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추어탕
매캐한 생솔가지 타는 냄새가 마을을 휘감았다. 골목에는 노란 햇볕이 막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임을 매캐한 냄새에서 이미 눈치챘지만, 노란 겨울 햇살을 등진 느티나무 긴 그림자가 사라지는 그 순간이야말로 확실한 저녁 무렵임을 증명했던 것이었다. 그때 마을은 온통 연기로 가득했다. 여기저기 이 집 저 집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저녁연기에 빨개진 내 손은 더 시뻘겋게 보였다. 그 순하고 어린 손이 거칠어져 있었다. 찬바람에 손이 시린 줄도 모르고 비석 치기에 열중한 탓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가마솥에 김이 모락모락 났다. 부엌에서는 도마질 소리가 들렸다. 살금살금 들어가 가마솥에서 따뜻한 물 한 바가지를 퍼내 대야에 부었다. 손을 씻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칼질을 하면서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나는 살며시 아궁이 앞에 앉아 부지깽이를 들었다. 긴 겨울방학 동안 밖으로 도는 나를 나무라지 않는 엄마가 고마웠다. 그때 엄마는 도마질을 하며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엄마의 노랫소리는 늘 구슬펐다. 이제 오느냐 소리도 없이 그저 흥얼대는 그 소리가 어쩐지 안쓰러웠다.
“엄마, 고등어탕 해?”
정적을 깨듯 엄마에게 물었다. 이미 냄새에서 고등어탕임을 알았으면서도 그렇게 말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뭔지 모를 사색에 잠긴 엄마의 고독을 깨우고 싶어서였고, 엄마가 화가 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엄마는 대답 대신 푹 삶은 고등어를 꺼내어 가시를 발라냈다. 잔가시까지 발라내고 잘게 으깬 고등어살과 시래기를 넣고 산초가루 살짝 뿌려 푹 끓여낸, 고등어추어탕은 추운 겨울이면 자주 하는 엄마의 으뜸 메뉴이기도 했다.
아궁이에 다시 불을 모으고 나뭇가지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갈 때 솥에서는 구수한 고등어추어탕이 푹 고아지고 있었다. 그때 돌계단을 터벅터벅 오르는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국이 끓고 있는 것을 마치 알았던 것처럼 알맞은 저녁시간을 챙겨 들어오신 아버지의 존재는 집안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는 등불 같았다. 그 시절 모든 아버지들은 다 그랬던 것 같다. 농사일을 하고 크고 작은 집안일을 살피고 단속하는, 헛기침 하나로도 온 집안의 기운을 환히 밝히는 가장의 권위가 있었다.
엄마가 만든 고등어추어탕에 김치 두어 가지 놓고 셋이 먹는 저녁이 옹기종기 따뜻했다. 달가닥거리며 숟가락 부딪는 소리도 좋았다. 오늘도 친구들과 비석 치기를 했느냐, 고 묻는 아버지의 우렁한 목소리는 더없는 평화였다. 살짝 끼얹는 엄마의 잔소리도 그땐 싫지 않았다. 국그릇이 비워지고 밥그릇이 비워질 때쯤 엄마는 다시 숭늉을 들고 들어왔다. 추운 겨울 고등어추어탕을 먹는 날의 누룽지 맛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정말 그랬던 것 같다. 입 안의 비릿함을 싹 가시게 했던 숭늉 맛의 깊이는 겨울밤의 온기를 더해줬다.
“새가 차고 날아간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그 여운 속에서 나는 듣습니다” 나희덕 시인의 시 한 구절이다. 새가 차고 날아간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리는 것처럼 유년의 풍경 하나가 마음을 흔들고 지나갔다. 고등어추어탕을 먹는 날 밤이었다. 고등어추어탕을 끓이던 겨울 저녁의 공기와 냄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따뜻한 저녁 밥상, 함께 나눴던 그날의 이야기까지 오롯이 내 마음 한 물결 일으켜놓고 간다. 오래도록 나는 추어탕을 잊고 살았다. 일터와 육아를 병행하며 바쁜 일상 속에서 삶의 우선순위는 모두 아이들에게 맞춰 있다 보니 아이들의 입맛에 맞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고등어추어탕 냄새가 진동하는 어느 겨울 하루를 묘사하며 이 글을 시작한 이유는 잊히지 않는 그날의 그림과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고픈 욕심에서이다. 동구 밖에서 비석 치기를 하던 유년의 나와 돌계단을 껑충껑충 딛고 들어서는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 그리고 부엌에서 홀로 불을 지피며 칼질을 하고 무념 속에 고등어추어탕을 고아낸 어머니의 마음과 우리 가족이 즐겼던 그 겨울의 고등어추어탕 맛, 그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아까운 그 날의 풍경을 오래도록 내 안의 밀실에 저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노래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이 온기는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눈물겨운 내 안의 그림이다.
“오늘 추어탕 어때?”
가끔 퇴근하는 남편에게 카톡을 보낸다. 아버지 어머니가 보고 싶다거나 몸살 끼가 있다거나 그 외에 나도 모르게 밀려드는 어떤 그리움을 삼키고픈 그런 날에 해당된다. 그와 둘이 추어탕을 먹는다. 고등어추어탕을 대신할 수 없지만 그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는 따스한 시간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말없이 뚝배기를 비운다. 온몸으로 전해지는 겨울밤의 하루가 내 안을 가로질러 돌아 나와 나를 충만하게 한다. 추어탕은 음식이 아니라 보약이고 따스했던 날들이다. “오늘도 비석 치기를 했느냐”라고 묻는 아버지의 미소도 그 틈에 살짝 끼어 “공부는 안 하고 방학 내도록 밖으로만 도느냐”는 어머니의 잔소리도 노래처럼 몸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피를 돌게 한다.
뼈와 살이 기억하는 유년은 삶의 근원이자 그리운 노래이다. 아버지 어머니와 단란했던 유년의 한 토막이 더러 노래가 되어 흘러나온다는 것은 울컥, 심장을 아릿하게 한다. 겨울 외풍을 뒤로 한 채 방문을 닫아걸고 따스한 아랫목에 밥상을 놓고 둘러앉은, 도시로 나간 언니 오빠들을 염려하며 마음을 모았던 저녁 시간은 말하지 않아도 기도로 채워지는 시간이다.
봄이 지나면 여름 오고, 한 계절이 지나면 또 한 계절이 오는 것처럼 그렇게 흐르고 흘러서 아버지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다. 내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서 제 할 몫을 해내는 지금 이 시점, 이제 와 돌아보니 내게도 그러한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한낱 꿈인가도 싶고, 인생이 한순간에 머물렀던 것처럼 가까이 펼쳐진다.
제비는 내 안에 깃을 접지 않고
이내 더 멀고 아득한 곳으로 날아가지만
새가 차고 날아간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그 여운 속에서 나는 듣습니다
<나희덕, ‘나뭇가지가 오래 흔들릴 때’>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읊조렸던 시의 한 구절이다. 특히 그 여운 속에서 나는 듣습니다,를 수도 없이 되뇌었다. 그리운 시절은 여운이 깊다.
* '추어'는 미꾸라지를 말하지만, 겨울이면 미꾸라지 대신 고등어로 탕을 끓였다. 부모님은 그것을 <고등어추어탕>이라고 말했다. <고등어탕>이 맞는 표기이지만 어머니의 표현 그대로 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