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에 누워있던 나는, 화장실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복작거리는 말소리와 함께 엄마와 동생이 왔다 갔다 움직이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양치를 하고, 아침밥을 준비하고, 출근 가방을 찾는지 좁은 집 안을 분주히 돌아다니는 소리에 나는 누운 채로 눈을 떴다.
오전, 몇 시쯤 되었을까? 휴대폰으로 시계를 보니 아무래도 무직자인 내가 아직 안 일어나도 무방한 시간이었다. 뒤척이면서 옆으로 돌아누웠다.
회사 갈 일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는 나는 금세 잠이 들었다. 그렇게 내리 2시간쯤 더 잔 뒤 어느샌가 조용해진 집 안에서 다시 눈을 뜬다.
퇴사 후,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무슨 요일인지 내겐 중요하지도 않았다. 평일인가 주말인가 상관도 없었다. 엄마와 동생이 출근을 했으니 오늘이 평일이겠거니 한다. 그제사 몸을 일으켜 일어난다. 달력을 보고 요일을 확인해 본다.
아침에 이상하리만큼 할 일이 없었다. 회사가 가지 않으니 출근 복장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하는 일이 없어졌다. 아침밥도 급하게 먹을 필요도 없었다.
마루 커튼을 열었다. 바깥은 맑고 조용했다. 나는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한 사람도 지나가지 않았다.
하루가 이상할 만큼 길게 느껴졌다. 시계를 보면 아직 오전 10시.
티브이를 켜보면 나오는 아침 프로그램이 낯설게 느껴졌다.
뭐라도 먹어볼까, 냉장고에 있는 밥과 반찬으로 아점을 먹으니 11시.
이제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출근하고, 회의하고, 메일 확인하고, 들어오는 일 처리하느라 바빴다. 빈틈없이 꽉 막혀 굴러가던 하루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일을 놓고 멈춰 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회사 생활의 긴장감과 압박감이 사라진 자리엔 고요한 시간만 남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생각보다 무게감이 있었다.
하루를 온전히 나 혼자서 보내는 시간은 마냥 쉬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