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을 좋아한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아 잘 펴지지도 않는 새 책 말이다.
새 책을 손에 들고 책 내음을 맡는다.
종이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책은 절대 빌려보지 않고 꼭 사서 읽는 편이었다.
한국에 살지 않는 관계로 책을 구입하는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올 때면 내 트렁크는 새로 산 책들로 무거워 들 수도 없을 지경이 된다.
또 한국에서 나를 방문하는 식구들의 트렁크에는 역시나 내가 주문한 책들로 가득이다.
그래도 책이 또 필요해지면 이곳 온라인으로 구매를 한다.
정말 비싼 값에 울면서 오더 한다. 이를테면 16000원 정도의 책을 30000원 정도에 산다고 생각하면 된다.
코리아타운에 알라딘 서점이 오픈을 했고 그곳에서는 새책도 판매를 하지만 누군가 팔고 간 헌책을 다시
되팔기도 한다. 나는 워낙 새책 마니아였기 때문에 헌책은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어느 날 시간이 남아 들린 서점에선 그날따라 '고객이 방금 팔고 간 책'이라는 코너가 눈에 뜨였고 구경만 하자라는 마음으로 섰는데 이미 내 손엔 몇 권의 책에 들려 있었다. 빧빧한 새 책은 아니지만 그리 낡거나 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가격이 마음에 들었다. 16000원 정도의 책을 20000원 정도에 살 수 있었다. 아이고 기뻐라!!! 몇 권의 책을 들고 계산을 마치고 랄라라~ 춤추듯 집에 돌아왔다.
차 한잔과 새로 가져온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책이 재밌어지기 시작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였을까? 이 책을 샀던 사람은.. 그 사람은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을까? 같은 책을 선택한 것을 보니 나랑 죽이 잘 맞았을지도 모른다. 누군지 모르는 그 사람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그 사람이 넘겼던 책장을 다시 넘기는 내내 뭔지 모를 유대감과 따뜻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이 일본어 공부가 필요해 일본어 공부책이 필요하다고 하자, 나는 당장 알라딘 서점으로 갔다.
직원분께 일본어 공부책을 찾고 있다고 하자 직원분께서는 어제 누군가 팔고 간 책이라며 딱 맞는 일본어 공부책을 찾아 주었다. 오늘 나는 일본어 공부 책이 필요했고 이 책을 팔고 간 사람은 이 책이 더 이상 필요 없어져서 어제 서점에 팔았던 것이다. 신기할 것도 없는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책도 새 주인을 찾아가는 것만 같아 기쁘고 그 인연이 소중했다.
재미나는 놀이터가 생겼다.
당분간 이보다 더 재미나는 곳은 찾기 힘들 것 같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뀌는 나의 새 취향을 맞이하는 일이 즐겁다.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다시 날마다 새로워지리라'
중국 탕왕은 이 글귀를 욕조에 새겨두고 매일 다짐하였다고 한다.
정체되고 고여 있는 삶이 그리 좋을 게 없다는 것을 터득한 사람이었나 보다.
오늘도 새로운 일들과, 인연과, 새 습관들을 만들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나를 세상에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