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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TAE Nov 18. 2020

건설과 음악의 이중생활

일과 삶의 경계가 필요하다.

건설업에 들어온 이래 일이 적었던 적이 없다. 업의 특성상 시간과의 싸움이다 보니 짧은 시간 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늘 벌어진다. 공사를 하다 보면 여러 돌발상황이 생기고 이를 해결하다 보면 원래의 일이 밀리기 일쑤이다. 미리 다음날의 일을 준비해놓지 않으면 하루의 작업량이 날아갈 수도 있기에 사전 준비(a.k.a. 단도리)도 필수다.


지금 하고 있는 공무 업무도 그렇다. 흔히 공무의 업무 강도는 U형으로 비유한다. 프로젝트 초기 업무가 많고, 중간에는 좀 줄었다가 준공 시 업무가 많다고들 한다. (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 계속 높은 한일자(-) 그래프일 수도.) 정해진 시간 내 업체를 선정하고 일을 시키려면 다른 팀보다 먼저 앞서 나가야 한다. 도면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계약서와 수주 당시의 내역서를 이해하고 최적의 발주 방안을 수립해서 늦지 않게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돈을 다루는 일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끝없는 엑셀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몇 십원의 차이를 찾기 위해 엑셀을 하루 종일 분해해가며 숫자를 찾는다. 점검이 있는 날이면 보고서 작성은 오롯이 공무의 몫이다. 결과를 취합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인허가 기관, 본사, CM단 등 유관기관에 보고서가 적시 제출되어야 한다. 준공때는 업무량이 피크를 찍는다. 준공서류를 내는 일은 간단히 서류만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다양한 상황의 앞뒤관계를 정리하고 서류화 하여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게다가 공종별로 전문업체들의 시공이 끝나고 나면 법에 의해 즉시 정산을 해야 한다. 늦어지면 지연이자도 물게 된다.


시간에 쫓기고, 많은 일에 치이다 보면 업무는 어느새 내 일상을 잠식한다. 퇴근 후에도 업무 생각이 따라다닌다. 좀 더 잘하기 위한 고민은 성장에 불가피한 부분이겠지만, 인생에 일이 전부는 아니기에 삶이 피폐해지기 쉽다.


지금 현장에 발령받으면서 숙소는 지원되지 않고, 출퇴근할 방법은 묘연하여 어쩔 수 없이 현장 근처에 방을 잡았다. 직주근접이 최고의 복지라던가. 덕분에 현장과 숙소 간 거리가 걸어서 5분이다. 지하철에 시달리는 출퇴근의 시간 손실과 피로가 없어서 좋긴 했지만, 업무와 삶의 경계가 너무 없진 않게 될까 걱정했었다.


음악을 시작한 이후 그런 걱정이 없어졌다. 퇴근하고 나면 빨리 방에 들어와야 진행하던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 음악은 시간을 다룬다. 소리를 재생하여 시간을 소모하지 않고는 즐길 수 없다. 그만큼 만드는 데도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된다. 음색을 고민하고, 이 부분에 무엇을 더 넣을지, 리듬이나 박자가 흔들리지는 않는지를 고민하다 보면 저녁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어제만 해도 간단한 코드와 멜로디를 만들고 틀을 잡기만 했는데도 시간이 순삭이더라. 현장과의 물리적 거리보다 내 삶에서의 일과 내 세계와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요즘은 ‘자신만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는 명제에 공감한다. 업으로 하는 일을 잘하기 위한 노력은 프로로서 성장하는데 필수이지만, 인생이 업으로만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과의 시간, 친구와의 시간, 신앙을 위한 시간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누리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을 위한 시간 없이 이리저리 타인에게 끌려다니다 보면 어느새 훌쩍 나이 들어 내 세계 없이 공허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주변에서 사회에 대한 분노가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분명 필요하고 중요한 부분이다. 다만 외부에의 과도한 관심은 오히려 내적 세계의 빈곤함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는지. 집중하고 싶은 자신의 세계가 없어서 밖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건설과 음악의 이중생활을 하니, 정신적으로도 삶이 강하다고 느낀다. 명확하게 일과 삶을 구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퇴근하고 큰길 사거리를 건너는 동안 업무에 대한 생각은 내려놓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면서 저녁을 보낸다.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음악에 성취감도 생기고 스스로도 즐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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