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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평탄한 길이 좋은 길인가?

예쁘고 쉽고 쭉 뻗은 13코스가 내게 남긴 것

by 젊은 느티나무

12코스가 끝나고, 13코스부터는 오랜만에 초보자 코스들이 이어진다. 지도상으로 봤을 땐 탄천길인 것 같았는데, 등산화 없이 산을 열심히 타던 내게 드디어 쉬는 시간이 찾아온 거다.


원래 공복으로 둘레길을 걷고는 하는데, 근처에 저장해 둔 만둣집이 하나 있어서 간 김에 먹고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이 기회가 아님 거기까지 만두를 먹으러 가지 않을 것 같았다. 만두는 피도 얇고 맛있었는데 막 멀리서 찾아올 맛은 아니었다. 많아서 적당히만 먹고 길을 나섰다.


하천길을 걷나 했는데 둘레길 표지판은 자꾸 윗길을 가리키길래, 아 그냥 도심 속을 걷는 건가 했는데 웬걸. 굉장히 잘 정돈된 길이 등장했다. 오늘의 코스는 그 잘 닦아놓은 길을 쭉 걷는 코스였다. 날씨도 좋고 길도 평탄하고. 오늘은 정말 산책하는 기분으로 주변도 둘러보면서 걸으면 되겠다 싶었다.


특히 철도와의 분리를 큰 방음판으로 하지 않고 나무를 심어서 분리해 둔 것도 좋았고 장미들로 많이 심어져 있어서 좋았다. 정말이지 평화로운 산책길이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벚꽃길로 유명하던데 벚꽃 필 때 왔음 진짜 예뻤겠다. 근데 이상하다. 산에서 밟았던 흙길이 오히려 좋았나 보다. 딱딱하고 평탄한 바닥을 걸으려니 발도 좀 아팠고, 굴곡 없이 쭉 뻗어있다 보니 점차 지루해졌다. 이상하다. 길은 참 예쁜데 왜 점점 감흥이 없지. 산 탈 때에는 데크길이 나타나면 너무나 기뻤는데. 산속에 있어서였을까 아주 잠깐의 휴식이어서였을까.


지루하게 길을 걷다 보니, 이 길이 쉬울지언정 시간도 안 가고 성취감도 없으니 너무 졸렸다. 한 번도 둘레길을 걸으며 졸린 적은 없었고 오히려 머리가 맑아졌는데.. 역시 쉬운 길이 정답은 아니구나. 나는 힘들지라도 산이 좋다.. 고 생각했다. 겨우 고척스카이돔이 보였을 때 둘레길이 끝났다. 지루하다.라고 처음 생각했다.


그렇게 둘레길은 끝났고 이틀 뒤부터 갑자기 한쪽 발이 너무 아팠다. 걸으면 통증이 발목까지 올라와서 도저히 평범하게 걸을 수가 없었다. 난생처음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하루 만에 갔다. 사고가 있었던 게 아니라서 이상은 없었는데 아마 무리해서 그런 것 같다고. 나이 먹으면 원래 그렇다고 그런다. 일단 내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됐다는 것에 충격. 그리고 이제까지의 험난한 산길보다 처음 맞이하는 평평한 길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에 충격. 심지어 그 고통은 거의 사일 동안 호전의 기미도 없이 이어졌고, 나는 불안에 떨었다. 그리고 어제. 씻은 듯이 그 고통이 사라졌다. 13코스가 내게 남기고 간 것. 병원비와 노화에 대한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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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평화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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