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알라딘 중고서점에 재미를 붙여 드나들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거꾸로 내가 갖고 있는 책들도 좀 가져다 놓아야겠다 싶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중고로 나와 있는 책은 정말 적었다.
나는 책을 다 읽고 나면 분류를 한다. 다음에 다시 읽고 싶은 책은 나의 책장으로 들어가 먼저 있던 책들과 나란히 꽂히고 다시는 안 읽겠다 싶은 책들은 따로 모아둔다.
책장에 꽂히기에서 탈락한 책들이 좀 쌓였다 싶었고, 어차피 나는 안 읽을 테지만 이 책들을 읽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탈락한 책들이 다시 책장으로 꽂히는 경우도 있으니 나의 지금의 마음을 그다지 믿을 수는 없다.)
커다란 코스코 백으로 삼분의 이쯤 채워서 들고 한인타운에 위치한 알라딘 서점으로 신나게 갔다.
팔고 싶은 책들을 심사받는 곳으로 가서 줄을 섰다.
다행히 줄을 서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금방 내 책들은 심사대에 오를 수 있었다.
장갑을 낀 직원이 일단 책이 찢어진 곳은 없는지 낙서는 없는지 살폈고 비교적 깨끗한 내 책들은 모두 통과되었다.
그다음 심사에서는 한 권씩 바코드를 찍어보며 책을 내려놓는데 한 5권 정도만 빼고 모두 퇴짜를 맞은 것이다.
이유는 오버스탁.
즉 너무 재고가 많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책의 수량이 너무 많으니 사줄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가져온 코스코 백에 퇴짜 맞은 책들을 다시 집어넣는데 왜 그리 손이 부끄럽고 무안하고 창피한지..
정말 부끄럽고 무안한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도 어처구니가 없는 순간이다.
나는 정말 여전히 거절에 대해 면역력이 생기지를 않는다.
직원은 시간이 좀 지난 후 다시 가져오면 그때는 재고가 또 달라져 있으니 팔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나를 달랜다.
네네 그럼요.. 직원을 보며 무안해서 달아오른 표정으로 평소보다 더 크게 웃어준다.
오버스탁이 아니라 오버 스마일이다.
왜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누군가와 아무 이야기나 좀 하고 싶어서 전화하고 싶은 순간.
고르고 골라 전화를 건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허전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던 마음은 더 허전해지게 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니 누군가 나에게 갑자기 무언가를 청하면, 이를테면 갑자기 동네 스타벅스에서 차 한잔을 하자고 나올 수 있냐고 묻거나, 갑자기 점심을 먹자고 하는 연락이 오면 정말 정말 웬만해서는 응하는 편이다. 그리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거절을 해야 하면 내일은 어떠냐고 아니면 모레는 어떠냐고 꼭 다시 약속을 정하고 말을 끝낸다.
상대방에게 허전한 마음을 주기 싫어서.. 비록 지금은 못 만나지만 내일 만나자고.. 허전해서 연락한 상대방에게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고 꽉 찬 마음으로 돌아가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이다.
최인호 작가가 어느 에세이 책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아무것도 청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고'
이 구절을 읽고는 무릎을 탁 쳤었던 같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의 신념을 한마디로 요약해 주었다 싶었다.
그렇다 나는 아무것도 청하지 않고 아무것도 거절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살면 삭막해서 그게 사람 사는 거냐고 사람은 적당히 신세도 지고 사는 거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정말 청하는데 재주가 없고 거절하는 것은 마음이 아파서 못하는 편이다.
그래도 이제 이만큼 나이도 먹었으니 거절당하는 일에 면역력이 조금은 생겼으면 좋겠다.
마음이 악어가죽처럼 두꺼워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