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끝 나갈 때 대부분의 우리는 집에 가기 싫어 발버둥을 친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일상생활'이라는 그 무거운 짐을 어깨에 다시 짊어져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행의 마지막 밤은 얼마나 아쉽고, 얼마나 아련한지...
그곳의 풍경들과, 사람들, 음식, 길에 돌아다니는 들고양이들까지 모두 주워 주머니 속에 가지고 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마지막을 담으려 휴대폰의 카메라는 가방 속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손에서 항상 대기상태다.
이런 아쉬움을 달래서 일상으로의 복귀를 조금 수월하게 해주는 음식이 있다.
엘에이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북창동 순두부'의 순두부이다.
여러 가지 속 재료에 따라 순두부를 고르고(해물 순두부, 섞어 순두부, 곱창 순두부, 소고기 순두부... 등) 맵기를 선택한다.(아주 맵게, 맵게, 보통, 순하게...) 그러면 갓 지어낸 돌솥밥과 함께 겉절이와 젓갈류, 어묵등 반찬들과 한상 가득 나온다. 아! 본 음식이 나오기 전에 아가의 손바닥 만한 조기가 한 마리 튀겨져 나온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애피타이저로 먹고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
좀 더 거나하게 먹고 싶으면 세트메뉴를 주문하면 된다. 갈비구이 정식, 게장정식, 조기정식, 돌솥비빔밥 정식..
세트메뉴는 정말 상다리가 부러진다. 지글지글 구워낸 갈비나 매콤하게 무쳐낸 게장이 순두부와 돌솥밥과 함께 나오면, 뜨거운 밥 한 숟가락 떠먹고 게장 한번 쭉 빨아먹고 뜨거운 순두부를 입 안에 넣어주면 입 안에서 파티를 한다. 돌솥밥의 밥을 밥공기에 덜어놓고 물을 부어서 놓아둔 누룽지는 밥을 다 먹어갈떄쯤 되면 구수한 누룽지가 되어 나를 기다린다. 맵고 짠 음식들로 채운 뱃속을 심심하고 따뜻한 누룽지가 들어가며 싹 어루만져 준다.
더 이상 뭐가 필요하단 말인가..
하루종일 일이 바빠 무척이나 피곤한 날도, 디즈니랜드 같은 놀이공원에서 아이들과 온종일 씨름하느라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님을 느끼며 밤이 돼서야 집으로 향할 때도 발길은 저절로 순두부 집으로 향한다.(새벽 3시까지 영업을 한다)
한국에서 엘에이를 방문해 느끼한 미국 음식들로 지친 친구들을 순두부집에 데리고 가면 열에 아홉은 미국에서 먹은 음식 중에 제일 맛있다고 아우성을 친다.
그 어떤 때 보다도 순두부가 가장 필요할 때는 한국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이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또 언제 볼 수 있을까 하는 눈빛을.. 내가 없이 혼자서 부모님을 챙겨야 하는 형제들에 대한 미안함.. 다음 모임에선 볼 수 없어 아쉬워하는 친구들의 허전한 마음... 입맛에 착착 맞는 그리운 음식들..
모두 두고 돌아서 비행기를 타는 마음은 지독히도 쓸쓸하고 생으로 속이 쓰릴만큼 아프다.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신이 나 영화도 보고 재미없는 비행기 잡지도 싹 다 읽으며 비행기에서 얼른 내려 집까지 뛰어갈 태세이지만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는 그저 눈을 감고 침묵이다. 잠은 왜 그리 쏟아지는지.. 엄마가 그랬다. 너는 어릴 적 속상하면 잤다고.. 너를 두고 외출했다가 전화해 네가 뭐하는지 물었을 때 너를 봐주는 사람이 네가 자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만사를 제치고 집으로 달려왔다고.. 엄마가 없어 속상하고 싫구나 해서.. 집으로 달려왔었다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대분분의 시간을 잔다.
그런 나를, 우리를, 위로해 주는 음식이 바로 이 순두부이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비행기에서 내리면 무조건 순두부 집으로 향한다. 뜨겁고 맵고 말캉한 순두부가 목젖을 타고 뱃속으로 내려가며 우리에게 한 마디 건넨다. 'welcome home!’
이번생은 어쩌다 남의 나라 살이 하는 인생이 되었으니, 후회도 말고 울지도 말고 누구보다 씩씩하게 살아내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