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생기자, 생각이 많아졌다. 특히 과거의 장면들이 자꾸 떠올랐다.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순간들이었다.
사람들로 꽉 차있는 출근길 지하철 풍경과 출구에서 보이던 삭막한 회사 건물 그리고 출근시간 직전 들리던 근처 커피집과 자주 가던 음식점, 늘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던 회사 로비의 엘리베이터.
창가 옆이었던 내 자리, 성과가 적어 긴장감이 흘렀던 회의 시간, 인정받고 싶어 무리했던 야근, 하루를 다 바친 주말 출근, 매끄럽지 못했던 월말 발표, 모르는 함수들로 이뤄진 엑셀 정산 파일, 기본 실력으로는 벅찼던 포토샵 이미지 편집까지.
그 시절 나는 늘 일이 버겁고 마음은 불안했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밖에 행동하지 못했을까.
왜 더 잘 말하지 못했을까.
왜 더 노력하지 못했을까.
아쉬움과 자책감과 민망함과 자존심 사이에서 감정들이 뒤섞이면서 불쑥불쑥 올라왔다.
그 감정들은 다 나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왜 나는 성과를 못 내지?
내가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닐까?
어떤 날은 어떤 기억 하나에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았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시간이 생기자 과거가 틈을 비집고 올라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을 괴롭게 한 건 명백하게 회사도 아니고 회사 사람도 아니었다.
대부분은 내가 나 자신에게 쏟은 자책이었다.
쉬는 동안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과거는 나에게 전할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과거를 자꾸만 돌아보는 건, 단순히 후회를 곱씹는 게 아니라 그때 듣지 못했던 내 마음을 다시 알아채는 일이라는 것을.
그 기억들은 나에게 말했다.
"너는 그때 충분히 애썼어. 그 사실만을 알아주자. 이제는 다 괜찮아."
그때 미처 돌보지 못한 내 마음을 이제라도 감싸주려고 한다.
과거는 그냥 흘러만 가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은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과거와는 또 다른 새로운 나를 만든다.
나는 내가 무엇이 부족했는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얼마나 그때 애썼는지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나 자신에게 엄하게 들이댔던 잣대를 이제는 치워버려야겠다고, 나 자신을 좀 더 소중하게 여겨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