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미쓴 일단 해봐 Jan 17. 2022

내놓지도 않은 가격인데 사겠다고 한다

직장인 투잡 실패기 : 고시원을 팔고 싶어도 팔 수가 없다

고시원 창업으로 4개월 동안 4천만원의 손해를 보았습니다.
피눈물 나는 실패 경험이지만, 소중한 자산으로 남기기 위해 지난 시간을 복기합니다.


나의 부족함과 한계는 충분히 확인했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잘 되지 않았다.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무엇보다도 정신적으로 내 그릇은 여기까지였다.

1억 6천으로 시작한 고시원이었고

내가 매수한 가격으로 다시 매도하려고 하니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이제 마음이 조급해진다.


항상 조급하면 일을 그르치게 되어있다.

빨리 고시원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부동산들에 전화를 돌려보니 1억 1천을 부른다.

부동산은 매도자에게는 낮은 금액을 이야기할테니

대략 그 금액에서 1~2천을 더한 금액이

내가 실제로 기대할 수 있는 매도 가격이다.


고시원 전문 부동산들은

나 같은 매도자를 많이 만날 것이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실패를 인정하고,

권리금을 한 푼이라도 건져보겠다고 아등바등 대는 사람들.

당연히, 내가 처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매도자의 권리금을 후려치는데 익숙하다.




고시원 전문 부동산 바닥은 좁다.

실장님들은 거의 서로 알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매도를 희망하며 물건을 내놓았다면,

어느 동네에 있는 방 몇 개짜리 고시원이라고 하면 서로 다 안다.

그러면 그다음부터는

동일한 물건을 누가 더 저렴하게 들고 있는지가 경쟁이다.

내가 부동산 A, B, C에 물건을 내놓았다면

겉으로는 모두 1.6억에 팔겠다고 했지만

그중 가장 친한 부동산 A에게는 슬쩍 "1.3억까지 깎아줄 마음이 있습니다"라고

속마음을 내비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A가 승자가 된다. 똑같은 물건을 싸게 들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수 희망자는 여러 부동산을 돌아다닌다.

조금만 조사를 해보면, 자신이 알아본 물건을 어느 부동산에서 사느냐에 따라

다른 가격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B, C는 들러리만 서고 물먹을 가능성이 크다.

똑같은 물건을 누가 저렴하게 들고 있느냐. 그게 핵심 경쟁력인 셈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 일을 내가 겪었다는 것이다.


"네 OO 고시원입니다"

"원장님, OO 부동산이에요. 지난번에 저한테 물건 내놓으셨죠?"

"네 혹시 관심 있으신 분 있나요?"

"그게 아니고 원장님 정말 너무하시네요"

"무슨 말씀이세요?"

"저한테는 1억 6천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요?"

"다른 부동산에 1억에 내놓으셨더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저도 들은 말이 있어서 그래요. 1억에 내놓았다는데?"

"하아.. 저 그런 적 없다구요. 누가 그런 말을 합니까?!!"


내가 내놓은 적이 없는 금액이 매도 희망가격이 되어

고시원 부동산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

부동산들도 내 말을 믿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서로 이 물건을 저렴하게 들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중 한 명이라도 가격을 후려치기 시작하면 그대로 그 가격은 정가가 되어버린다.

결국 피해는 나처럼 마음이 급한 매도인의 몫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매도 가격이 내려간다.

손해를 보고 매도하는, 그래서 조급해진 나는

듣도 보도 못한 가격이 시장에서 돌아다니는 걸 듣고

그나마 남아있던 희망이 사라진다.


피폐해진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복기]

적자가 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너무나 조급했다.

그런데 부동산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약점이 잡힌 나는 하염없이 권리금이 깎인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 가격을 무시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이미 가격은 내려가버렸다.

내 실수는

부동산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가격 양보할테니 빨리 팔고 싶다고 말한 그 한 마디가

무서운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이전 06화 고시원에 화재경보기가 또 울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