공했는지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카우나스에도 언젠가 생기길 기대하며 빌뉴스에 갈 때마다 크림이나 초콜릿이 들어간 빵을 고르곤 했다.

옛 유대인 게토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유명한 디저트 카페 'Poniu Laime'. 타르트나 쿠키 위주의 리투아니아 디저트 카페다.

리투아니아식 빵은 잡곡 위주의 단단한 빵이 기본이다. 'kepykla' 또는 'kepyklele'라고 쓰여있는 가게는 식사용 빵집이어서 커피는 부수적이다. 베이커리 카페로 커피에 중점을 두는 가게들은 타르트, 크로와상, 패스추리 같은 달콤한 것들이 앞에 진열되어 있다. 던킨 도넛 비슷한 도넛 카페도 있고, 초콜릿을 위주로 고급화된 디저트 카페도 간혹 보인다. 한국에서 '빵집 빵'하면 떠올리는 부드럽고 다양한 빵은 찾기가 쉽지 않다. 아쉽긴 하지만 한국 같은 폭신폭신한 빵이 없다고 해서 카페 놀이가 재미없어지지는 않는다. 가게마다 개성을 살려 커피나 차를 내놓고, 단 것들도 딱딱한 것부터 크림에 가까운 것까지 다양해서 늘 모험하는 기분으로 골라잡았다.

후라칸(Huracan) 카페는 분위기가 시크하다.

카우나스보다는 빌뉴스에 소위 '서울 같은' 카페가 훨씬 많다. 시청사 광장 근처 독일 거리에서 발견한 후라칸 카페(Huracán Coffee)는 동일한 이름의 브랜드 커피를 사용하는 전용 카페인데, 서울의 가로수길에 있어도 전혀 빠지지 않을 지극히 모던한 분위기다. 커피 맛을 잘은 모르지만 후라칸 커피도 진하고 맛있다. 프랑스식 에클레어와 조각 케이크를 파는 알리(Ali) 카페 체인 중에서도 후라칸 커피를 쓴다고 붙여놓은 매장이 있었다.


물론 '서울 같지 않은' 카페가 훨씬 많다. 옛날부터 거기 있었을 것 같은 분위기의 카페들이다. 빌뉴스는 특히 '프랑스식 빵'을 강조하는 간판이 간간이 눈에 뜨인다. 크로와상과 에클레어를 약간 리투아니아화(?)된 듯한 느낌으로 만들어 판다. 외지 손님이 많은 빌뉴스에서는 딱딱한 리투아니아 빵이나 케이크보다는 부드러운 프랑스식 빵이 어필했던 모양이다.

노보텔 옆 카페골목에서 공주님 분위기로 눈길을 끄는 피나비아(Pinavija) 카페. 안쪽에 아이들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게디미나스 대로 중간쯤에 있는 노보텔 호텔 옆길은 보행자 위주로 카페와 식당, 바가 즐비한 카페골목이다. 한동안 길을 거의 폐쇄할 정도로 대대적으로 공사하더니 말끔하게 단장하고 가게도 재정비해서 성업 중이다. 웬만한 체인점은 다 있다. 리투아니아가 자랑하는 지우가스(Dziugas) 치즈 카페도 있고, 리투아니아에서 먹어본 이탈리안 음식 중 가장 훌륭했던 다 안토니오(Da Antonio) 레스토랑도 있다. 그 길 중간쯤 공주님 분위기로 흰 바탕에 꽃무늬가 날리는 피나비아 카페(Pinavija Cafe & Bakery)가 있다. 젊은 엄마들이 애들 데리고 많이 오는데, 대표적 전통 빵인 키비나이도 팔고 샐러드나 간단한 요리도 파는 브런치 카페이면서 케이크와 디저트 메뉴가 훌륭하다.

구시가지 가운데의 성채거리(Pilies st.)에 있는 성채카페(Pilies Kepyklele)

호텔이 밀집해 있는 시청사 광장 근처도 골목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식당과 카페, 바가 나온다. 호텔 밀집 지역답게 메뉴의 국적도 다양하다. 이탈리아 식당이 숫자는 가장 많다. 카페 몽마르트르(Café Montmartre)는 캐주얼한 프랑스 카페 겸 레스토랑인데, 그날의 셰프 메뉴를 시키면 저렴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대성당 광장으로 향하는 성채 거리를 따라 내려갈수록 관광객용 전통식당이 늘어난다. 중간 즈음 진짜 오래되어 보이는 '성채 베이커리(Pilies Kepyklele)' 카페가 나온다. 두꺼운 테두리의 나무 문을 밀면 낡은 건물 1층에서 살짝 땅 밑으로 가라앉은 듯한 바닥이 연륜을 말해주는 곳이다. 현지인과 관광객을 가리지 않고 항상 인기가 좋다. 수프나 샐러드, 크레페 같은 간단한 식사도 가능하고 리투아니아식 단단한 케이크도 판다.

성채 거리 끝머리에 있는 벨기에식 초콜릿 카페 AJ Sokoladas

성채 카페보다 좀 더 성당 광장에 가까이 가면 벨기에식 초콜릿 카페(AJ Sokoladas)가 있다. 정면에 화려하게 장식한, 그러나 오래되어 보이는 다단 케이크 모형이 눈길을 끈다. 내부도 꽃, 그림, 조명이나 가구까지 소녀 취향의 옛날 소설 같은 느낌이다. 뭔가 이야깃거리가 많을 것 같다. 두꺼운 메뉴판은 거의 책 수준인데 온통 초콜릿이 들어간 음료와 케이크, 초콜릿 디저트다. 맞은편에는 크레페를 특화한 카페와 아이스크림을 예쁘게 디스플레이해놓은 카페도 있다. 모두 꽤 오래 자리 잡고 있었을 듯한 작은 가게들이다.

카페 알리(Cafe Ali)는 단맛이 급할 때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가장 고급스러운 디저트 카페는 알리(Café Ali)와 슈가무어(Sugamour)라는 체인이다. 둘 다 빌뉴스와 카우나스에 매장이 있는데, 생초콜릿, 에클레어, 마카롱, 예쁜 색깔과 디자인의 조각 케이크를 판다. 커피값은 보통이지만 그 디저트들이 비싼 편이라 웬만한 식사 비용을 넘는다. 개인적으로 설탕 맛이 강한 슈가무어보다는 알리 카페가 맘에 들어서 가끔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러 갔다. 운동 삼아 산책하면서 다른 카페와 베이커리의 유혹을 뿌리치다가도 결국 알리에 들어가 진한 초콜릿 디저트를 먹을 때가 많았다. 뭔가 내 몸에 죄짓는 느낌이 든다. 산책만 하고 카페 놀이를 하지 않거나, 카페에 앉더라도 커피나 차만 마시면 건강에 나쁘진 않을 거다. 빵이나 케이크를 꼭 고르게 되니 참 문제다. 저렴한 물가에 케이크를 먹어도 서울의 스타벅스 커피 한 잔보다 싸다는 점이 다이어트를 더욱 어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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