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살지 못하는 사람
따뜻한 온실 속에서 역겨운 가짜 고통을 즐기는 것은 경험이 아니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훌륭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가난한 이의 빈곤마저 앗아가려 한다.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해 본 적이 없고, 그 사랑으로 타자가 가족이 되는 경험도 당연히 없다. 그들의 눈은 멀지 않았지만 한 치 앞도 보지 못한다.
글 박진권
상대적으로 적은 경험으로도 방대한 상상력을 표출할 수 있다. 경험은 사람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전부 다르다. 같은 곳으로 여행 가도, 그곳의 일상과 사람의 습성에 주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특정 지역이나 건축물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그 깊이도 각자 다르다. 무조건 많은 것을 경험했다고 해서 더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방구석에만 박혀 있는 게 아니듯, 누군가의 경험의 크기를 함부로 재단하는 것만큼 멍청한 행동도 없다.
어떤 사람은 무수히 많은 경험을 통해 긍정을 얻어내고, 어떤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경험이지만 좀 더 깊은 사유를 통해 긍정을 찾는다. 나는 수는 좀 적어도 더 깊게 사유하는 걸 선호한다. 어떤 일이 있을 때, 미시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최대한 거시적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특정 장소에 가서 머무르고, 사람을 만나 대화할 때 조금 더 세밀하게 분석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누군가 만들어 준 것도 아니고, 스스로 노력한 것도 아니다. 그저 타고났다고 보는 게 맞다. 그렇게 여러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만드는 것보다, 한 사람과 깊게 친밀해지는 것을 좋아한다. 보통은 좁으면 깊어지는 게 쉽고, 넓으면 얕을 수밖에 없다. 물론, 넓으면서 깊은 사람도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훌륭한 존재를 직접 마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유치원 때부터 아버지의 영업용 트럭으로 전국을 돌아다녔다. 서울,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등 각 지역의 구석구석을 파헤치고, 그곳의 숨겨진 맛집과 계곡을 찾아냈다. 초등학생 때 처음으로 전단지를 돌려서 돈을 벌어봤고, 고등학생 땐 카페와 편의점 알바를 하고, 스무 살엔 카페를 창업했다. 카페가 망한 뒤 순대촌에서 8시간 동안 300개의 철판을 세척 했다. 군대를 다녀오고, 가구판매점에서 영업과 배달 일을 해보고, 건축회사와 무역회사 그리고 유통 회사에서 10년을 보냈다. 이후 가구제작과 출판편집 관련 학원에서 공부도 했다. 결국 잡지사에서 기자로 단기간 일하고 현재 디자인 회사의 제작팀에서 재직 중이다. 독서 모임 2곳에서 6년 정도 운영진으로 지냈고, 현재는 직접 독서 모임을 만들어서 활동 중이다. 여기에 적지 못한 경험도 많다. 기억하기 고통스러운, 부끄러운 것들은 기재하지 않았다. 또 상세히 적은 것도 아니다.
더 많은 경험과 더 깊은 사유를 위해 철학을 공부할 시간도 부족하다. 무수히 많은 얕은 경험은, 적어도 내게는 필요하지 않다.
이 세상의 도덕적이고 지적인 괴물에 대항할 유일한 헤라클레스는 철학이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