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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27. 2018

카우나스의 여유로운 카페 생활

2017년 11월 15일

카우나스 도심의 자유로를 따라 늘어선 카페 중 발길이 자주 가는 곳들이 있다. 최근에 생긴 카페 중에는 서점을 겸하면서 '책 사무소(Knygu Ministerija)'라는 간판이 붙은 곳이 있다. 서점이므로 벽은 모두 책꽂이이고 예쁜 문구류도 판다. 아쉽게도 전부 리투아니아어 책이다. 디저트 종류는 제한적이지만 커피도 맛있고 차도 보란 듯 쿠스미(Kusmi Tea)를 사용한다. 간혹 안쪽에 놓인 피아노를 치는 소리도 들린다. 가격이 좀 비싸지만, 나무 색을 살린 밝은 실내 분위기도 좋아서 자주 드나든다. 북카페 분위기라 노트북이나 태블릿으로 뭔가 읽거나 작업을 하기에도 좋다. 조금 비싼 가격 때문인지 학생들이 많이 드나들지 않는 편이라 조용하기도 하다.

가장 자주 드나들게 된 북카페 Knygu Ministerija와 학생들이 선호하는 그린카페

학생들이 공부나 수다 떨기에 좋은 캐주얼한 카페도 잘 되어 있다. 제일 지점이 많은 '베로 카페'나 그다음으로 많은 '카페인'보다는 두 군데 지점이 있는 '그린카페(Green Café)'가 더 밝고 깔끔한 분위기다. 학생들 틈에 껴 보고 싶으면 그리로 간다. 간판과 내부 장식에 녹색이 많이 들어가서 다른 카페보다 스타벅스와 근접한 느낌이 난다. 카페가 많이 생기다 보니 얼마 못 가 폐업하거나 종목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작년에 구시가지와 자유로에 하나씩 문을 열고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를 내세웠던 나타 카페(Nata Café)는 어느새 둘 다 폐업했다. 새로 들어서는 산뜻한 카페들은 변동이 심하다. 그에 비해 오래된 빵집이나 카페는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믈렛을 시키면 두꺼운 계란전이 나오는 브런치 카페 프레스토(Presto)

자유로 가운데 광장의 '프레스토(Presto)'는 간단한 샐러드나 크레페, 오믈렛, 디저트 메뉴를 퍽 다양하게 갖추고 있는 브런치 카페다. 등받이가 높고 각진 가죽소파나 의자로 좌석이 구별되어 있어서 옛날 다방 느낌이 난다. 연령층도 학생은 거의 없고 중장년층이 많이 드나든다. 식당 같은 주문 방식에다 조용하고 널찍한 좌석, 메뉴에 비해 저렴한 가격과 유리판 안의 클래식한 케이크까지 왠지 80년대 분위기다. 해가 짧아져 일찍 노을이 지는 오후 나절에 창가에 자리를 잡고 거리를 감상하기 좋다. 건너편에는 채식카페가 있다. 극 채식주의(vegan vegetarian) 간판을 내걸고 커피와 차, 간단한 디저트를 함께 파는데 고정 고객층이 있어 보인다. 한 번 손님이 없을 때 들어가서 두유 라테를 마신 적이 있는데, 솔직히 그리 맛있지가 않아서 다시 가게 되지는 않았다.

카우나스 구시가지 중간 즈음에 눈에 띄는 프랑스식 베이커리 Motiejaus 카페

구시가지에 접어들면 새 단장을 해서 깔끔한 현대식 카페도 많지만, 좀 더 오래되어 보이는 카페도 등장한다. 한자동맹 분위기의 벽돌 건물 반지하 1층에는 펠리니(Pellini) 커피를 쓴다고 써놓은 작은 베이커리 카페('Motiejaus Kepyklele')가 있다. 굳이 이탈리아 펠리니 커피를 쓴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낡고 소박한 빵집 겸 카페다. 그래도 크루아상이나 패스츄리 류의 프랑스식 빵이 꽤 괜찮았다. 불규칙하게 흩어져 있는 몇 안 되는 탁자와 의자에 알아서 앉아 먹어야 한다. 먼지 하나 없이 반짝이는 현대식 카페와는 정 반대다. 구시가지에서도 유난히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이라 자칫 동굴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아침마다 빵을 구워 놓는 것 같았다. 

구시가지 광장 한켠에 자리잡은 초컬릿 카페 CH Chocolaterie

구시가 광장 근처까지 가면 건물 자체가 오래되어서, 내부와 외부를 완전히 수리한 새 식당이 아니면 다 심히 낡은 느낌이다. 수도원 쪽으로 늘어선 집 중에는 초콜릿 카페('CH Chocolaterie')가 있다. 초콜릿도 팔면서 크레페 위주의 브런치를 하는 집인데, 케이크에 초콜릿이나 딸기를 넣은 단 종류가 많다. 구시가 광장에서 카우나스 성채 방향으로 가다 보면 자주 지나치는 좋은 자리에 있어서 걷다가 힘든 다리도 쉬어갈 겸 종종 드나들게 되었다. 어두운 실내에 나무 탁자와 푹신한 소파가 있고, 바깥이 전혀 안 보인다. 바깥 날씨가 안 좋은 날 쉬어가기 더 좋은 집이었다. 

낡은 건물들을 천천히 새로 단장하고 있는 구시가지 북쪽에 남아있는 커피 클럽 Kavos Klubas

카우나스 구시가지에서 네리스 강변 쪽으로 뻗은 작은 길 곳곳에는 작은 가게가 오밀조밀 모여 있거나 의외로 중식당, 일식당이 나타나기도 한다. 낡은 건물을 잘 수리해서 예쁜 디자인 용품 가게나 공방이 있기도 하고, 구제불능인 건물은 아예 헐고 주변과 조화를 깨지 않는 디자인으로 깔끔하게 새로 지어 임대용 아파트로 선전하기도 한다. 낡은 구시가를 살리고 활용할 방법에 대한 고민이 묻어난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삐걱거리는 나무 탁자나 두꺼운 나무 기둥을 그대로 쓰면서 간간이 모던한 그림이나 장식을 조화시킨 오래된 카페가 있다. 단순히 커피클럽(Kavos Klubas)이라고 쓰여있는 카페도 있는데, 내부는 의외로 널찍하고 카페와 바, 레스토랑을 합친 듯한 통나무집 분위기다. 

자유로에 새로 문을 연 조지아 식당 Mtevani와 아르메니아 식당 Kuskus

구시가지가 낡은 모습을 예쁘게 유지하면서 거리를 활성화하려고 노력한다면, 자유로는 낡은 모습을 다 벗겨내고 깔끔하고 모던한 거리로 거듭나는 중이다. 물론 모던하다고 해도 근대 분위기의 통일성을 해치지는 않는다. 서울처럼 통유리 빌딩이 들어서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거리 전체 모습은 1920~30년대 리투아니아 공화국 시절의 이상화된 모습으로 보인다. 1층마다 자리 잡은 식당과 카페들은 날이 갈수록 국적이 다양해지고 있다. 아직도 제일 많은 종목은 이탈리안이지만 단순한 피자집보다는 서로 분위기를 달리하는 레스토랑들이 생겼다. 작년에 조지아 식당이 문을 열어서 너무 반가웠는데, 최근에 아르메니아 식당, 레바논 식당도 생겼다. 식당이지만 디저트와 차만 먹기도 하고, 밤늦게까지 하면서 주류도 판매하니 바를 겸한다. 주변에 사는 사람으로서 가까이에 이렇게 다양한 식당과 카페가 늘어난다는 것은 고맙고 신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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