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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미쓴 일단 해봐 Jan 14. 2022

고시원에 화재경보기가 또 울린다

직장인 투잡 실패기 : 출근하고 있는데...

고시원 창업으로 4개월 동안 4천만원의 손해를 보았습니다.
피눈물 나는 실패 경험이지만, 소중한 자산으로 남기기 위해 지난 시간을 복기합니다.


"여보세요"

"사장님 저 502호에요 지금 화재경보기가 울리고 있어요!!"

"네?? 혹시 연기나 냄새가 나나요?!"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방인지는 모르겠어요"

"어쩌죠!! 제가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너무 시끄러워요 제가 꺼볼게요"

"그러면 사무실 문을 열으셔야 하는데 비밀번호가.."


출근길이었고, 아이를 학교에 등교시키는 길이었다.

진짜 화재일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만.. 그럼 왜 울린거지?

화재는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핸드폰으로 고시원 CCTV를 보았다. 다행히 연기가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지금 시간은 8시 20분.

고시원까지 30분, 고시원에서 회사까지 자전거로 10분이 넘게 걸린다.

어떻게 해도 회사에는 지각이겠지.

그나마 다행이다. 회사에 오전에 급하거나 피치 못할 일이 있는 날은 아니었다.

만약 빠질 수 없는 회의가 있거나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죄송합니다.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요.. 1시간 정도 늦게 출근해야 할 것 같아요"

회사에 전화해서 거짓말을 했다.


화재경보기의 오작동일까? 아님 정말 화재가 발생한 걸까?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전 원장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그동안에도 몇 번 오작동이 있었단다.

일단 화재경보기를 끄러 가기는 해야 한다.

내가 도착할 30분 동안 입실자분들은 시끄러운 소음 속에 있어야 한다.

시간이 가는 것이 미안하고 죄스러울 뿐이다. 


지하철역에 내려 가장 가까운 따릉이를 탔다.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반대 방향으로 무섭게 페달을 밟는다.

차가운 바람에 손이 시린 줄도 모르고 1초라도 시간을 줄이기 위해 속도를 올린다.

그나마 회사와 고시원이 자전거로 10분 거리라서 다행이다.


서울시장님 저 따릉이 단골이에요.. / 청계천을 따라 고시원으로 내달린다.


자전거를 던지듯이 1층에 세워놓고 단숨에 계단을 뛰어올라가니,

마침 건물 관리인분이 와계셨다.


"여기가 가끔 이렇게 오작동을 합니다. 제가 비상조치로 일단 꺼놓았어요"

"헉헉 정말 감사드려요. 제가 빨리 온다고 왔는데 어쩔 수 없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방마다 한 번씩 다녀보시고, 고시원 사무실에서도 스위치를 꺼야 해요"

"네 정말 감사드립니다!"




고시원에 화재경보기가 울릴 때 대처 방법에 대해 어디에서도 알려주지는 않는다.

모든 층의 복도에 비상탈출용 조명이 번쩍거리는데..

회사에 이왕 늦은 김에 고시원 곳곳을 점검했다.

어느 방인지 방마다 문을 두드리며 사람이 있는 호실은 경보기를 들여다본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겨우 화재경보기를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아침에 고시원 입실자분에게 전화가 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게 되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원래 입실자분들의 전화는 좋은 소식이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고시원 화재경보기는 마치 집에 아픈 사람이 있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나 아파요' 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일상이 멈춰지고 당장 뛰어가야 하는..

기어이 화재경보기는

내가 고시원을 마무리하기 전까지 몇차례나 더 울렸다.

그것도 똑같은 출근 시간에, 불현듯 전화가 오는 똑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운이 좋아서 회사에 늦을 수 있고 고시원에 바로 달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게 운이 좋은 날만 있을까..?


[복기]

사람은 예측가능성에서 안정감을 찾고,

예측하지 못했던 일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 온 직장인은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울리는 화재경보기에 직장생활의 하루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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