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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녘 연필소리 Jan 08. 2024

휴재 공지, 그런데 양심의 가책을 곁들인.

1989 부커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2021년 신작 <클라라와 태양>

슬프게도 연말 연시에 감기에 걸린 저는 아직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출근 했다가 퇴근하고 나서는 앓기에 바빴고,

그 와중에 토요일에는 부모님을 임영웅 콘서트에 모셔다 드렸습니다.

그리고 또 일요일. 다시 응급실을 다녀왔습니다;ㅁ;.....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이번 연재도 다 써내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변명을 늘어놓을 정도로 뻔뻔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지켜야하기 때문에

1989년 <남아있는 나날>로 부커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 리뷰를 가지고 왔습니다.


2021년 5월 작성한 리뷰로, 3년 가까이 되어가는 글이라 지금보다 더 졸필이지만, 그래도 휴재 사유만 적혀 있는 공지는 올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문단만 정리해서 가져와봤습니다.


다음주에는 정말 기획했던 리뷰를 들고 오겠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클라라와 태양 - 가즈오 이시구로] 자아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고민


자아(ego)에 대한 논쟁은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근세 철학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후 현대 철학까지 오래 이어진 복잡한 철학적 논쟁에도 불구하고 자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자아를 한마디로 분질러 설명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도 본인의 자아가 어떤지 어떤 상태인지를 뚜렷하게 인식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자아라고 부를만한, 그러니까 사고, 의지, 행동에 개별적으로 또 종합적으로 작용하고, 그 작용을 어우르기까지하는 체계 자체는 본질적인 것만 따지더라도 한두개가 아니다. 요컨대 자아는 여러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고, 이를 완벽히 파악하여 본인의 자아를 확립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인생은 어쩌면 내가 누구인지 나의 ego가 무엇인지 탐구하고 파악한 바를 토대로 스스로 정한 가치를 실현하는 최적의 경로를 탐색하여 실행하되 보편적 가치에 어긋나고 타인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자아의 일부분, 엄밀히 말하자면 자아가 영향을 끼치는 행동양식을 수정 보완하는 심오한 공정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자아는 발전이라는 표현과 호응할 수 없다. 자아는 위로 성장하고 고도화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 집중하면서 발견되고 관심과 집중을 통해 단단해지는 것이다. 또한 타인의 행동을 따라하고 언행을 바탕으로 자극에 대한 반응을 통계화하여 통계에 따라 타인이 할만한 행동을 재생산 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지만 자아의 일부인 행동체계를 베껴 행동하는 것만으로 타인의 자아 자체를 모방할 수는 없다. 이는 인간이 저마다 다른 자아(ego)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객관적인 제3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이 특수성들 중에 어떤 것이 더 고매하고 어떤 것이 더 저열한지 가치판단할 수 없다.


인간은 저마다의 가치를 가진 독립한 주체들이고, 모두 다른 존재들이며, 어떤 인간상이나 인간이 더 '옳다'거나 더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를 찾아 내야하는 거대한 미로 속에 있고 이것은 각자의 여정이지 경쟁이 아니며, 누군가가 더 잘해내고 있는지 비교할 수 없고, 누구의 종착점이 더 가치 있는지 판단할 수 없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5살에 영국으로 이주했으니 영국문화의 지대한 영향을 받으며 자랐겠으나 신작 <클라라와 태양>은 일본 소설 특유의 따뜻한 시선과 날카로운 분석이 두드러진다. 작품은 태양빛을 주양분으로 하는 휴머노이드 클라라와 클라라를 사랑했던 여자아이 조시에 대한 이야기로, 잔인하게도 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아가 없는 로봇이 타인의 행동패턴을 익혀 타인처럼 보이게 되더라도 타인의 자아를 베낄 수는 없으며, 인지능력과 추론능력, 관찰력이 극도로 고도화 되어 로봇이 심지어 외로움 쓸쓸함 등의 감정까지도 가지게 되면서 일말의 자아가 생기더라도 이는 철저히 프로그래밍과 데이터 축적에 의한 것이지 인간처럼 복잡 다단한 경험과 선천성 (근대 철학에서는 자아를 경험적 자아와 선험적 자아로 나뉘어 분석하고 대립하였다. 자아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양쪽 의견에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뛰어난 관찰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고, 선한 심성이 가슴 찡하게 하는 구형 로봇 클라라는 제멋대로에 가끔 심술궂고 몸도 약한 조시를 대체할 수 없다. 클라라는 자신이 조시를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시가 건강해지도록 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 조시는 클라라가 언젠가 폐기 되더라도 남의 자아와 삶을 흉내내며 방안에 갇힌 인형으로 살지 않기를 바란다.


작품은 자아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 도처에 산재한 각종 문제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데 환경오염, 윤리적, 인간학적 차원에서 접근하였을 때의 로봇, 기술 발전의 이면, 노동의 종말, 빈부격차, 유전자 조작 등 생각할 거리에 대하여 암시적이지만 상당히 심도 있게 고민의 길로 유도한다. 개연성이 높은 플롯이기 때문에 모든 고민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작가의 대답은 드러나지 않아 자유로운 고민이 가능하다는 점도 좋다. 더불어 표현 자체가 섬세하고 아름다워서 문학적인 전율과 감명을 전한다. 종종 나는 묘사가 구체적이고 색채가 두드러질 때 개연성이 높은 이야기라는 인상을 받는데, <클라라와 태양> 또한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읽혔지만 표현적인 측면에서 형태와 양상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며 동시에 아름답고, 또 주제의식을 계속해서 부각시키는 색채사용이 적극적이고 입체적이다. 젯소 작업을 잘한 작품을 감상한 후 색채 자체에서 받은 감명과 잔상처럼 작품을 읽은 후에 상당히 오랜시간 묘사와 색채가 감상을 지배했다. 작품 자체의 결은 전혀 다르지만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연상하게 하는 여운이다.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 자연스러움도 좋다. 작품 전반에서 어떤 부담감도 느낄 수 없어 의아하지만 가즈오 이시구로는 <클라라와 태양>을 발표하기 4년 전인,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5월의 태양이 온화하다. 바람 끝에 여름 냄새가 난다. 내가 누구이든. 나를 무엇으로 만들었든. 나는 나로 살고 바람에 실려갈 것이다. 누구나 그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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