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 올랐다. 점점 한국을 떠나는 게 빼도 박도 못하게 되어가고 있었다.
한 사람 지나갈 정도의 좁은 이코노미 통로를 지나 내 좌석에 앉았다. 짧은 비행이지만 혹시 화장실이 가고 싶어질 때를 대비해 창가 자리가 아닌 통로 쪽 자리를 선택했다.
창가와 가운데 좌석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 둘이 앉았다. 두 사람은 친구였고 이미 면세점에서 쇼핑한 물건들로 짐이 한가득이었다.
연령대가 비슷한 데다가 베이징까지 가는 시간까지 있으니 자연스레 대화를 트게 되었다. 당연히 첫 번째 주제는 면세점에서 본 빅스의 이야기였다. 연예인들이 자주 공항을 이용한다고는 하지만, 직접 보는 경우는 의외로 드무니 말이다.
그다음으로는 각자의 여행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베이징은 내게는 경유지였지만, 둘에게는 도착지였다.
“베이징으로 얼마나 여행 가는 거예요?”
“3박 4일이요. 그런데 지금 무서워 죽겠어요. 원래 잡은 호텔도 천안문 근처였는데, 거기서 어제 한국인 폭행 사건이 났다고 해서 숙소도 다 옮겼어요.”
“헐. 한국인 폭행이요?”
“네. 오늘도 도착하면 그냥 호텔에만 있다가 밥 먹을 때 잠깐 나가고 그러려고요… 계획이 다 틀어졌어요.”
2017년은 사드 정책으로 인한 중국의 거센 반발이 시작됐을 때였다. 한국에 오는 중국인 관광객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중국의 한국 제품과 문화 사업에 대한 보이콧이 선언됐으며 뉴스 기사를 통해 ‘중국, 한국인 관광객 거부’. ‘중국 여행 중인 한국인 관광객 폭행’ 등의 타이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여행이란 종종 이렇게 야속하게 군다. 국가, 정치, 일, 집안, 금전적 이유 같은 놈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와 미리 잡아 놓은 일정 위에 재를 못 뿌려서 안달이다. 당장 내일을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만, 하루 종일 어린 왕자를 기다리던 사막 여우가 해맑은 왕자의 손에 고양이 밥이 들려있는 걸 본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다. 기대했던 것이 내 의지와 달리 실망스러운 방향으로 흘러갔을 때의 허탈함.
물론 나도 고양이용 7첩 반상 앞에 앉은 사막여우와 다르지 않았다. 내 경우에는 7첩 중 몇 개는 쥐약이 든 복불복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테러리즘으로 정신없이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매달 각각 다른 나라,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같은 이유의 테러로 죽어나간다는 기사가 전 세계로 송신되었다.
나는 내가 이 여행에서 운이 나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다. 테러, 교통사고, 성폭행, 성추행, 인종차별, 소매치기… 여행의 설렘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는 내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만 잔뜩 채워져 있었다. 이 여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죽음으로써 이 여행이 끝날 거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의 두려움은 공황장애로까지 번졌다. 그 상태까지 갔음에도 나는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지 못했다. 죽을 거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한다는 대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어차피 한국에 계속 있는다고 해서 사회 속에 내 자리가 생길 거 같지도 않았다.
“그럼 유럽으로 가는 거예요? 며칠 가세요?”
“음... 잘 모르겠어요. 귀국행 티켓을 안 끊고 가서.”
“헐, 우와!”
“멋있다!”
‘멋있나? 멋있는 건가?’
이런 의문은 허허 거리며 웃음 뒤로 삼켰다. 어차피 이 여행의 목적이 도망이란 건 지금 나밖에 모르고 있으니까. 계속 내가 입만 다문다면 한창 유행 중인 ‘욜로 라이프’를 사는 ‘자유롭고 멋진 청년’ 정도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여자는 몇 년 전 자신의 영국 여행 이야기를 짧게 들려주었다. 여자의 친척이 영국에 살기 때문에 비교적 편하게 여행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게 몇 가지 팁을 알려 주었다.
“옥스퍼드 가실 거죠?”
“네! 가려고요. 저 해리포터 진짜 좋아하거든요.”
“가시면 가죽 제품 하나 꼭 사 오세요! 퀄리티도 좋은데 가격도 저렴하거든요! 이것도 거기서 산 거예요!”
그러면서 자신이 메고 있던 작은 초록색 크로스백을 내게 보여주었다. 정말 예쁜 가방이었다. 만져보니 질도 좋고 튼튼했고, 색깔도 쉽게 질리지 않는 맑은 초록 빛깔이었다. 어떤 옷 스타일에 메도 잘 어울릴 거 같았다.
“얼마였어요?”
“60파운드요.”
“그렇구나. 괜찮다.”
저렴하고 좋은 제품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살 수 있는 가방은 아니었다. 짐을 들이는 것도 문제지만 역시 제일 걸리는 건 돈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한국에 늦게 돌아가고 싶었다.
만약 내가 이 가방을 사게 된다면 60파운드치 만큼 내 여행은 짧아질 것이다. 항상 1파운드가 만들어낼 수 있는 나비효과를 두려워해야 했다.
“해리포터 스튜디오도 가실 거예요?”
“아뇨. 거긴 안 가려고요.”
“왜요? 해리포터 팬이면 거기 진짜 좋아하실 텐데!”
“아… 제가 영화 전공이라 오히려 그런 세트장 같은 데는 흥미가 좀 떨어지더라고요…”
“와! 영화과예요? 멋있다!”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지금의 내게 딱 들어맞는 문장이었다.
유럽을 향해 언제 한국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자유로운 여행을 떠나는 영화 전공자!
내가 봐도 '유럽 여행을 다니며 넘쳐나는 영감에 몸을 맡겨 미친 듯이 작품 활동을 할 거 같은 예술적인 인간’처럼 느껴지기는 했다. 실상은 그냥 취업 실패가 무서워서 도망치는 찌질이일 뿐이지만.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모른다.
영화 업계란 것은 사실 최저 임금도 맞춰주기 힘들 정도의 근무시간과 업무 환경, 그리고 당연히 들어줘야 하는 스테프들의 4대 보험을 들어주는 게 마치 안 해줘도 될 거를 아량을 베풀어서 해줬다는 거처럼 대단한 일을 한 거 마냥 기사까지 작성해서 내보내는 곳이란 걸 말이다.
영화 ‘국제 시장’이 국내 영화 중 최초로 모든 촬영진들에게 근로 표준계약서를 작성하게 했고, 4대 보험과 법정근로조건 준수 등을 적용했다는 기사를 자랑스레 내보인 걸 봤을 때 얼마나 낯이 부끄러웠던지.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영화가 좋았고, ‘필드’에서 일하고 싶었다.
나는 모순적이었다. 영화를 사랑했지만 이용당하여 나 자신을 소모시키는 건 원치 않았다. 영화에게 거부당하는 게 두려우면서 동시에 더 이상 영화를 사랑하지 않게 될까 봐 무서웠다.
결국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눈앞의 갈림길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길이 없는 수풀 속으로 몸을 던져버렸다.
“치킨 오얼 비프?”
시진핑도 이용하는 항공사라더니 두 시간 여행에도 기내식을 주었다. 보통 기내식 고기는 간이 세게 되어 있어서 밥을 먹고 나면 항상 남기 일수였다. 나는 그렇게 남은 고기를 모닝빵 사이를 갈라 잼을 바른 뒤 샐러드와 함께 넣어 먹었다.
이 아이디어는 어릴 때 본 만화 ‘따끈따끈 베이커리’에서 본 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적용해 먹는 ‘오타쿠의 지혜’였다. 역시 경험치가 다르다며 옆자리 여자들도 내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남은 고기를 빵속에 채워 먹었다.
“숙소는 한인 민박에서 주무세요?”
“아뇨. 그냥 게스트 하우스로 가려고요. 찾아봤는데 너무 비싸더라고요.”
“맞아요. 영국 물가 엄청 비싸요.”
“지금은 도착하는 첫날이니까 일단 하이드파크 근처로 잡긴 했는데, 좀 익숙해지면 외곽으로 빠지려고요.”
돈을 아끼기 위해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작년에 했던 동남아 배낭여행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숙박비를 아낀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말이 끝나자마자 여자는 미간을 좁히고 진지한 어투로 내게 말했다.
“런던 생각보다 되게 위험해요. 소름 끼치는 사이렌 소리도 늦은 밤까지 계속 들리고. 비싸더라도 숙소는 중심지 쪽으로 잡으세요. 목숨 값이라 생각하시고.”
목숨 값.
내 아무리 능력 없이 하찮고 비겁한 잉여 인간일 지라도 목숨 값이 15파운드보다는 더 나갈 것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