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영국을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다음 목적지는 프랑스 파리였다.
물론 가난한 여행객은 스코틀랜드 인버네스에서 바로 파리까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지 못한다. 시간을 써서 돈을 아낀다. 그것이 바로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난 이의 필수 요소이니라.
인버네스 가정식 식당에서 ‘홈메이드’라는 글자가 붙은 메뉴를 주문했다. 나에게 익숙한 가정식은 아니겠지만, ‘가정식’이란 이름에서 묻어 나오는 따뜻함을 느끼고 싶었다. 뭐, 맛은 그저 그랬다. 딱히 특별한 것 없는 페스츄리 같은 빵에 미트 소스를 찍어 먹는 맛?
식사를 마치고 짐을 챙겨 다시 에든버러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입이 심심할 때를 대비해서 마트에서 사 온 감자칩을 꺼냈다. 그리고 그 감자칩은 그대로 내 인생 감자칩이 되었다. 진짜, 너무 맛있었다. 적당히 씹는 맛이 있는 바삭함과 물리지 않을 정도의 소금 간. 정신 놨다가는 2봉씩 일주일 동안 먹고 벌크 업할 맛이었다. 영국은 감자칩을 잘 만든다. 영국도 잘하는 음식이 있었어.
이동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기차 도착 시간에 맞춰 바로 에든버러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버스 편을 끊었다.
장거리 이동은 사람을 높은 확률로 멀미 나게 만든다. 그리고 경험상 멀미에는 ‘코카콜라’만 한 게 없었다.
짐을 내려놓고 터미널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다. 그런데 자판기가 내 동전을 그대로 뱉어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당황하며 몇 번이고 동전을 자판기 입구에 들이밀었다. 인간과 기계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 아는가? 바로 기계다. 무조건 기계다. 기계를 부숴도 그건 결국 인간 손해다. 살면서 겪었던 수없는 머피의 법칙 속에서 찾아낸 현명한 주제 파악이었다. 나는 언젠가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날이 오면 바싹 엎드려서 가늘고 길게 살 거임. 어쨌든 끝까지 살아남는 놈이 이기는 세상인 건 마찬가지일 테니.
나는 이 자판기와의 싸움에서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0시간 넘게 겪게 될 멀미를 걱정하며 돌아서려는데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여성이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아무래도 새 동전이라서 그런 거 같은데, 이걸로 해볼래요? 금액은 같아요.”
확실히 여성이 건넨 동전은 내가 들고 있는 것과 모양이 달랐다. 나는 의심의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 고개를 꾸벅 숙이며 동전을 교환했다. 지난 인종차별의 경험들로 인해 에든버러 사람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었다.
여성과 교환한 동전을 넣자, 자판기는 곧바로 내게 코카콜라를 선사해 주었다. 정말 동전의 문제였던 것이다. 나는 감격의 눈빛을 띄고 여자에게 뽑아 든 콜라를 들여 보였다. 그리고 고맙다고 진심으로 인사를 건넸다. 여자도 다행이라는 듯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세상의 모든 곳이 그렇듯이 에든버러에도 나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늦은 저녁 무사히 런던에 도착했다. 하룻밤만 보내면 되기 때문에 킹스 크로스 근처에 가장 저렴한 숙소를 예약했다. 자, 나는 이제 3층 침대의 ‘1층과 3층에서 자보기’ 클리어하게 됐다. 참고로 3층 침대의 ‘2층에서 자기’는 이로부터 몇 개월 뒤에나 하기 때문에 빙고를 완성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인버네스에서 ‘홈메이드’ 메뉴를 골랐을 때 누군가는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아, 얘가 슬슬 향수병이 오고 있나 보구나. 그렇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내 입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때마침 예약한 숙소 앞에 위치한 마트에서는 신라면을 팔고 있었다. 튀김면을 상당히 느끼하게 받아들이는 입맛인지라 한국에서는 거의 라면을 먹지 않았었다. 하지만 입맛이란 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원효대사 선생님이 교과서에 나와 친히 가르쳐주시지 않았던가.
신나게 마트에서 신라면을 사 와 숙소 지하에 위치한 부엌으로 달려갔다. 긴 식당 테이블에는 늦은 저녁을 먹는 여행객들이 제법 있었다. 나는 그들 뒤에 설치된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렸다.
라면은 면 먼저 파인 나. 이때만큼 면 먼저 넣은 걸 후회한 적이 없었다. 팔팔 끓는 면 위로 신라면 수프를 뜯어 푸는 순간!
… 서양에서 온 여행객들의 화생방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난 정말 이럴 줄 몰랐다. 공기 중에 흐르는 신라면 냄새 만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기침을 해댈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최대한 테이블 끝자락에 앉아 고개를 냄비에 푹 숙이고 빠르게 면을 흡입했다. 이 신라면의 매운 냄새 입자 하나라도 더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여러분. 아직까지도 죄송합니다. 진짜진짜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 한국어 모르시겠죠. 쏘리쏘리 암 쏘쏘리 벗 알러뷰. 그때 화내지 않아 줘서 에블바리 땡큐 소 마취…
다음날 짐을 챙겨 숙소 바로 옆의 세인트 팬크러스 인터내셔널 역으로 향했다. 역과 숙소가 가까웠던 덕분에 시간적 여유가 있어 스타벅스에 들려 카푸치노도 한 잔 사서 들어갔다.
이렇게 첫 방문하는 여행객이 현지인처럼 여유를 부릴 때에는 반드시 탈이 나게 되어 있다. 이건 국룰이다. 내가 몸으로 입증했다.
파리로 출장 가는 런던 시민 코스프레를 하던 내가 서 있는 곳은 ‘팬크러스 인터내셔널 역’이 아니라 ‘킹스크로스 역’이었다. 그걸 기차 출발 시간 1시간 전에 알아챘다. 기차 시간 1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으신가요? 여러분. 타는 것이 기차일 뿐 이것은 국경을 넘어가는 일입니다. 게다가 영국이 탈유럽을 선언한 탓에 반드시 이미그레이션 확인을 해야 하거든요… 맞습니다. 저는 비행기 출발 시간 1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한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나는 짐가방과 캐리어를 들고 부랴부랴 ‘팬크러스 인터내셔널 역’으로 들어갔다. 이미그레이션 창구는 EU 시민과 EU 시민이 아닌 사람 두 가지로 분류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브렉시트 덕에 영국 사람들은 더 이상 EU 시민이 아니었다. 그 뜻은? EU 시민 줄이 텅텅 비어있을 때 EU 시민이 아닌 사람 줄은 끝없이 늘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최악 최악. 스스로의 안일함과 멍청함이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더 최악인 것은 직원들의 업무 처리 속도였다.
아니 한국에서는 얼굴 보고 여권 체크하고 몇 마디 하면 끝이었는데, 이곳은 승객 여권에 적힌 지난 여행기록을 보며 개인적인 추억 회상이라도 하시는 건지 한 사람 통과할 때마다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발을 동동 굴렀다. 이렇게 바쁜 티라도 내야지 빨리 보내줄까 싶어서. 하지만 인자한 표정과 그렇지 못 한 업무 속도를 가진 직원은 유리창 너머로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한숨 쉬기 바빴다. 저기요, 진짜 한숨 쉬고 싶은 건 저거든요!
심지어 중간에 직원 교대도 했다. 그것도 웃음과 스몰토크를 곁들여서. 정말 대환장이었다. 결국 나는 앞으로 나가 직원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한데, 제가 곧 기차 시간이 다가오거든요. 먼저 검사를 받을 수 있을까요?”
“아… 다음 기차구나. 음, 괜찮아.”
“예?”
“그다음 기차 타면 돼. 티켓 바꿔줄게.”
“… 예?”
직원의 별 일 아니라는 태도에 벙 찐 상태가 되어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직원은 정말로 이미그레이션 통과 후 추가 요금 없이 내 티켓을 다음 기차로 변경해 주었다. 내가 약속 없는 백수 한량이라서 다행이지, 만약 사업적인 이유로 급하게 가야 하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뭐랄까, 이곳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충청도민의 마인드가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급하면 어제 나오지 그랬슈. 하긴, 급하면 일찍 나오는 게 맞긴 하지.
사실 런던에서 파리로 가는 방법은 기차보다 비행기가 더 저렴하다.
시간을 써서 돈을 아끼는 여행객인 내가 기차를 택한 이유는 단 한 가지 때문이었다. 이 기차는 런던을 떠나 도버 해협 지하를 달려 파리로 도착하는 ‘해저 기차’였다. 내가 뭘 기대한 것인지 바로 알 것 같지 않은가?
맞다. 나는 아쿠아리움을 기대했다. 아니, 기껏 바다 아래로 터널을 뚫었는데 이런 ‘바닷속 볼거리’를 놓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유럽은 놓쳤다. 볼거리를 놓친 대신 확실한 안전을 택한 것이겠지. 내가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본 것이라고는 회색의 시멘트 벽뿐이었다. 지하철도 이것보다는 볼거리가 다채로울 듯.
어찌 됐든 나는 그렇게 파리에 도착했다.
앞으로 펼쳐질 기나긴 배낭여행의 두 번째 여행국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