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구조는 우리가 내면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영혼을 다시 중심 잡도록 돕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일상의 실제적 측면을 직관적으로 통찰할 수 있게 되며, 깊은 평화를 느끼게 된다(Mike Booth 외, 2006).”
오라소마에서 Equilibrium Bottle(평형병)은 0번부터 시작된다. 오라소마의 창시자 Vicky Wall이 가장 처음 만든 0번 바틀은 의식을 나타내는 상단에 로열블루, 무의식을 나타내는 하단에 딥 마젠타 컬러가 담겨있다. 가장 어두운 밤하늘, 이집트 밤의 여신 누트를 상징하는 로열블루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빛 하나 들지 않는 어두운 곳, 달도 없이 캄캄한 밤일수록 평소에는 볼 수 없던 미세한 별빛까지 잘 보이는 것처럼, 로열블루는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내던 내면의 빛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당신에게는 그런 빛이 있는가? 평소에는 다른 불빛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 빛.
나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자신만만하다가도 은연중에 튀어나오는 말이나 행동에서 도대체 알 수 없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내 마음을 내가 모르는 것 같은 순간들은 또 얼마나 허다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순간들은 잠깐 멈칫할 뿐 그냥 지나가버린다. 될 수 있는 한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마음에 외면해버릴 때도 있다. 0번 바틀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면 이제 그 순간들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나를 알기 위해
그 순간들 속에 숨어있는 문을 열고,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 보라고 말하는 것이 0번 바틀이다.
이 바틀에서 무의식을 나타내는 컬러는 딥 마젠타다. 무의식 안에 아직 발현되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듯이 딥 마젠타는 아직까지 내게서 발하지 못한, 혹은 꽁꽁 숨겨놓은 모든 빛을 담고 있다. 그 빛은 내가 간절히 원하는 모습일 수도 있고, 죽도록 싫은 모습일 수도 있다. 순간들 속에 숨은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면 이 두 가지 모습 모두 만나게 된다. 이 모습들을 칼 G. 융은 ‘그림자’라고 말한다.
밤길을 걷다 내 그림자에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내 그림자를 나를 쫓아오는 괴한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한참을 심장이 튀어나올 듯 두근두근하며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경보를 하듯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걷다가 용기를 내 뒤돌아본 순간, 내가 낯선 이라고 생각한 것이 실은 내 그림자였음 알아차리고는 온 몸에 힘이 빠지며 피식 웃음이 나오던 경험.
나만 이런 경험이 있을까? 우리가 무의식의 문을 열고 내려가 만나는 그림자도 이런 게 아닐까?
<장화홍련>이라는 옛이야기를 보면 어떤 고을에 사또가 새로 부임하기만 하면 첫날밤을 못 넘기고 비명횡사한다. 주인공 사또가 드디어 이 고을에 부임해 첫날밤을 맞는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귀신이 나타나기에 그 많은 사또들이 죽어 나갔는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또. 드디어 처녀 귀신 둘이 나타난다. 다른 사또들처럼 지레 놀라서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면 이 사또의 운명도 다르지 않았을 텐데 주인공답게 이 사또는 귀신들에게 말을 건다. 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인지 묻는다. 사연을 들으면서 그 귀신들의 이름이 장화와 홍련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억울하게 죽은 소녀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두려움과 공포는 연민으로 바뀐다. 귀신 이야기의 결말에는 공통점이 있다. 귀신들이 한을 풀고 이승을 떠날 때 그들의 모습은 그 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림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꿈속에서 당신을 괴롭히는 사람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괴물이나 귀신의 모습으로 나타나 악몽에 시달리게 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이유 없이 너무 좋거나 너무 싫은 감정으로 그림자가 나타나기도 한다.
아무리 <장화홍련>의 결말이 뭔지 알아도 그림자를 대면할 용기가 나질 않는가?
그래서 0번 바틀이 당신에게 손짓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당신이 그림자와 대면할 용기를 주려고.
당신의 그림자는 장화와 홍련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그들의 한을 풀어준 사또가 나타나지 않는 한 점점 더 무서운 귀신으로 무한 변신한다.
용감한 사또 덕분에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은 장화, 홍련처럼
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신의 그림자를 돌려놓는 일,
그건 당신의 현재를 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0번 바틀을 시작으로 우리는 이제 내면의 그림자들을 만나러 떠난다.
“그림자 없이는 빛도 존재하지 않으며 불완전함 없이는 어떠한 정신적 전체성도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