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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봉안 블루라군과 세상의 끝에서

휴직하고 세계여행 25

by 하라


블루라군은 체닝간 섬에 있는 명소다. 렘봉안에서 체닝간에 가기 위해서는 옐로우브릿지를 건너야하는데 이곳은 오토바이와 사람이 뒤섞여 다니는 폭 2미터 정도의 아주 좁은 다리다. 차는 건널 수 없다. 이 다리로 관광객들은 캐리어도 끌고 다니고 오토바이도 타고 다닌다. 섬과 섬을 잇는 다리니 바다위에 지어졌는데 아래를 보면 넘실대는 파도가 보인다. 무서워하는 아내를 뒤에 태우고 스쿠터로 조심조심 다리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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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를 따라 비포장이나 다름없는 깨진 도로를 타고 덜컹덜컹 올라가면 여기가 맞나 싶은 블루라군 주차장이 나온다. 관광지로 전혀 개발되지 않은 곳이다. 입장료도 상점도 없다. 그럼에도 이곳은 일생의 아름다운 절경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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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 ‘블루라군’이라 이름 붙은 관광지는 많은데 보통 파랗고 고요한 느낌인 반면, 이곳은 경쾌하게 생동하는 절경을 보여준다. 파도가 깎아낸 절벽을 따라 걸어가면 기이하고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데빌스티어에 버금가는 거센 파도의 향연이다. 알고보니 지금이 그믐 즈음이라 파도가 세다고 한다. 시기가 좋았다.

경이로운 자연의 힘에 매료된 우리는 건너편 절벽 끝까지 가본다. 구글 지도에는 워터 블로우라고 나온다. 스쿠터로 산길을 힘겹게 오르니 이곳 또한 절경이다. 진정 세상의 끝에 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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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커다란 절벽의 끝에 다다르면 삼면으로 각각 다른 워터블로우를 볼 수 있다. 끊임없이 파도가 솟구치는 것은 아니다. 잠잠해졌다가 에너지가 모이면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게 보이고, 절벽에 부딪히면 어김없이 수십미터 물대포를 쏘아올린다. 말그대로 워터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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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얼마나 센지 새하얗게 부서지고 그 위로 또 포말이 더해져 물색이 아예 하얗다. 부서진 물결의 하얀색과 심해의 파란색이 만나 뽕따색 블루라군이 되는 것이다. 솟구치는 워터블로우의 순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내 높이 솟아오른 파도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바람에 온몸이 홀딱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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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우리밖에 없었는데 여기가 명소인지 현지인과 서양 관광객들도 꽤 보인다. 이윽고 시간이 흐르자 서쪽으로 해가 진다. 아! 여기는 선셋을 느끼는 곳이구나. 파도 소리와 바다 냄새, 폭죽처럼 터지는 워터블로우,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의 실루엣, 이 모든게 노을 빛으로 물들었다. ‘죽기 전 다시 보고 싶은 풍경’이라는 폴더를 만들어야겠다. 지금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해야지. 지금까지 70여일의 여행 중 사진을 가장 많이 찍은 날이다. 그만큼 소중하게 간직하고, 기록하고 싶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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