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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gang Mar 30. 2021

몽당비가 밤이슬을 맞으면 도깨비가 된대

몽당빗자루


 “엄마,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얼른 뛰어가 몽당빗자루를 든 건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아이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긴 토담을 다 쓸고서야 허리를 폈다. 머리는 잊었지만 나의 몸은 예민한 들짐승처럼 몽당비를 기억하고 있었다. 내 안의 풍경 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딸아이와 둘이 여행을 했다. 무엇을 본다는 것보다 함께한다는 의미가 컸다. 의기투합한 모녀는 재재거리며 안동 유적지를 돌았다. 마지막으로 들렀던 곳이 하회마을이었다. 거기 류 씨 고가(古家) 처마 밑 토담 아래 몽당비가 비스듬히 놓여 있었다.

 몽당비가 밤이 되면 도깨비가 된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느냐고, 햇살이 가득한 토담에 걸터앉으며 나는 딸에게 물었다.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빤히 나를 바라보던 아이는 몇 발자국 건너에 앉았다. 아이의 등으로 볕이 쏟아졌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 몽당비가 밤이슬을 맞으면 도깨비가 된대. 외할아버지가 그랬어. 나는 몽당비를 좋아했거든. 손안에 쏙 들어와 쓸기도 편했고, 일단 가벼웠어. 불이 활활 타는 아궁이 앞을 쓸어 낼 때도 좋았고, 구석진 틈 사이를 쓸어 낼 때도 좋았어. 특히 토담 구석구석과 좁은 돌계단을 쓸어낼 때도 안성맞춤이었지. 학교에서 돌아와 숙제를 다 해 놓을 때까지 할아버지 할머니는 들에 나가 돌아오지 않았어.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쓸쓸했어. 그럴 때마다 나는 옹색한 곳에 떠밀린 검부저기를 몽당빗자루로 쓸어내었어. 빗자루를 갖고 놀았다는 표현이 맞을 거야. 마당 가장자리 줄지어 선 나무 탓에 매일 아침저녁으로 비질을 해도 검부러기는 끊임없이 생겨났어. 쓸어내고 또 쓸어내야 했지.


 - 빗자루는 종류도 많았어. 쓸모가 다 달랐지. 대나무빗자루, 수수빗자루, 갈대빗자루 등등. 모두는 개성이 뚜렷했고, 각자의 몫이 분명하게 있었어. 대나무빗자루는 넓은 마당이나 골목길을, 수수빗자루는 토담이나 뒤란을, 갈대빗자루는 그 품위가 도도하여 방바닥이나 마루를 담당했지. 빗자루들은 각자의 역할을 잘 찾아 제할 몫을 해 내었지만 구석진 곳까지 말끔하게 쓸어내지 못했어. 큰 빗자루가 미처 가닿지 못한 곳에는 몽당빗자루가 딱 적격이었어.


 - 몽당비는 가볍고 단정했어. 닳을 대로 닳아서 뭉툭한 모양이 몽둥이 같다 하여 몽당빗자루라 했대. 모양새는 볼품없지만 이것만 한 것이 없었어. 몽당빗자루가 닿지 않은 구석은 없었거든. 어떤 빗자루든 오래 쓰다 보면 몽당비가 될 수밖에 없어. 그러나 동글동글하고 모난 데가 없이 잘 닳아서 서분서분한 몽당비가 되는 건 그리 쉽지 않아. 모두가 다 요긴한 몽당빗자루가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 처음부터 잘 길들여지고 다듬어져야 가능해.


 - 어느 날 동화책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읽었어. 몽당빗자루가 도깨비가 된다는 거야. 무서웠어. 빗자루를 만질 때마다 무서운 도깨비가 떠올랐어. 그 후 몽당빗자루를 마당 끝 두엄자리로 내던져 버렸어. 뒷날이면 누군가 또 마루 밑에 갖다 놓곤 했지. 나는 또 마당 끄트머리로 내던졌고, 장대를 들고 몽당빗자루를 살살 건드리며 도깨비가 맞느냐고 솔직하게 말하라고 끈질기게 묻기도 했어. 웃기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집을 비우고 혼자 집을 지키는 날은 빗자루는 더 크게 내 시야에 들어왔어. 아예 보이지 않는 절구통 뒤쪽으로 숨겨버렸어. 무섬증에 사로잡혀 꼼짝할 수가 없었거든.  


 - 빗자루를 만든 사람은 할아버지였어. 할아버지가 정성껏 만들어 우리 집 울안에서 몽당비가 되기까지 함께 살았는데 그런 빗자루가 도깨비가 된다는 건 너무 황당한 이야기지 않니? 믿고 싶지 않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책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는 거야. 그때 인쇄된 글자 하나하나는 내겐 절대적인 믿음이었으니까. 하하.


 이야기를 듣던 아이는 저만치 걸어가며 불쑥 말했다.


 “엄마, 도깨비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숨어 있지 않을까?”


  -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도깨비는 항상 착한 사람 편에 서 있었잖아?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선한 존재. 방망이 한 번 두드리면 집이 한 채 생기고, 맛있는 밥상이 생기는 민화 속의 도깨비는 언제나 너그럽고 후했던 것 같아. 구석지고 옹색한 곳도 마다하지 않는, 부서지고 닳아질 때까지 묵묵히 제할 몫을 다해 내는 몽당빗자루, 바로 그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다 보면 사람의 모습도 몽당비처럼 되겠지.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뼈는 바람 들고 피부는 푸석푸석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을 테지만 마음만은 따뜻하고 건강한 한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몽당빗자루처럼 말이야.


 “그거네! 금 나와라 뚝딱!”

 “그래서 몽당비가 도깨비가 되었나 봐….”


 딸아이는 박수를 치며 유레카를 외쳤다.

 쓸모 있는 몽당비가 되기까지의 긴 여정을 생각하다 나도 무릎을 쳤다. 민화 속 도깨비는 듬쑥한 사람의 편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몽당비는 도깨비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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