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결핍의 사회생활

얼마면 돼?

by 박진권

애정결핍의

사회생활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한 경우 거리를 벌리는 게 습관이 됐다. 더 친해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나와 맞지 않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과 계속해서 마주치는 것은 고문과 다름없다. 그래서 사회생활이 힘들었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안 볼 수 있는 선택권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을 계몽하겠다는 생각은 일절 생기지 않는다. 그렇게 되지도 않을뿐더러 우기는 것에 특화되어 있어 논리에서 밀린다고 순순히 인정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최선은 마주치지 않는 것이고, 차선은 가깝게 두지 않는 것이다.


박진권




얼마면 돼?

원하지 않았던 선의를 베풀고서는 똑같이 돌려받길 원하는 사람이 있었다.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하고, 타인에게 커피나 밥을 사는 등 돈을 헤프게 쓰는 사람이었다. 나와 같은 회사에 크게 다르지 않은 형편임에도, 200~300만 원짜리 코트도 턱 하니 구매했다. 기본 면티도 1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상품을 고집했다. 본인 연봉의 150% 이상을 더 소비하고는, 연말정산 때 300만 원이나 환급받을 수 있다는 자랑까지 했다. 남에게 관심 없는 내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유는, 그가 큰 소리로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는 금전으로 타인을 사귀는 사람이었다. 어쨌거나 돈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이 모이긴 했다. 보통 돈 쓰는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 진심이 아니더라도 일단 앞에서는 치켜세워 주는 게 일반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그는 항상 을이었다. 타인과의 만남을 돈으로 구걸했기 때문이다. 고가의 멀쩡한 옷을 입지 않는다면서 원하지도 않았던 사람에게 선물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어느새 그의 주변에는 무례한 사람들만 남았다. 직접적으로 얼굴이 못생겼다며 인신공격하거나, 성격이 이상하다는 뒷담화를 쉽게 하는 사람들이 곁에 머물렀다. 돈은 돈대로 쓰고, 원하는 애정은 얻어내지 못한 것이다. 그의 주변에는 매번 타인의 흠을 잡는 못된 사람들만 모였다.


그렇다고 그가 돈 잘 쓰고, 밥 잘 사는 좋은 사람은 아니다. 사내 커플이 생겼을 때, 저런 사람이랑 왜 사귀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쉽게 뱉어냈다. 또 비위가 상한다는 소리와 끼리끼리 만난다는 둥 이상한 적개심을 보이기도 했다. 더욱이 여자에 대한 성희롱적인 발언을 자주 했다. 나는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거나, 대꾸하지 않았다. 그가 사는 커피도 마시지 않았고, 주겠다는 물건도 거절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는 나와 적대 관계를 형성했다. 뒤에서 내 험담을 하고 다녔다. 한 번은 직접 들은 적도 있는데, 대단히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직접 나서서 그 일을 바로잡았지만, 그의 험담 메들리는 끝나지 않았다. 결국 무시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내가 본 그는 애정만이 아닌 모든 게 결핍된 것처럼 보였다.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약하게는 삐지고, 강하게는 적대시하며 뒤에서 험담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 8할은 대부분 음담패설과 타인을 욕보이는 것이었다. 그가 사는 커피와 주는 물건은 뇌물이자 청탁이다. 그것을 받는 순간 그의 주변에서 맴도는 하이에나들과 다를 바 없어진다. 멀쩡한 사람도 계속해서 썩은 고기를 먹으면 탈 나기 마련이다. 타인에게 호의를 받을 생각이라면, 스스로도 무언가를 내줘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유 없는 선의는 없다. 특히 병적으로 결핍된 사람의 선의는 악의와 구분할 수 없다. 첫 물건을 받는 순간부터 악의는 시작된다. 이미 받았다면, 어서 빨리 돌려주고 앞으로는 무시하는 것을 권유한다. 유유상종이라고,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언젠가 당신도 썩은 고기에 침을 질질 흘리는 하이에나와 다름 없어질 것이다.


우리의 신체가 의복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도 거짓으로 둘러싸여 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우리의 존재 전체가 거짓이다. 의복을 통해 신체의 형태를 짐작해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외피를 통해 비로소 우리의 진정한 성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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