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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gang Jan 07. 2019

나는 공이었다

인생의 정점


  

거기, 공 하나가 눈을 맞고 있었다. 눈을 뒤집어쓴 공을 발로 슬며시 밀어보았다. 공은 눈을 털며 굴러갔다. 우연히 느닷없이 그곳에 선 우리 두 사람, 인생은 이렇게 느닷없는 것이라고 말이라도 하는 듯 그 자리에 나란히 서 있었다. 어디에서 굴러왔는지 모를 공 하나와 어디에서 굴러왔을지 모를 우리 두 사람, 빈 겨울 운동장에 한참을 서 있었다.


  눈이 내릴 것이라고는 예감하지 못했다. 집을 나설 땐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깨워 토요일 아침을 맞는 거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마음이 동해 내쳐 달려간 곳은 능내리를 거쳐 양수리였다. 그곳에 도착하니 눈은 봄날 꽃잎처럼 팔랑거렸다. 목왕리를 지날 때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산란했다.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창이 넓은 카페에 앉아 산란하는 눈발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가는 곳곳마다 문은 닫혀 있었다. 카페를 찾아 달리는 그 길에서 난데없이 눈 내리는 겨울 풍경을 마주 했던 것이다.



  고요하고 적막했다. 사부작사부작 눈 내리는 소리가 보였다. 부유하는 커다란 눈송이의 소리가 펄렁, 늑골을 들추고 지나갔다. 눈이 내리는 길은 직선이었다가 곡선이었고 곡선이었다가 사선이 되었다. 마치 인생도 그런 거라고 말이라도 하듯 팔랑거렸다가 산란했다가 잠잠했다가, 눈은 환생하듯 휘날리고 있었다. 차는 꾸물꾸물 애벌레가 움직이듯 기어갔다. 정배리 이정표가 희미하게 보였다. 예상하지 못한 눈사태를 만날까 겁이 덜컥 났다. 그가 투덜거렸다. “전기매트 켜놓고 거실서 따땃하니 티비나 볼 건데 괜히 나와서 고생”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예민한 더듬이 하나 더 갖고 사는 아내의 변덕스러운 마음을 보조하며 살아야 하는 남자의 마음이었다.


  그가 바짝 긴장하며 운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잠시 쉬어가자고 정배초등학교로 들어섰다. 자동차 엔진 소리만이 골짜기를 울리고 있었다. 방학 중인 학교, 사락사락 눈 내리는 소리와 우리 두 사람 숨소리만이 요동쳤다. 거기 공 하나가 눈을 맞고 엎드려 있었다.

  깊은 동면에 든 운동장, 아이들이 없는 빈 운동장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발끝에 차인 공은 아무 소리도 없이 발자국을 남기며 몇 걸음 더 굴러갔다. 조금 더 세게 찼다. 공은 눈을 털며 폭신한 눈밭을 억지로 굴러가고 있었다.



 '공은 한 번도 스스로 굴러본 적이 없다'는 시 한 구절이 내게로 왔다. 최필녀 시인의 ‘공속의 허공’이라는 시구 중 한 대목이다. 공은 한 번도 스스로 굴러본 적이 없구나. 아 그랬구나.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깨달아졌다. 그래 맞다. 공은 스스로 구를 수 없는 존재이다. 바람이 불거나 누군가의 손길이나 발길이 닿아야 움직일 수 있다. 제 아무리 딴딴하게 공기를 주입해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어도 스스로 구를 수 없는 구조물이라는 것, 그것이 공의 운명이다.


  공은 몇 걸음 굴러가다 멈춰 서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희미하게 눈을 비비며 너는 누구냐고 묻고 있었다. 공을 보며, 나를 보았다. 나는 공이었다. 나, 여기까지 혼자 잘 굴러온 줄 알았다. 그런데 나도 스스로 구룰 수 없는 존재였다. 치열하게 구르고 또 구를 수 있게 한 그들이 있었다. 사랑해 컹컹 사랑해, 조건 없이 외치며 길을 열어준 그들이 있었다. 감사했다. 나는 그들에게 난데없이 예를 갖춰 경례를 표하고 싶었다. 제아무리 딴딴한 축구공도 운동선수의 발끝에 차인 순간 움푹 들어가며 날아간다. 멀리 날아갈수록 상처가 깊다. 그렇지만 공은 순간 몸을 둥글게 펴며 공으로서 책임을 다한다. 그래야 다시 굴러갈 수 있으니까. 원망했던 나의 상처도 그와 같았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공은 종횡무진 운동장을 내달릴 것이다. 쉰의 정점에서 잠시 멈춰 선 나도 다시 어딘가로 굴러갈 것이다. 아무리 딴딴하게 자존심을 곧추세워도 스스로 구를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겨울 빈 운동장 홀로 눈을 맞고 엎드려 있는 공을 보며 깨달았다. 힘을 빼야 비로소 볼 수 있고, 가장 자연스러워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공의 동면은 다시 날아오르기 위한 쉼이라고 해야 할까. 다시 아이들로 운동장이 왁자해지면 공은 제 본문을 기억하며 굴러가고 뛰어가고 날아오를 것이다. 공기가 빠지는 그 순간까지 공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이다. 우주가 돌아가는 대로 몸을 맡길 것이다. 나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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