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을 땐 괜찮다가도 막상 알고 나면 불편해지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 나를 뒷담화 했다는 소식처럼 모르는 게 약인 진실들이라던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핀 곰팡이 같은 것들이 그렇겠다.
내 인생에도 그런 불편 혹은 불쾌감을 만드는, 그러나 무해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연성 섬유종, 다른 말로는 쥐젖이다. 그것은 내게 인식되기 전까지 조용히 몰래 숨죽여 자라나고 있었다. 나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것을 더욱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었는지 친구였는지 내 목덜미를 콕 찌르며 '너 여기 뭐 났는데?'라고 말했다. 그 순간부터였다. 내 몸에 괴생명체가 자라나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한 것이 말이다.
무려 22년, 나는 그것과 함께 불편한 동거를 해왔다. 괜히 뗐다 상처만 키울까 봐. 옛말에 긁어 부스럼이라고 가만히 둬도 내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걸 억지로 떼어 내다가 오히려 더한 대가를 치르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차일피일 시술을 미룬 게 어느새 22년이나 흘러버렸다.
그러던 어제, 나는 마침내 그것을 떼어내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몇 번이나 피부과 예약을 들락거리며 고민만 반복하던 일에 마침표를 찍었다. 불현듯 용기가 샘솟았다거나 충동적으로 이 녀석과 작별해야겠다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최근 이 녀석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그것은 내 목에서 양분을 먹으며 자랐다. 어찌나 잘 먹고살았는지 어느새 새끼 발가락 한 마디 정도는 될 만큼 커져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머리를 기르고 다닌 통에 그 녀석의 존재를 새까맣게 잊고 살아왔다. 그러던 얼마 전, 목덜미를 긁다 피를 본 날에야 그곳에 그 녀석이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오랜만에 본 그 녀석은 생각보다 굉장해져 있었다. 힐끗 봐도 내 몸에 요상한 게 달려있다는 걸 눈치챌 정도로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다. 그것은 마치 영화 기생수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이 정도면 혹부리 영감님의 모래주머니 정도로 봐도 되겠는걸?'
재밌는 상상을 하던 중에 불편한 마음이 밀려왔다. 이건 내가 봐도 징그러운데, 남들이 보면 얼마나 혐오스러울까. 게다가 이렇게 피가 날 정도로 걸리 적 거린다면 확 떼어내는 게 옳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곧장 피부과에 전화를 걸었다.
15분, 이 녀석을 처음 발견한 후로부터 오늘까지 약 22년, 그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5분이었다. 시술을 마치고 나오며 '고작 이것 때문에 그 긴 시간을 고민만 했나'라는 작은 아쉬움을 느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고, 지금 그것을 할 여건이 된다면, 바로 지금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어떤 일이든 덮어놓고 미루다 보면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조금 두렵더라도, 혹은 조금 귀찮더라도, 이제는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바로 해치워버리겠다고 다짐해 본다. 인생 뭐 있나? 그렇다고 망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하고 보는 거다. 미노와 고스케의 말을 빌려 본다.
'죽는 것 말고는 그저 찰과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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