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기가 있지만 게임은 그다지 하지 않습니다. 왜 게임기를 샀는지 그리고 유명하다는 타이틀들을 왜 구매했는지 화려한 게임 장면이 새겨진 플라스틱 보관함을 보면서 제 행동에 대해 항상 의문이 듭니다. 그렇게 방치해둔 게임기를 우연히 어렸을 때 했던 스트리트파이터와 1945가 무료로 풀렸다는 소식에 오랜만에 게임기를 꺼내면서 끄적여 봅니다.
웹서핑을 하던 중 게임기 타이틀이 무료로 풀린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스트리트파이터. 순간 멈칫했고 가장 먼저 들은 생각은 '재미있겠다'였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장식품이 된 게임기의 화면을 쓱쓱 닦고 충전을 했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들을 챙겨 와 주변에 적당히 깔아 두고 게임을 다운을 받았습니다. 다운이 끝나자마자 바로 실행, 옛날에 사용하던 기술들이 가물가물해서 조금은 머뭇거렸지만 이내 수십수백 번 반복했던 손이 기억하기에 잃어버린 기술들은 바로 찾았습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추억을 떠올리며 하다가 게임에서 지니 자연스럽게 코인을 넣는 버튼을 누르고 다시 하려는데 왜인지 하기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해당 게임 화면을 나와 다른 것이 없나 살피니 1945가 있습니다. 이 게임은 코인으로 2회 정도 이어서 하다가 이내 게임 화면을 닫았습니다.
게임을 끄고 나서 왜 실행 전까지의 기대감과 두근거림이 사라졌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에 손에 꼽을 수 있던 즐거움 중 하나는 오락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출근하는 아버지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오백 원짜리 하나 얻고자 노력했고 때로는 재롱을 피우며 동전을 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동전을 들고 바로 오락실로 가기도 했고 학교 앞 문구점에 있는 작은 게임기에 웅크려 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동전이 하나 남으면 아쉬워서 그 옆에 가위바위보 게임게에 돈을 넣습니다. 그래서 이기면 게임을 더 할 수 있고 지면 위로 차원에서 나오는 깐돌이, 작은 한 움큼을 손에 쥐고 하나씩 입에 우물거리며 집으로 오곤 했습니다.
게임을 할 때를 떠올려 보면 오락기의 비스듬한 화면 앞에 동전을 두어 계속할 것임을 표시하고 내 차례가 아니면 순서를 기대리며 앞사람의 플레이에 따라 손을 쥐고 움찔 거리며 몰입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멋진 플레이를 하면 뒤에서 놀라는 소리도 들리고 괜히 어깨를 으쓱 거리기도 합니다. 아마도 게임을 할 때 지켜보는 이가 있고 내 실력을 보여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어 재미 이상의 무엇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게임에서 기록을 세우면 자신의 이름을 새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물론, 지금은 게임의 순위가 전세계적으로 집계가 되고 실시간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있어 이름을 새길 기회를 얻기도 힘들고 이름을 새기더라도 누구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동네 오락실에서는 서로 모르는 사이여도 하교 시간. 오락실에 있는 시간이 비슷하기에 묘한 신경전과 서로 얼굴을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름을 새길 수 있다는 것은 그 오락실을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알 수 없는 시선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매슬로우가 언급한 인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 중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만족되기에 오락실에 대한, 문구점 앞 하굣길에 발검을 향하게 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기록을 세우기 위해서는 특별한 능력이 없다면 동전을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준비해 온 동전이 떨어지면 아쉬움에 카운트 다운이 끝나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고 함께 온 친구나 얼굴을 아는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간신히 동전 하나를 얻습니다. 그리고 해당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그 쾌감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다음날 돈을 빌려준 친구에게는 떡꼬치나 피카츄 돈가스 하나를 감사의 마음을 담아 빌린 동전을 갚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한 스트리트파이터와 1945에는 이렇게 간절하게 동전 하나만 있었으면 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코인 버튼 하나만 누르면 동전이 추가되기에.... 그래서 그런지 코인 버튼을 한번 누르고 계임을 이어서 하다가 다음 판에서는 계속해서 코인 버튼만 누르다가 게임을 종료했습니다.
재미가 떨어진 것은 아마 간절함이 떨어져서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어렸을 적의 추억을 떠올리며 하다가 이내 조금만 어려우면 폭탄을 쓰고 피하기만 해서 지나가야 할 상황에 돌진하며 부수기만 하니 어렸을 때 오락실 의자에 앉아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피하던 간절함이나 문구점 앞 오락기 앞에서 친구와 어깨를 부딪히며 조금이라도 버튼 한번 더 누르려는 절박함이 없는 것이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 과정의 두근거림을 포함한다고 봅니다. 보통은 여행에 의미를 부여할 때 사용하는 말이지만, 학교와 집이라는 반복된 일상 중에 친구들과 함께 하는 하굣길 축구나 오락실 분식집은 이런 평이한 일상 중 나름의 변화를 주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그 활동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움직임의 과정에도 특별함이 스며 있었습니다. 이기기 위한 기술을 가지고 토론하고 오늘 하루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나누면서 가는 과정... 게임기 전원을 켜면 끝이기에 그 당시의 과정이 빠졌다고 봅니다. 그러니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어 게임을 해도... 옛날 여전히 그대로인 게임을 만났어도 그 과정이 빠진만큼 재미도 덜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게임을 하기 위해 가는 길의 두근거림과 소란스러움이 없으며 뒤에 사람에게 순서를 빼앗길까 마음 졸이는 일이 없는... 이 또한 실행했던 게임을 이내 꺼버린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묶어낼까 고민을 하다가 문득 '삶의 무게'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체면'과 '생계'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하고 있는 게임인 롤과 관련해서 우스개 소리로 롤에는 인생이 담겼다는 말과 그와 관련된 게시물들이 돌아다니던데... 이에 대해서도 조금 더 고민을 해 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