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세상 모든 게 놀이였다. 어딘가로 향하던 길, 그 길이 지루해질 때 즘 시작하는 놀이가 있다. '금 밟지 않고 걷기'.
누구나 한 번쯤은 이 놀이 경험이 있지 않을까? 규칙을 정하고 나면 지루하기만 하던 길이 갑자기 아슬아슬하고 흥미진진한 놀이터가 된다.
어젯밤 꿈에서도 나는 무언가를 밟지 않고 길을 통과해야 하는 과제를 수행했다. 금 밟지 않고 걷기가 놀이라면 이건 시험 같은 것이었다. 금을 밟으면 좀비가 되는 무서운 시험.
그런데 공포영화 같은 꿈을 꾸고 일어난 아침, "사랑을 위한 새로운 시작"이라는 달콤한 이름을 가진 바틀이 나를 부른다. 그린과 핑크 컬러 조합이 '봄'같은 이 바틀은 꽁꽁 언 마음을 풀어주는 게 핑크의 따뜻함이라고 말한다. 핑크는 '사랑'을 의미한다. 무조건적인 사랑. 세상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조건 없는 수용과 사랑, 보살핌이 핑크의 키워드이다.
공포영화 같던 어젯밤 꿈이 내 마음에 찾아오는 봄의 모습이었을까? 변덕스러운 3월의 초봄.
꿈에서 나는 한 무리의 일행과 차를 타고 한적한 시골 부대 앞에 다다랐다. 막다른 길이다. 부대 분위기가 이상하다. 이 부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좀비 같은 존재로 변해버렸다. 영화 속에서 흔히 보는 좀비처럼 공격적이지는 않은데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이상한 상태의 존재들이다. 넋이 나간 채 몸만 존재하는 그런 사람들 같다.
차에서 내려 어떤 여자애 집에 동생과 함께 들어갔다. 나도, 동생도, 그 여자애도 모두 십 대 소녀 같다. 여자애의 아빠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애의 아빠는 그 이상한 부대의 군인이다. 들키면 안 될 것 같아 동생과 나는 얼른 이불속으로 숨었다. 이불이 너무 작아서 들킬 것 같다. 다행히 여자애의 아빠는 금세 나가버린다.
장면이 바뀌어 그 여자애와 내가 어떤 통로를 걸어가고 있다. 동굴 같기도 하고 건물 사이로 난 긴 통로 같기도 하다. 끝이 안 보이는 그 통로 끝에서 여자애의 아빠가 불쑥 나타난다. 도망가려는데 그 남자가 내 앞에 사진 조각 같은 것을 확 뿌린다. 통로 저 끝까지 사진 조각들이 길에 조각조각 붙어버렸다. 그 사진을 밟으면 나는 좀비로 변한다. 바닥을 잘 보며 조심조심 사진이 없는 곳을 디디며 통로를 겨우 통과한다.
여자애의 아빠, 나를 좀비로 만들려는 무시무시한 군인은 나의 아니무스일까?
아니무스는 여성의 남성적 측면이 의인화된 것이다. 그것은 여성에게 악한 존재로 나타나기도 하고 신성한 안내자로 드러나기도 한다. 아니무스가 건강할 때 여성은 그의 도움으로 세상과도 자신과도 건강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여성이 아니무스와 자신을 분리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소통할 수 있을 때 아니무스는 건강한 모습으로 내면에 존재한다. 하지만 여성이 아니무스에 완전히 포획되어 버릴 때 그는 괴물로 변한다. 진 시노다 불린의 책을 보며 '아! 이 사례가 바로 아니무스에 먹혀버린 여성을 말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전사이자 전략가인 아테나를 지배 원형으로 가진 여성이라면 학교나 일에 너무 깊이 관여하게 되니 인생의 다른 방면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능할 수 있다. 그녀는 이기겠다는 의지에 불타는 경쟁자다. 전쟁터는 경제 시장이 될 수도 있고 정치계나 학계가 될 수도 있다. 그녀의 성공의지가 워낙 강해서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도 있다. 자신의 경력에 너무 깊이 집중하다가 정서적인 성장을 유예한 결과 친밀한 관계가 부족할 뿐 아니라 내면의 삶도 보잘것없어지며 단순한 즐거움도 없고 충동적으로 행동해 본 경험도 거의 없다. 속도를 늦추지 않는 이상 그녀는 이 부분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 진 시노다 불린, <우리 속에 있는 지혜의 여신들>, 또 하나의 문화.
이제는 이런 삶에서 한 발짝 물러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아니무스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걸까? 그가 통로에 뿌린 사진들이 그 시간의 조각들인 것만 같다. 그 사진 조각을 밟는 순간 마법처럼 다시 그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아테나로서의 삶은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세상이 원하는 삶이 바로 아테나의 삶이라서 그 안에서 박수갈채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기분이란 얼마나 멋진지! 그 속에서 계속 헛헛함을 느끼면서도 자꾸만 그 기분을 갈구하게 된다. 꿈에서 내가 십 대 소녀로 나온 것도 아마 이 때문이지 않을까? 중고등학교 시절이야말로 아테나의 삶에 흠뻑 젖어있던 시간들이었으니.
'그때 내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는 계속 승리를 만끽하는 아테나로 살 수 있었을 텐데!'
한동안 내 마음은 계속해서 되감기 버튼을 눌러댔다.
수많은 '만약' 속을 거닐다 길을 잃고 허우적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과거의 '만약'들을 상상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허황된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어느 순간 과거를 다시 살아보고 싶지 않아 졌다.
이게 '성숙'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현재에 있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에라는 상상만 그만둔 게 아니라 자꾸만 되돌아가던 그 과거 속에 여전히 멈춰있는 아이까지 잊어버렸다. 그 아이는 아직 헛헛함 속에서 기운 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데 난 그 아이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성취를 위해 정서적 성장에 잠깐 멈춤 버튼을 눌렀으면 그걸 다시 눌러 돌아가게 해야 하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아이의 축 처진 어깨 위에 '만약'이라는 돌들만 쌓아놓은 채로 말이다.
그 아이가 정말 좀비가 되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죽지도 않은 애매모호한 상태. 이 삶을 계속 살아갈 수도 죽어서 새로 태어날 수도 없는 어딘가에 꽉 끼어있는 상태. '만약'이라는 말로 그 아이의 마음을 난도질해놓고서 어쩜 이리도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준 적이 없는 걸까?
꿈속에 불쑥 튀어나온 무시무시한 아니무스가 아니었더라면 오늘도 난 그 아이를 기억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무스가 통로에 뿌려놓은 사진 조각들을 피해서 한 번도 밟지 않은 새로운 길을 깡총깡총 뛰어가는 나의 십 대 소녀, 그 소녀는 무사히 그 긴 통로를 통과해서 나에게 왔다. 과거로 다시 잡아당기는 사진 조각들을 잘 피해서 무사히 의식 속으로 올라와 준 그 소녀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울컥 눈물이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