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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미쓴 일단 해봐 Aug 04. 2022

사업이랑 참 안 어울리시네요

직장인 투잡 실패기 : 그래서 그만 두고 있습니다.


직장인 투잡 실패기에 쓰다만 글.

왠지 부끄러워서 올리지 못했다가, 용기를 내 본다.




항상 미안했다.

고시원에 월세를 내고 살고 있는 입실자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분들은 나를 믿고 수십만원의 월세를 내고 있는데

여기를 정말 살기 좋은 곳으로 해드려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여름에 꼭대기층의 에어컨이 고장났다.

수리에 일주일쯤 걸렸는데, 고장을 확인하고 사람을 부르고

고장 부분을 진단해서 수리를 했지만 그대로였고

재수리하는 과정을 겪었다.


11월 즈음에 겨울을 앞두고는 온수가 안 나왔다.

같은 일을 반복했다.

며칠동안 따뜻한 물을 사용하지 못한 분들께

너무너무 죄송했다.


하루는 입실자분 몇 분이 주방 정수기 물을 마시고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것도 몇 차례 눈치를 보시며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전화와 문자로 말씀을 주셨다.

알고보니 전 원장이 처음 정수기를 설치하고는

10년 가까이 교체를 하지 않았다.

비용이 아까워 직접 필터를 사다가 갈아끼우고 있었다.

그나마도 멈춘지 좀 된 것 같았다.

당장 새 정수기를 알아보고 교체했다.

영문도 모르고 배가 아팠던 몇날 몇일을 지나 이유를 알게되기까지 얼마나 기분이 이상했을까



보일러 조작이 미숙해서

방바닥을 이틀동안 펄펄 끓게 만들기도 했고,

복도 청소가 되어 있지 않으면 여기 사시는 분들에게 죄를 지은 것 같았다.


매출이 오르지 않는게 가장 큰 스트레스인데

입실자분들께 미안한 것도 그만큼 큰 스트레스였다.

아마 처음부터 고시원이라는 업종과 나는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고시원 매도를 위해 부동산 실장님과 계속 연락을 주고 받을 때였다.

사실 내가 몇 차례 매도 의사와 금액을 번복했다.

그만큼 마음이 나약한 순간이었다.


문득 실장님이 물어보셨다.

"뭐가 제일 힘들어요? 다른 사람들 고시원 잘만하는데 원장님은 뭐가 힘든거에요?"

"매출 안나오는거죠. 광고해도 연락도 안오고요."

"그게 다에요?"

"미안한거요."

"누구한테?"

"입실자분들한테요. 저분들은 저 믿고 한달에 몇십만원을 내는데,

 제가 그만큼, 그이상의 편안함을 드려야하는데 그걸 잘 하고 있는지가 걱정이에요"

"하아... 원장님"

"네?"

"제가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는데, 사업이랑 참 안 어울리시네요."

"실장님 보시기에도 그런가요?"

"네. 빨리 그만두시고 다른 일 찾으세요. 아니, 그냥 투자만 하세요."

"그 정도일까요?"

"아니 이런 말 하는 사람 처음봐요. 그렇게 마음 약해서 무슨 고시원을 해요."


고시원을 매도한지 8개월이 다 된 지금도 그때의 실장님의 표정과 말투가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고시원의 경험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공무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직장인으로만 살아온 나에게

비즈니스 DNA가 들어있을리 만무했다.

내가 가진 그릇의 크기에 비해 너무 급격한 도전을 했던 것 같다.


그게 다른 사람의 눈에도 보였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주변 사람들이 쉽게 나에게 조언을 하도록 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어쨌든 결국

그래서 고시원 투잡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감당할 수 없었으므로.

늘 누군가에게 미안했으므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었던

소중한 경험에 감사하지만

또 어떤 도전을 해볼지는 계속 시도하고 싶다.

복기를 통해 배웠으니, 그만큼 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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