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행운을 부른다: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길
힘든 일은 미연에 방지하는 게 좋지만...
사람은 각자 고유한 기질을 타고난다. 사회문화, 가정환경, 교육 경험 등이 이를 다듬고 형성하지만, 타고난 기질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불안 성향을 타고났다. 내 섬세함과 예민함 같은 성격도 불안이라는 뿌리 깊은 나무에서 자란 열매였다. 물론 내 불안은 타고난 기질이기도 하고, 살아오면서 자라기도 했다. 그러니까 단지 뿌리뿐만 아니라 나무의 가지도 불안이라는 가지가 있다고 할까?
한때는 이 불안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뭇가지를 잘라내려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이 불안이 타고난 기질일 수 있다는 것을 수용하게 되었다. 이제, 불안은 나를 보호하는 중요한 감각이다.
불안은 나로 하여금 준비하게 만든다. 힘든 일을 미리 방지하려는 행동으로 나를 이끄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준비라는 결과물이 오직 불안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효율 추구를, 또 다른 이들은 편안함 추구를 뿌리로 철저히 준비한다. 내가 나를 알아채지 못했을 때, 나는 내가 효율을 추구해 준비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살펴보니, 그 준비는 불안을 통제하려는 본능이었다.
사람들은 내 철저한 계획과 준비성을 칭찬했지만, 사실 그것은 불안을 없애려는 나만의 생존 방식이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철저히 준비하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의 경우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불안을 통제하여 없애기보다는, 불안을 관리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고 있다. 너무 철저한 계획 대신, 본능에 가까운 준비로도 충분히 나를 보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 영혼에 조금씩 쌓아가는 실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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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렌세로 향하는 길에 여러 일이 있었다. 그때 끼니만 챙겼다면 덜 지쳤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래, 에너지가 조금씩 고갈되며 불안을 치솟게 하려 할 때, 배고픔만 없었어도 더 평안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철저한 계획은 아니더라도, 배고픔을 달랠 간식은 가볍게 챙겨보기로 했다. 도넛, 귤, 코코아를 작은 가방에 챙겨 기차에 올랐다. 덕분에 기차 안에서 사이다와 삶은 계란을 챙기던 부모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단순한 이동은 갑자기 행복한 기차여행이 되었다.
마드리드에 도착하자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사 중인 역을 지나야 했고, 큰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올라야 했다. 과거의 나는 모든 상황을 미리 점검하고 동선을 세세히 계획하거나, 혹은 갑자기 닥친 상황에 불안이 급격히 치솟거나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잠시 멈춰 생각했다. 직원의 안내를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을 따라 이동하지 않고 잠시 서서 생각하고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직원에게 질문하기로 했다. 영어를 못하는 직원과 소통이 어려워 돌아서려는 순간, 한 남자가 다가와 직원에게 내 상황을 대신 전하고 해결해 주었다. 그 후 어떻게 할지까지 정확히 알려주었고 덕분에 나는 몇몇 사람만 지나가던 막힌 길을 통과하는 행운을 얻었다.
이어 호스텔에 도착했을 때도 미처 확인하지 못한 엘리베이터와 무거운 내 짐은 문제가 되었지만, 낯선 이가 무거운 캐리어를 방까지 옮겨 주겠다고 자청해 주었다. 무거운 가방에 미안했던 내가 우물쭈물하자 본인 힘세다며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어 주었고, 호스텔 로비에 있던 사람들이 함께 웃었다. 그날 저녁 빠에야 모임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는 스몰토크의 주제가 되어 나는 돌아온 마드리드의 첫 저녁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이런 행운이 따르는 순간들 속에서 배웠다. 불안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감각이지만, 그것에 너무 매달리지 않아도 충분히 해결책은 찾아온다는 것을. 불안을 수용하고 그것에 맞춰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것이 더욱 평안한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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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불안은 내게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기질이고, 사실 나를 보호하려는 본능이다. 지금 불안을 통제하기 위해 철저히 계획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배워가고 있다.
오히려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순간 상황에 맞게 적응할 때 삶이 더 유연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행운과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나의 철저한 계획이 아니라, 순간순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선택들이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든다. 불안을 나와 함께 걸어가는 친구로 받아들일 때, 내 삶은 조금 더 평안하고 따뜻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 그럴 것이다.
24.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