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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젠타

이 컬러에 끌리나요?

by Redsmupet

바틀명 : 위로부터의 사랑

바틀을 섞으면 나타나는 컬러 : 마젠타

기조 : 작고 소소한 것들 안에서 사랑이 실천되면 모든 것에 신성이 현존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확언 : 나는 신성이 내 삶의 이 순간 나에게 저절로 드러나심을 감사함으로 기다린다.

키워드 : 일상의 모든 것에 대한 사랑, 감사하는 마음, 위로부터의 사랑, 디테일에 강한, 행동하는 보살핌, 사랑을 줄 수 있는 능력, 돌보는 자를 돌보는 자, 경외감, 숨 막히는 사랑, 오지랖




어렸을 적, 엄마가 시장에 갈 때면 늘 따라나섰다.

장보는 내내 엄마 손을 꼭 잡고 온 세상이 신기한 듯 눈을 크게 뜨고 쉴 새 없이 종알댔다.

"엄마 이게 뭐야?"

"사과"

"엄마 이게 뭐야?"

"순대"

"엄마 이게 뭐야?"

"고등어"

"엄마 이게 뭐야?
"모과"

"이거 말이야~"

"모과"

"이거~ 이거~"

"그게 모과라고"

"아~~~~ 하하하하 모과가 이름이야? 모과!!"


그게 참 좋았다.

꼬마에게는 엄마의 모든 대답이 "사랑해"라는 말로 들렸다.

세상천지가 신기한 것 투성이던 꼬마가 어른이 되면서 신기하던 많은 것들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신기한 게 있을 때면 숨기려 했다. 사람들 모두 당연하게 여기는 걸 나 혼자 신기해하면 나를 모자라는 사람 취급할까 봐 입을 꾹 다물었다.

"푼수"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럴까?


어느 날 <첫 번째 질문>이라는 그림책을 만났다.

엄마 손을 꼭 잡고 시장에 가던 꼬마, 그 또래의 여자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그림책이었다. 어릴 때 나처럼 책 속의 소녀도 계속 질문을 한다.


[오늘 하늘을 보았나요?

하늘은 멀었나요, 가까웠나요?

구름은 어떤 모양이던가요?

바람은 어떤 냄새였나요?


좋은 하루란 어떤 하루인가요?

오늘 "고마워!"라고 말한 적이 있나요?


창문 너머, 길 저편에 무엇이 보이나요?

빗방물을 가득 머금은 거미줄을 본 적이 있나요?


떡갈나무 아래나 느티나무 아래서 문득 걸음을 멈춘 적이 있나요?

길가에 선 나무의 이름을 아세요?

나무를 친구라고 생각한 적이 있나요?


마지막으로 강을 본 것은 언제인가요?

모래밭에, 풀밭에 앉아 본 것은 언제인가요?


"아름다워!"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좋아하는 꽃 일곱 가지를 꼽을 수 있나요?]


- 오사다 히로시 글, 이세 히데코 그림, <첫 번째 질문>, 천 개의 바람 중에서


소녀의 질문을 따라가면서 대답을 해본다. 대답을 하기 전에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구름의 모습을 살핀다. 어떤 감사함이 숨어있었는지 하루를 되짚어 본다. 정원에, 길가에 내가 보지 못한 아름다움이 숨어있나 찬찬히 살펴본다. 내가 마지막으로 강을 본 게 언제였는지 핸드폰 사진첩을 뒤적인다. 그곳에서 일출과 일몰 사진도 찾아본다.

"와~ 여기 너무 좋다"라고 말하고 사진 한 장 찰칵, 그리고 갈길을 재촉해온 시간들이 핸드폰 속에 빼곡하다. 모든 아름다운 순간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에 열심히 사진을 찍어놓고서 그런 사진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온 일상이 들춰진다.

소녀처럼 세상 온갖 것에 질문을 하던 꼬마가 휴대폰에 사진들만 잔뜩 모아놓은 수집광이 되어버린 걸 발견한다.


어쩌다 세상은 작고 소소한 일상에 감탄하는 사람을 '모자라는 사람' 취급하게 된 걸까? 별종으로 여기게 된 걸까? 갖고 싶으면 주문하면 되고, 궁금하면 검색하면 되는 세상 속에서 뭐가 모자라 별 것 아닌 것에 감사하고, 쓸데없는 질문을 오랜 기간 품고 지내나 답답한 걸까? 이런 세상에서는 소녀의 질문도 하찮은 게 되어버릴지 모른다. 당신에게는 어떤가? 소녀의 질문은 당신에게 하품을 가져오는가, 어떤 울림을 가져오는가?


소녀의 질문에 대한 당신의 대답에는 몇 개의 긍정이 있는가? "네"라는 대답이 많으면 많을수록 당신은 마젠타스러운 사람일 것이다. 일상에서 아름다움과 감사를 발견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 자신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게 아님을 이미 눈치챈 사람. 아름다운 순간을 소유하려 하기보다는 그 순간에 녹아드는 사람.


"맨날 지나다니는 길인데 뭐가 그렇게 갈 때마다 감탄스러워?"라며 한숨짓던 가족들, '푼수'라고 놀리던 친구들. 하지만 매일 보는 것에서 매 순간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감탄하는 삶은 지루할 틈이 없다. 당신의 눈을 사로잡는 아름다움이 여기저기 가는 데마다 널려있다고 상상해보라. 매 순간이 그렇다고 생각해보라. 어떻게 지루할 수가 있겠는가? 어떻게 그 삶이 신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푼수 인지도 모르겠다. 맨날 실실 웃고 다니니.


작고 소소한 것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사람을 향할 때 생기는 감정은 '감동'이다. 주변에 혹시 이런 사람이 있는가? 김장했다고 김치 챙겨주고, 누가 과일을 많이 줬다며 나눠주고, 어디 여행 갔는데 이걸 보니 딱 당신 것이더라며 선물을 사 오고, 사람이 그리운 날이면 신기하게 연락해서 밥 먹자 하고, 어떻게 그렇게 귀신같이 내 마음을 아는지, 내 마음속에 들어와 보기라도 한 것처럼 살뜰히 챙겨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마젠타 빛을 지닌 사람이다. 나에게는 마젠타 같은 사람이 할머니다! 우리 똥강아지~ 하면서 꼭 안아주는 할머니, 내가 좋아하는 것만 귀신같이 밥상에 차려주는 할머니, 여름밤 귀신 이야기 들려주며 무서워서 소리 지르는 나를 꼭 안아서 재워주는 할머니. 사실 나에겐 이런 할머니가 없다. 대신 엄마가 조카들에게 하는 걸 보며 '우리 엄마가 마젠타 할머니가 되어가는구나'라고 느낀다.


당신에게는 이런 마젠타 빛 사람이 있는가? 혹시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인가?

곁에 마젠타 빛을 지닌 사람이 있는 이도, 내면에서 마젠타 빛이 반짝이는 이도 모두 축복받은 사람이다.

일상이 감동인 사람들이니 말이다.

매 순간이 사랑스럽고 감사한 이에게 당연함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일상이 지루할 틈이 없다.

매 순간 기적만 있을 뿐!




글 속에서 발견한 마젠타!


"늙기는 동사의 세계라기보다는 형용사의 세계이다. 날이 저물어서 빛이 물러서고 시간의 밀도가 엷어지는 저녁 무렵의 자유는 서늘하다. 이 시간들은 내가 사는 동네, 일산 한강 하구의 썰물과도 같다. 이 흐린 시야 속에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연히 드러난다. 자의식이 물러서야 세상이 보이는데, 이때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다. 너무 늦었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다. 이것은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의 세계이다." - 김훈, <연필로 쓰기>. 문학동네




햇살이 참 아름답죠? 오늘 당신의 일상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했나요?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걸 목격하는 행운을 누렸어요!


파도에 신나서 꺄르르 웃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가득했어요!


당신의 일상은 어떤가요?


<Photo by 홍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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