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월요일-봄이 오기 전에 장미 가지치기 해주기.
봄이 오고 있다.
가끔 비도 오고, 아직은 서슬 퍼런 봄바람도 분다.
옆집에서 넘어와 내가 아무것도 해주는 일이 없는데도 내게 사과를 주는 옆집 사과나무를 자세히 보니 싹이 트려고 솜털 같은 것들이 달려 있다.
겨울 내내 비리비리하게 버티고 있는 우리 집 장미나무들에 시선이 머문다.
본격적인 봄이 오기 전에 필요 없는 가지들을 다듬어 주어야 한다.
빨간 여린 가지가 올라오기 전에 다듬어 주어야지, 빨간 새 가지가 자라면 미안해서 가지치기를 할 수가 없다.
집안에서 귀찮고 부담스러운 마음에 창문으로 바라만 보고 있다가 오늘의 '개구리 먹기'로 결심을 한다.
바람이 꽤 쌀쌀해서 두꺼운 자켓을 입고 모자를 뒤집어쓰고 전지가위를 들고 장미 가지치기를 시작한다.
오늘 하루에 다 할 수는 없지만 급한 것부터 자른다.
정원을 가질 자격이 있을 만큼 부지런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것은 하려고 무지하게 노력 중이다.
사실 나 같은 사람을 주인으로 둔 정원에게 매일 민망하다.

3월 4일 화요일-집에 오시는 손님을 위한 화장실 세팅
시부모님이 2주 반동안 우리 집을 방문하시게 됐다.
머무르시는 동안 편안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화장실 세팅이 필요한다.
오늘 오후에 도착하시기 때문에 지금 당장 해야 한다.
가장 급한일은 '개구리 먹기' 카타고리에 들어갈 수 있다.
아들아이가 쓰는 화장실을 내어 드릴 것이다.
아이의 물건을 우리가 쓰는 화장실로 옮기고 새 칫솔 두 개와 새 치약을 가져다 놓는다.
샤워실에서 쓸 비누와 세면대에서 쓸 비누과 손비누를 모두 새것으로 교체한다.
수건을 새로 빨아서 큰 수건과 작은 수건으로 넉넉하게 놓는다.
여행을 갔다가 친한 지인들 집에서 자고 갈 일이 생길 때가 있다.
남의 집에서 지내며 수건이 마땅치 않으면 참 당황스럽다.
집주인에게 계속 수건을 달라고 하기도 미안하고.. 어쨌든 나는 수건이 굉장히 불편하다.
그래서 손님이 오시게 되면 수건부터 준비한다.
준비를 마친 화장실을 보니 내가 손님이라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무언가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그냥 내가 남에게 바라는 대로 해보면 되는 것 같다.
화장실의 불을 끄고 나오며 준비가 다 됐다는 생각에 편안한 한숨을 한번 쉰다.
3월 5일 수요일-짐 정리
우리가 미국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한국의 모든 식구들은 미국으로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20년이 넘도록 이 일을 하고 있는 식구들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중에서 가장 미안한 짐은 책이다.
항상 열 권 이상의 책을 부탁하기 때문에 트렁크를 풀으며 그 무거운 책을 꺼내 놓을 때면 황송하고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일단 어제는 시부모님께서 가져오신 짐을 풀어서 한편에 쌓아두었다.(모두가 피곤해서..)
오늘은 제자리를 정해서 모두 들어가야 집안 정리가 된다.
손님이 와계시는데 어수선하게 해 놓을 수는 없다.
일주일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싶지만 '개구리 먹기'를 해치우고 손님을 편안하게 대접해야 한다.
나는 아침에 가장 기운이 난다.
잠을 자고 에너지를 90% 이상 채운 후 일어나면 가장 하기 싫은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오후 5시가 넘으면 아무리 쉬운 일도 의욕이 제로가 되어 오 몸이 흐물거리는 상태가 된다.
일어나자마자 무거운 책들을 책장으로 나르고 마른 건어물은 팬트리와 냉동고로, 젓갈이나 장아찌류는 소분하여 냉동고로 보내어 느끼한 미국음식으로 지쳤을 때 꺼내먹고 반짝 힘을 낼 수 있게 한다.
다시 말끔해진 집안에 고양이들이 조용히 걸어 다닌다.
3월 6일 목요일-안 해도 됐을 바닥청소 하기
아침에 단 오이피클을 한통 사 왔고 세탁기 위에 잠깐 올려둔다고 했는데.. 주욱 미끄러지며 와장창 깨져 버렸다.(세탁기 위가 평평하지 않고 경사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달짝지근한 오이피클은 런드리룸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고 급하게 닦고 나중에 보니 바닥이 온통 끈적끈적하게 되었다.
바닥청소를 빡세게 해야 하게 생겼다.
하기 싫은 일 1호는 '개구리 먹기'다.
물티슈로 될 일이 아니어서 헌 수건을 꺼내다가 물을 잔뜩 적셔서 바닥을 세게 문지른다.
세탁기 밑에 먼지까지 딸려 나오며 일은 계속 커진다.
쪼그려 앉아서 끈적거림이 없어질 때까지 닦고 나니 아이고 소리가 나온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으면 없었을 일이었다.
조심조심.. 천천히... 제발..

3월 7일 금요일-고양이 사료 조제하기
애완동물들은 사료라는 것을 먹고 산다.
캔에 들어 있는 통조림 같은 것도 먹고 씨리얼 같은 딱딱한 건사료도 먹는다.
건사료를 보면 참 맛없게 생겼다.
어떻게 하면 질리지 않도록 해줄 수 있을까 하고 건사료를 이것저것 사서 사료통에 섞어 놓고 먹인다.
이맛도 보고 저 맛도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료통이 비어 가면 '사료조제'를 해야 한다.
완전히 비었을 때 하게 되면 마음이 급해져 정성이 덜 들어가게 된다.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신경 써서 해주고 싶은 일이다.
'개구리 먹기'로 오늘 해두어야지 며칠 후 제때 줄 수 있겠다 싶다.
사료를 섞는 소리가 나면 어떻게 알고 벌써 와서 섞고 있는 중인 사료를 오도독오도독 먹고 있다.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둔다.
나의 애완동물 키우는 법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두는 것이다.

3월 8일 토요일-썸머타임을 위해 시계 다시 맞추기
내일부터 썸머 타임이 시작된다.
미국은 3월 초부터 11월 초까지 썸머타임을 한다,
한 시간 일찍 자고 한 시간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썸머타임이 시작되고 3주 정도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 있다.
6시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시작했다면 썸머타임으로 5시에 일어나야 되는 것이다.
익숙해지기 전까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썸머타임을 좋아한다.
한 시간 일찍 당겨지는 바람에 해가 길어진 것처럼 느낄 수 있다.
해가 긴 여름밤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여름이 성큼 다가온 것처럼 벌써 마음이 설렌다.
오늘은 내일의 썸머타임의 시작을 위해 온 집안의 시계를 한 시간 앞으로 당겨야 한다.
개구리로 모든 시계를 만지며 겨울이 가고 여름이 올 것임을 축하한다.

3월 9일 일요일-무거운 이메일 보내기
자원봉사를 시작한 지 1년 남짓 되었다.
봉사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천사일 거라는 착각을 좀 했었다.
대장 자원봉사자를 만나고 일을 하는 첫날부터 나의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일이 조금만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무섭게 화를 내었다.
자신의 삶에 활력소를 불어넣고 싶어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사람들은 슬며시 떠나기 시작했다.
2주에서 2달 정도면 모두 그만두었다.
나는 1년 2달을 그곳에서 버텼다.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2주 전 대장 봉사자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성질을 내었고,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마음을 먹게 해 줘서 고마웠다.
오늘은 '개구리 먹기'로 대장 봉사자에게 긴 이메일을 쓰려고 한다.
서두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어서 봉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행복하지 않았다.
당신이 언제 어떻게 화를 낼까 항상 두려웠고......
그 간의 일들을 디테일하게 썼고, 마지막에는 '이제 나는 일 년간의 자원봉사를 끝낸다. Good bye.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항상 예쁘게 끝마무리를 하고 싶지만 그렇게 안될 때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았음에 연연하지 않고 새처럼 떠나고 싶다.
아주 자유롭게..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