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의 작은 섬, 소류구의 거북이들아 잘 있니?

by Jean


가오슝 쥬오잉역에 도착해 버스를 기다렸다. 동강페리선착장까지 가는 직행버스가 있다고 했다. 몇 번이나 정보를 확인하고 왔으면서도 우리는 긴가민가했다. 왠지 거짓말 같았다. 섬나라의 섬이라는 게 왠지 낯설었다. 항구에서 2,30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거북이들의 섬'이라는 얘기가 영 미심쩍었다. 시간이 되자 버스는 정확하게 도착했다. 안내대로 1시간여를 달렸고 내리자마자 페리도 바로 탈 수 있었다. 배는 우리의 짐을 싣고 정박용 밧줄을 풀었다. 곧 바다를 가르며 어딘가로 나아갔다. 나는 정말 섬으로 가고 있었다. 소류구, 그렇게 거북이들의 섬에 당도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끽해야 거북이 열 마리쯤 보고 오겠지’, 정도로만 생각했다. 내 상상력은 빈약했다.


오토바이로 일주하는데 한 시간도 채 안 걸리는 작은 섬. 일주도로와 섬을 가로지르는 몇 갈래의 길뿐이라 몇 번만 다녀보면 구글 지도도 필요 없다. 그 섬에서 우리는 아침마다 스노클과 오리발을 챙겨 숙소를 나섰다. 해변에 도착하면 마치 파도를 고르는 일에 인생을 건 서퍼처럼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파도를 체크했다. 파도가 높아도 괜찮았다. 섬이 작으니 동쪽 파도가 높으면 오토바이를 돌려 서쪽으로 달리면 되었다. 의자의 방향을 돌려 하루에도 수십 번 노을을 바라보던 소행성의 어린 왕자처럼 오토바이의 방향을 돌렸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거북이들을 만났다. 섬은 작고 바다는 넓디넓고 거북이들은 셀 수없이 많고 많았다.


화병처럼 생겨 베이스록(Vase Rock)이라고 불리는 바위(소류구의 상징이다)가 작품처럼 서있는 북쪽 해안, 미인동(美人洞)이라는 동굴 아래로 아득하게 펼쳐진 서쪽의 뷰티 비치, 섬 동남쪽에 있는 아담한 해변 시크릿 비치. 동쪽 항구와 서쪽 항구(항구지만 수영이 가능하다)까지, 우리는 매일 가장 좋은 파도를 골라 바다로 첨벙 뛰어들었다.


소류구의 상징인 베이스록


베이스록과 뷰티 비치에서는 바다로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환영 인사를 받았다. 진입로에서 바로 거북이를 만났는데 덩치가 너무 커서 가슴이 철렁했다. 물풀 사이에 숨은 플랑크톤을 먹는지 거북이들은 바닷속 바위에 붙은 해초를 톡톡톡 쪼고 있었다. 수면 바로 아래 바위가 있으니 물 위에 떠 있는 나와 거북이 사이의 거리도 아주 가까웠다. 이러다가 거북이 등에 올라타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는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톰크루즈처럼 몸을 더 평평하게 만들고 거북이들을 바라보았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는다는 걸 아는데도 자꾸 그런 자세가 되었다. 그렇게 어쩔 줄 몰라하며 넋을 잃고 보다가 가까스로 발을 저어 조금 거리를 벌여놔도 파도는 자꾸 거북이들 쪽으로 나를 민다. 거북이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해변의 규칙인데 내 의지로 되지 않았다. 다행히 거북이들은 내게 전혀 관심이 없다. 오직 먹는 것에 초집중. 탄성이 저절로 터지는데 스노클을 끼고 있어 나의 감탄을 나만 듣는다.


시크릿 비치

조금 더 멀리 나가본다. 큰 거북이가 먼바다에 있을 것 같고 작은 거북이들이 연안에 있을 것 같았는데 어째 반대다. 아담한 크기의 거북이들이 떼 지어 혹은 홀로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수심이 깊어져 어느 정도 거리가 생겼고 거북이들이 그렇게 크지 않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거북들을 바라본다. 따라가다가 해안에서 너무 멀어지면 돌아오고 또 따라가고 바닷속 시간은 거북이의 날갯짓을 따라 천천히 천천히 흘렀다. 한 거북이가 해수면을 향해 헤엄쳐 오르더니 머리를 살짝 내밀고 숨을 쉬고 들어간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기 어린 뾰족한 머리마저도 사랑스러웠다.


오후 두 시경 바다로 들어간 날은 거북이들이 낮잠 자는 모습도 봤다. 친구는 아니라고 하는데 바다 저 밑바닥에 붙어 꼼짝도 하지 않는 거북이는 아무리 봐도 취침 모드다. 우리는 한참 논쟁을 벌이다 휴식을 취하는 중이라고 합의를 봤다.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의 섬에서 스노클링을 할 때면 거북이 한 마리만 봐도 만세를 불렀다. 평생 볼 거북이들을 다 본 것 같은 소류구에서는 약간 과장을 하면 소리를 지르다가 지르다가 목이 쉴 정도였다. 헤엄치는 거북이들이 너무나 예뻐서 신비해서 스노클을 끼고 있어도 소리를 안 지를 수 없었다. 바위처럼 거대한 아이부터 새끼 거북이까지 물속에서 우리는 '저기 있다', '저기 있다', '저기 또 있다' 거북이가 나타났다고 신호를 보내느라 분주했다. 사선으로 유유히 헤엄치는 거북이를 따라가 본다. 거북이 배가 레몬빛을 닮은 노란색인 것을 알게 되었다. 거북아, 거북아, 너는 왜 배마저도 그렇게 아름다운 거니.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평화롭게 고요하게 유영하는 거북들을 보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결국 체온이 떨어져 몸이 덜덜덜 떨려야 밖으로 나왔다.


거북이를 본 첫날밤에는 꿈을 꿨다. 내 방은 물 속이었고 거북이들이 가득 헤엄치며 놀고 있었다. 나는 스노클도 없이 거북이들과 함께 물속을 날아다녔다. 꿈이 너무나 선명해 눈을 뜨고도 한참을 멍하니 누워있었다. 방 안이 여전히 깊은 물 속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소류구에서 나흘을 보냈다. 다음 일정은 타이난과 타이중의 자이 여행이 계획되어 있어 우리는 소류구를 떠났다. 타이난에 도착해 안핑이란 곳도 가고 오래된 사당과 가게들도 구경하고 우육면도 먹었다. 그런데 뭘 해도 자꾸 거북이들이 아른거렸다. 눈만 감으면 거북이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바닷속 풍경이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상영되었다. 결국 우리는 남은 타이난 일정과 타이중 일정을 포기하고 소류구행 페리에 또 한 번 짐을 실었다. 살면서 그동안 내린 무수한 결정들이 있다. 어떤 결정은 괜찮았고 어떤 결정은 무모했다. 어떤 결정은 잘못 내렸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닫기도 했다. 간혹 나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준 기특한 결정도 있었다. 이번 결정은 바로 직감했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결정이었다.


페리에서 내려 다시 소류구에 한 발을 내디뎠을 때 우리의 얼굴은 그제야 환해졌다.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소류구였다. 선착장에서 오토바이를 빌려주는 아주머니도, 우리가 묵었던 숙소 주인도 다시 나타난 우리를 보고는 눈이 커졌다. 네. 그래요. 우리는 그만 소류구 거북이들에 푹 빠졌어요.


그렇게 며칠 더 소류구에서 지내고 나서야 우리는 진짜 섬을 떠났다. 이제 여행지에서 어떤 기념품도 사지 않기로 결심했는데 이것만은 도저히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55세에 거북이 키링이라니. 인형을 가방에 걸고 나는 소류구를 떠났다. 나는 거북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소류구에서 산 생애 첫 키링


대만에 다녀왔다고 하면 사람들은 반가워하며 묻는다. 타이베이, 가오슝, 타이난? 어디로 다녀왔어요? 타이베이도 며칠, 가오슝, 타이난에서도 며칠 묵었지만 나는 왠지 소류구에만 머물다 온 느낌이다. 거북이들이 다른 기억들을 다 덮어버렸다.


소류구의 그리운 거북이들아, 잘 지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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