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3 부시 스타디움(Busch Stadium)
★독립리그부터 MLB까지 - 미국 프로야구 완전 정복기★
- 프롤로그
지난 줄거리 - '비싸다'라는 이유로 메이저리그에 정을 붙이지 않던 글쓴이는 우연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맷 홀리데이 명예의 전상 입성 기념 티켓 세일 광고를 발견하게 되는데...
미국의 대중교통 인프라는 한국만큼 쾌적하지 않다. 스물다섯 개의 노선과 472개의 정거장을 자랑하는 뉴욕 지하철조차 '서울 1호선보다 못하다' 같은 소리를 듣는데(사실임), 하물며 2량 경전철이 두 노선을 오가는 것에 불과한 세인트루이스의 Metrolink는 어떨까? 세인트루이스가 미국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치안이 나쁜 도시라는 점 또한 대중교통 이용을 꺼리게 만드는 요소일 테다. 사실 치안 문제는 둘째 쳐도 평균 40994명의 관중(2022시즌 기준)을 2량 전철과 시내버스가 오롯이 커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대신 자동차의 나라라는 별명에 걸맞은 거대한 규모의 주차 시설이 수만 명의 인파를 커버하고 있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나 캔사스시티 로얄스의 홈구장처럼 경기장이 광활한 구단 공식 주차장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두 자릿수에 달하는 사설 주차장들이 매일 부시 스타디움을 방문하는 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식 주차장인 Ballpark Village의 주차 비용은 5-50달러, 사설 주차장은 15-40달러 사이였다.
내야와 외야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 경기 시작 전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넋 놓고 부시 스타디움을 감상했다. 평생 방문해본 야구장 중 가장 거대했던 곳이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이하 잠실구장)이었던 사람으로서, 그 잠실구장보다 무려 20000석이나 더 많은 관중석이 구비된 데다가 그라운드 규모 또한 비슷한 부시 스타디움은 거대함을 넘어 '웅장하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였다.
비단 웅장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다'라는 인상 또한 받았다. 그런데 나무위키에 따르면 부시 스타디움이 빅리그 홈구장 중에서 개성이 떨어지는 구장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당시에는 '다른 MLB 구장들은 대체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화들짝 놀랐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컵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구장도 방문해본 현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그냥 메이저리그 투어는커녕 부시 스타디움도 안 가본 사람이 해당 문서를 작성했던 게 아닌가 싶다.
부시 스타디움을 둘러보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KBO리그의 내로라하는 거대 구장들은 명함도 못 내미는 웅장함도, 세 살 먹은 갓난아기도 카디널스 홈구장임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운 디자인도 아니었다. Ford Plaza라는 상가 거리였다. 이 골목에는 카디널스 팀 스토어, 야구에 관심 없는 어린이 관중들을 위한 실내 놀이터, 그리고 다양한 먹거리가 준비된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경기장 내부에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야구장은 스케일의 차원이 다름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경기 시작까지 한두 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음에도 이렇게 경기장이 북적거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국의 야구팬들이 경기 전 야구장 근처의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낼 때, 이곳의 관중들은 그냥 외야석 뒤의 '경기장 내 먹자골목'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해결한 뒤 그날 하루의 소회나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테다. 야구와 생활의 밀착화에 완벽히 성공한 것이다.
야구의 일상에 대한 밀착화는커녕 지하 푸드 코트마저 대부분 문을 닫은 고척 스카이돔이 응원팀의 홈구장인 키움 팬으로서, 너무나도 이상적이고 부러운 광경이었다.
부시 스타디움의 유일한 옥에 티는 맛없는 음식이었다. 첫 방문 당시 거의 30달러를 들여 스무디 칵테일과 점보 핫도그를 주문했고, 둘 다 절반도 못 먹고 버렸다. 스무디 칵테일은 생각보다 도수가 높아서 한 컵을 전부 마시기에는 다소 버거웠다. 점보 핫도그는 핫도그라 하기엔 너무나 컸다. 엄청나게 짜고, 두껍고, 텁텁하고, 그리고 맛없었다.
단 한 번의 얕은 경험에 따른 편협한 판단으로 적은 문장이 아니다. 부시 스타디움의 음식은 타 구장과 비교했을 때 대체로 특색 없고 비싸고 맛없었다...
폭탄 세일 좌석이었던 1루 측 Field Box(45달러→17달러)는 폭탄 같은 좌석이었다. 이날(6월 13일)은 최저 온도 26도에 초고 온도는 38도까지 올라가 폭염 경보가 발령됐던 날이었고, 예매한 자리는 일몰을 직방으로 맞이하는 자리였다. 느릿느릿 지는 석양에 고통스러워하며 4~5회까지 제대로 경기를 감상하지 못했다.
이날 가장 놀랐던 점은, 응원단도 이렇다 할 응원 문화도 없는 메이저리그 경기의 현장 분위기도 신이 난다는 것이었다.
프롤로그에서도 언급했듯, 두 눈으로 직접 MLB 경기를 보기 전까지 '미국 야구의 응원 문화는 보수적이고 재미없다'는 편견이 있었다. 경기 내용의 수준은 높지만 재미는 없는 리그라는 인식이 강했고, 부시 스타디움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하면서도 경기 자체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양의 프로야구 리그처럼 다 함께 응원가를 열창함으로써 승리를 기원하는 문화만 없을 뿐, 관중들의 야구에 대한 사랑과 승리에 대한 열망은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월요일 저녁부터 폭염으로 달궈진 관중석에 꿋꿋이 버티고 앉은 카디널스 팬들은 선발투수가 무너지고 타자들이 몸값을 못 하고 잇음에도, 마치 한두 점 차 접전이라는 듯 흥에 겨워 경기를 즐겼다.
6회 말 들어 '연봉 325억 타자' 폴 골드슈미트가 선두 타자 2루타를 작렬함으로써 분위기를 가져왔고, 후속 타자들의 방망이 또한 불을 뿜으며 5점 차 경기를 원점으로 만들었다. 이 때부터 부시 스타디움은 광란의 현장이 되었다. 이 맛에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러 가는구나 싶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만이 메이저리그의 매력이었다면, 한두 번 더 부시 스타디움에 찾아간 뒤 '미국 야구도 나름의 매력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데 그쳤을 것이다. 굳이 '독립리그부터 MLB까지'라는 거창한 이름과 함께 포스팅을 시작한 데서 알 수 있듯, 미국 야구의 매력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야구장 바깥에서도 '야구'가 계속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